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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앞 뻗치기, 블랙마켓 급구"…車반도체 비상걸린 현대차

중앙일보 2021.03.25 17:39
세계 1위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인 NXP가 지난해 1월 CES에서 선보안 제품들. MCU 등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화하며, 현대차그룹도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세계 1위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인 NXP가 지난해 1월 CES에서 선보안 제품들. MCU 등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화하며, 현대차그룹도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세계시장에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현대차·기아는 물론 현대차·기아에 반도체가 들어간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기아는 반도체 수급상황을 주 단위로 체크하며 재고 관리를 대폭 강화했고, 
협력사들은 블랙 마켓(단기로 재고를 거래하는 시장)까지 샅샅이 뒤져 시장가의 5~6배를 주고 반도체를 확보하고 있다.     

 
25일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모비스의 구매 담당 한 임원이 이달 유럽 출장을 다녀온 후 2주간 자가격리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 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을 감수하고 차량용 반도체를 만드는 업체의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나 독일 등을 다녀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최근 "모비스 직원들이 MCU 시장점유율 1·2위인 NXP(네델란드)·인피니온(독일) 본사를 찾아 읍소도 하고 공장 앞에서 무작정 대기도 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도 “세계 완성차업체가 반도체 구하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현지에 간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진 않겠지만 우리도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대차는 “일부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수급 상황에 따라 생산 계획을 조정하는 중”이라는 게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현대차 안팎에서는 더 다급한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이달까지는 괜찮지만 다음 달 반도체 수급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대차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 재고 상황을 파악해 전 세계 공장에 배분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품목의 경우 1주일 단위로 재고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까지만해도 “차량용 반도체의 수개월 치 재고분이 있다. 경쟁사보다 여유 있는 편”이라고 밝혔다. 당시 GM·포드·폴크스바겐·도요타·혼다 등이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감산에 들어갔지만 현대차그룹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난달 19일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3위 업체인 일본 르네사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다. 이미 미국 텍사스에 있는 NXP·인피니온 공장이 기습 한파로  셧다운 된 상황에서 르네사스 공장의 화재는 반도체 부족 사태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차량용 반도체 가격도 최소 15% 이상 뛰었고,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MCU 구하기’ 전쟁이 격화됐다.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옴디아]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옴디아]

 
현재 현대차·기아는 차량용 반도체가 들어간 부품을 1차 협력사인 현대모비스·콘티넨탈·덴소 등에서 공급받고 있다. 이들처럼 규모가 큰 1차 협력사는 반도체 재고가 일부 있지만, 규모가 작은 1·2차 협력사는 ‘블랙 마켓(단기로 재고를 거래하는 시장)’까지 샅샅이 뒤지며 반도체 구하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품사 관계사는 “일부 품목의 품귀 현상이 빚어질 때마다 이런 수요를 예측해 재고를 쌓아놓는 전문 업자들이 있다”며 “홍콩·싱가포르에서 이런 블랙마켓이 열린다. 몇만개 정도의 수량은 가격을 5~10배 정도 더 주고 가져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은 단기간 내에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르네사스 공장 화재는 단기 요인이고 근본적으로 대만의 TSMC 등 대형 파운드리업체가 생산하는 물량이 줄었다는 게 문제"라며 “리드 타임(주문에서 납기까지 기간)이 맞춰지는 3분기까지는 공급부족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지난 1월 "차량용 반도체 MCU(Micro Controller Unit) 등 일부 품목의 리드 타임이 최대 180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은 지난해 코로나19처럼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량 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시장조사업체 워즈 인텔리전스를 인용해 “지난 2월 말 미국 딜러점의 차량 재고는 27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감소했다”며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신차 부족 현상은 코로나19 이후 자동차업계가 반등하는 데 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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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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