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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 가득 쓰레기·취업 책 남기고…” 취약한 2030 심리·물질적 고립 이중고

중앙선데이 2021.03.27 00:02 729호 8면 지면보기

급증하는 청년 고독사

지난 1월 대전의 한 원룸 오피스텔. 현관문을 채 열기도 전에 복도에서부터 악취가 느껴진다. 문을 여니 16.5㎡(약 5평) 방 안은 성인 남성 허리 높이만큼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 피자, 치킨 박스부터 먹다 남은 음식물쓰레기까지 뒤엉켜 있어 발 디딜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물속에서 헤엄치듯 간신히 쓰레기를 하나둘 헤집으며 제일 먼저 살핀 곳은 화장실. 1주일 넘게 시신이 방치됐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옆 세면대에는 수백개의 담배 꽁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청년 무연고 사망, 3년 새 58% 늘어
1인 가구 증가 맞물려 소통 단절
고시원·원룸 등 주거 환경 열악
가족 있어도 교류 않고 극단 선택

내달 1일 고독사예방법 시행돼도
통계 자료 없어 세부지침 공백상태
“청년 고독, 생명권 차원서 살펴야”

쓰레기들 사이에 간신히 보이는 책장에는 토익 교재를 비롯해 ‘2주 완성 면접대비’, ‘ㅇㅇ기업 인적성시험 기출문제’ 등 취업 관련 서적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방주인이 처음부터 싼 방을 찾았어요. 여기가 보증금 300만원인데 이걸로 어떻게 (청소 작업) 안 될까요?” 부동산 관계자의 말이다. 방 주인은 32세 여성. 취직하려던 회사에 제출하려 했는지 주민등록등본 등이 과자칩 봉투와 뒤엉켜 있다. “시신 흔적에, 쓰레기에, 여기 화재 흔적까지 있는데 어떻게 300만원에 합니까. 서류 보니까 부모가 있는 거 같은데?” 특수청소 의뢰를 받은 길해용 스위퍼스 대표가 물었다. 하지만 부모는 서류에만 존재했다. 떠난 방주인의 집 청소와 유품정리를 상의하자 부모는 되려 부동산 관계자에게 “1원 하나 줄 수 없다”고 단박에 거절했다.
 
길 대표가 최근 경험한 청년고독사 현장이다. 특수청소를 해온 지 10년 가량 된다는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독거노인 고독사나 단순 자살이 많았지만 2~3년 사이 청년 고독사 현장 의뢰가 굉장히 많이 늘고 있다”며 “코로나19 때문인지 지난해 10건 중 4건은 20~30대 고독사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 화장실서 백골로 발견된 사례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고독사는 타인과 관계 단절이나 소통 공백으로 홀로 죽음을 맞는 것을 뜻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모두 고독사로 분류하지 않는다. 직계 가족이 있더라도 평소 교류가 없어 시신 인수를 거부할 경우에도 고독사 범주에 넣는다. 학계에선 주변 사람의 왕래가 없는 상태에서 사망해 약 3일이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되면 통상 고독사로 본다. 길 대표는 “화장실에서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며 “알고 보니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자라서 시신을 인수할 유가족이나 친구조차 없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신 부패와 현장 훼손 정도에 따라 죽은 이가 얼마나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독사의 그림자는 노년층을 넘어 20~30대 청년 세대에게까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의 10~30대 무연고 사망 사례는 2017년 63건이었다. 하지만 이후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에는 100건으로 3년 사이 58% 증가했다. 고독사가 더는 독거노인 등 고령층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어르신과 중증 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복지 프로그램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년 고독사는 1인 가구 증가와 관련이 깊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614만가구다. 10가구 중 3가구가 1인 가구인 셈이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18.2%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30대(16.8%)였다. 사회적 경험이 부족하고 심리적 면역력이 강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증, 무기력을 동반한 심리적 고립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청년 1인 가구의 사회적 관계’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 1인 가구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74분이었다. 이는 다른 유형 가구의 55% 수준이다. 특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불과 5분 안팎이었다.
 
문제는 2030세대 1인 가구가 경제적 빈곤으로 고시원, 원룸과 같은 취약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리면서 심리적 고립뿐 아니라 물질적 고립까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양모(30)씨는 올해 3번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년 전부터는 가족과 떨어져 월 25만원짜리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다. 양씨는 “2평도 안 되는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공간에서 벽만 보며 살다 보니 ‘나는 세상에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최근에는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하는 김완 하드웍스 대표는 “벽이 얇아 방음이 제대로 안 되는 고시원에서 고독사 청소를 하다 보면 옆방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이라도 들어올 법도 한데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을 때가 많다”며 “극단적으로 단절된 공간인 셈”이라고 말했다.
  
# “정부, 청년 세대 공감 능력 키워야”
 
나의 심리적 건강상태는?

나의 심리적 건강상태는?

정부의 청년 정책 중 핵심은 일자리다. 하지만 심리적, 물리적 고립에 갇힌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거의 없다. 고용노동부는 일자리 제공에만 집중할 뿐 낙담한 20~30대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리 치료,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 영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와 사회복지사들은 어르신 돌봄, 영유아 서비스 등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집중하지만 그 대상 어디에도 ‘청년’ 두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권혁남 협성대 교수는 “청년 1인 가구라고 모두가 고독사 위험에 노출된 것은 아니지만 질병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 주위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회와 격리된 청년들을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생명권 보호 측면에서 잘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과 복지 사이의 공백지대 탓에 청년 고독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통계나 실태 자료조차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회 문턱을 간신히 넘은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고독사예방법)이 다음 달 1일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세부지침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보건복지부가 5년에 한 번씩 실태조사를 하게 되어 있지만 충분한 인력과 시간 투입 없이는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독사는 단순한 사인을 따지는 것이 아닌 마지막 순간까지의 히스토리를 세세히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청년 고독사를 개인사로만 치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기존의 청년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자리 매칭에 집중된 고용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주거, 문화, 생활, 참여 등 다각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기초자치단체도 고독사와 무연고사를 관리 감독하는 그물망은 느슨하다. 중앙SUNDAY가 지난 15~22일 동안 서울시 25개 자치구 대상으로 2020~2021년 발생한 20~30대의 고독사와 무연고사 발생 여부에 대해 문의하자 모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최혜영 의원실을 통해 받은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에서 발생한 10대를 포함한 20~30대 무연고 사망은 15건이었다. 지난 3일에도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된 27세 남성이 서울 성북구의 한 병원에서 연고 없이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지만 관할 자치구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취재가 시작돼서야 상황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청년정책센터장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청년도 사회적 단절이나 심리적 고립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외형적 지원책뿐 아니라 청년 세대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내각에 ‘고독 담당실’ 추진, 영국은 ‘외로움 장관’ 두기도
일본은  2010년 이후부터 중장년층 남성들의 고독사와 청년층의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부각됐다. 특히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고독사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아사히 신문 등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 등 3개 현에 있는 가설주택 또는 재해 공영주택에서 혼자 생활하던 사람의 변사 사건을 집계한 결과 모두 614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 가운데 68%는 65살 이상 고령자였지만 일부는 20~40대 젊은 층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고독사를 줄이기 위해 유형별, 제공 주체별로 세밀한 돌봄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민간과 지자체, 지역주민이 함께 돌봄 서비스의 주체가 되는 것이 특징이다. 생활관리사가 단순히 정기적으로 주거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다. 관리 대상자의 주거지를 담당하는 가스, 수도, 신문 사업자 등과 협업해 거주자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교환한다. 지자체는 마을 주민들과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고독사 위험군을 평소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내각에 ‘고독·고립 대책 담당실’(가칭)을 설치하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영국은 사회적 단절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내 별도의 장관직을 만들었다. 2018년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는 체육·시민사회 장관을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으로 겸직 임명했다. 외로움을 ‘사회적 감염병’으로 정의하고 국가적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영국은 건강보험제도(NHS)를 통해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장기적 치료 서비스 계획을 2023년까지 마련한다. 지자체와 기업도 동참하게 된다. 중앙 정부가 외로움 캠페인을 주도하면 지자체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을 찾아내 공공 서비스 기관과 연계해준다. 기업은 직장 내 커뮤니티 공간을 필수로 제공해 동료 간 소통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실질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의 활동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김나윤·고성표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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