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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의 코멘터리] 윤석열 메시지2 '노블레스 오블리주'

중앙일보 2021.03.25 21:16
1945년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중국 상해 공항에 모인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 가운데 꽃다발을 건 백범 김구를 중심으로 그 왼쪽에 조완구, 김규식 선생이 보인다. 오른쪽에 눈물을 훔치는 이가 이시영이고 백범 바로 앞 동그라미 속 소년이 이종찬이다. [사진 우당기념관]

1945년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중국 상해 공항에 모인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 가운데 꽃다발을 건 백범 김구를 중심으로 그 왼쪽에 조완구, 김규식 선생이 보인다. 오른쪽에 눈물을 훔치는 이가 이시영이고 백범 바로 앞 동그라미 속 소년이 이종찬이다. [사진 우당기념관]

 
 

퇴임후 두번째 행보..죽마고우 이철우 교수 1년 6개월만에 찾아가
이철우는 전재산과 목숨까지 독립운동에 바친 이회영 증손자

 
 
 
 
1.보궐선거로 정치판이 부산한 와중에 윤석열이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101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명예교수를 만난데 이어 22일엔 죽마고우 이철우 연세대교수를 만났습니다. 중앙일보 단독보도(25일)에 따르면 1년 6개월만에 윤석열이 연락했습니다. 2019년 9월 조국 법무장관 내정자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 당시 전화로 언쟁을 한 이후 왕래가 끊어졌습니다. 이철우는 당시 ‘청문회 앞두고 검찰이 전면수사에 들어가는 것이 지나치다’고 비판했습니다.  
 
2.갑자기 윤석열이 연락한 건 당연히 검찰총장 퇴임 이후 정치행보로 보입니다. 윤석열은 ‘이철우와의 만남’이란 행보를 통해 두번째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윤석열이 말한 직접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검사로서 직분에 충실했다.(일부 여권인사들이) 검찰개혁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변의 강경파에 둘러싸여 있다.’
 
3.더 중요한 메시지는 말보다 행보 그 자체입니다. 김형석처럼(22일자 오병상의 코멘터리) 이번에도 이철우라는 사람 자체가 윤석열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철우는 세칭 ‘삼한갑족’입니다. 삼한갑족이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관통해온 최고의 가문’이란 뜻입니다. 경주이씨..그 중에서도 백사 이항복 집안입니다. 대표적 인물이 이철우의 증조부 우당 이회영(1867-1932)입니다.
 
4.이회영은 우리 현대사에서‘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에겐 의무가 있다)의 대표입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형제들을 모두 설득해 일족 60여명이 전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떠납니다. 허허벌판에 정착촌을 짓고 독립군을 기르는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세웁니다.  
이회영은 1932년 일본 경찰에 잡혀 옥사합니다. 여섯 형제 가운데 해방후 살아돌아온 사람은 동생 이시영(임시정부국무위원.초대 부통령) 뿐입니다. 당시 임정요인들 손 잡고 귀국한 9살 꼬마가 이철우의 아버지 이종찬입니다.
 
5.이종찬은 경기중고를 졸업한 엘리트로 6ㆍ25전쟁 직후 육사에 입학합니다. 당시 육사엔 나라를 지키겠다는 엘리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종찬은 대위 시절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 발탁됩니다. 그 인연이 이어져 전두환 시절 집권여당(민정당) 실세로 정치에 뛰어듭니다.
이종찬은 3당합당 이후 김영삼과 대권후보를 다투다 탈당,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장까지 지냈습니다.  
 
6.노블레스 이회영은 시대를 앞서간 진보투사이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 이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가 됩니다. 아나키즘은 당시 중국과 일본까지 휩쓸었던 급진철학이었습니다. 투쟁은 극단적이었습니다. ‘흑색공포단’이란 비밀결사체를 만들어 일제 시설물을 파괴하고 친일파를 처단합니다. 그러나 철학은 이상적이었습니다. 정부를 부정하면서 이상향같은 공동체 자유연합을 꿈꾸었습니다.
 
7.이철우 스스로도 ‘범진보’라고 말합니다. 진보정권을 지지하면서도 중수청 같은 무리한 검찰개혁엔 반대합니다. 이철우의 친구 같은 당숙, 즉 이회영의 또다른 손자가 이종걸(민화협상임의장)입니다. 민주당 4선 의원출신 진보입니다.
 
8. 이철우와의 재회를 통해 윤석열은 이회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소환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이 이번엔 진보 끌어안기입니다. 물론 ‘문재인을 둘러싸고 있는 강경파’는 배제합니다.  
 윤석열의 첫 메시지였던 김형석이 상징하는 ‘온화한 보수’와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양극단을 배제하면서 좌우를 아우르는 중도통합에 온몸을 바치겠다..정도로 정리됩니다. 정치감각이 없지 않은데요..
〈칼럼니스트〉
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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