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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에 할 말 있다] 흑백논리 극복하자고 쓴 추천사 문제삼아 나를 반대집단에 가둬

중앙일보 2021.03.26 00:46 종합 29면 지면보기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중앙일보의 3월 24일자 ‘징그러운 가해자 중심주의, 민주당의 성추행 잔혹사’ 제목의 글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나를 박원순 사건의  2차 가해자로 싸잡아 비난했다.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가 쓴 박원순 사건 취재기 『비극의 탄생』에 추천사를 썼다는 이유 때문이다. 필자의 표현력 부족이라 생각해 해명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
 

박원순 지지자들과 뜻 같지 않아
미투운동 지지, 다양성 허용돼야

박 전 시장 장례기간 중, 나는 최초로 피해자를 위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란 용어를 사용한 건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성폭력을 폭로할 용기를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상식적 판단에 기초했다. 인권위와 법원의 성희롱, 성추행 판단이 나오면서 내 판단이 옳았음에 안도했다. 추천사에서 ‘피해자 우선주의는 지켜져야 하고, 피해자의 존재는 분명하다’고 밝혔다.
 
나는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미투의 가해자로 알려진 사람이 사실관계 확인도 전에, 비례의 원칙도 없이, 인생이 끝장나는 우리의 상황은 운동에 독(毒)일 수 있다. 가해자의 최소한의 방어권도 부정하는 게 피해자 우선주의라면 피해자측의 주장을 일부만 받아들인 인권위도, 박 전 시장의 참모들이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하고 억압한 증거가 없다는 경찰의 발표도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적지 않은 피해자측 주장이 증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양 진영으로 나뉘어 합리적 토론과 정책 결정이 불가능한 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내면화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다양하고 열린 사고에 있다. 하지만 ‘2차 가해’라는 전가의 보도를 사용해 진실에 대한 어떤 추구도 금기시하는 여성단체의 태도 또한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도 성역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의 건강성은 회의론을 먹고 자란다. 피해자란 용어를 사용했다고 나를 비난한 사람들에게 2차 가해라며 맞서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를 민주 진영의 일원으로 분류한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박원순 사건과 관련해 나는 단 한 번도 진 전 교수가 지명한 사람들과 뜻을 같이해본 적이 없다. 나와 생각은 다르지만, 우리 사회가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수만 가지의 다양한 사고를 허용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비극의 탄생』 추천사를 썼다는 취지는 무시한 채, 진 전 교수는 흑백논리로 나를 반대 집단에 가두었다.
 
진 전 교수가 인용한 내 문장은 박원순의 행위가 법적으로 성폭력임은 분명하지만, 핸드폰 포렌식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면 의도의 악의성에 있어 민주당의 다른 가해자와 다르게 판단할 여지가 있는데, 그걸 막은 유족과 참모에 대한 원망에서 나온 가설이다.
 
맥락이 전혀 다른 한 문장이 마치 내가 안희정(전 충남지사)을 옹호한 것처럼 인용된 건, 생각이 다른 쪽을 배려해 명확하게 쓰지 못한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박 전 시장이 성폭력 가해자로서의 잘못보다는 공직자로서 무책임한 일처리가 더 크게 비판받을만 하다는 생각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다. 피해자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것도 사과 한마디 없이 유명을 달리한 가해자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내 추천사는 SNS에 공유됐지만,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는 외면당했다. 그들도 내가 같은 편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했던 것이다. “대깨문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진 전 교수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해력은 정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를 비난하는 야당에 대해 진 전 교수는 “비판과 비난은 다르고 비판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금해야 할 2차 가해 예시를 만들어 그것 외의 발언은 허용되는 규범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미투 운동과 민주주의의 성숙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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