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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피의자 공직자’ 전성시대

중앙일보 2021.03.25 00:34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지난 19일 청와대는 경호처 직원 1명을 대기발령하고 자료를 정부합동수사본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근무하는 형의 가족과 함께 3기 신도시 지역에 땅을 산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불법적 투기를 했는지는 앞으로 수사기관이 밝혀내야 한다.
 

수사 받고 기소돼도 승승장구
‘피의자’ 이성윤, 검찰총장 거론
편가르기로 공직의 근간 훼손

그런데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공무원에게 항상 이런 조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일 수원지검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과 관련해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6일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다만 수원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엄격한 적법절차 준수의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사안이 가볍지 않다”는 언급을 했다.
 
현직 고위 공무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이 아닌 고위 공무원이 범죄 사건에 연루되면 자리에서 물러나 수사를 받는 것이 필자가 아는 관례였다. 중·하위직 공무원은 직위해제(대기발령)되거나 한직으로 갔다. 그러다 무혐의나 무죄가 나면 명예회복을 한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와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됐거나 정식 재판에 넘겨져 ‘피고인’이 됐는데도 별다른 인사 조치를 받지 않는 공직자가 적지 않다. 허위 사건번호로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금요청서를 썼다는 혐의를 받는 이규원 검사에게도 특별한 인사 조치가 없다.
 
서소문 포럼 3/25

서소문 포럼 3/25

휴대전화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기소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도 마찬가지다. 유·무죄의 판단은 법원의 몫이지만, 직무 수행과 관련해 기소됐다면 주요 보직을 맡지 않는 것이 온당하다. 그는 독직 폭행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에서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3(직위해제)에 따르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에겐 임용권자가 직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인사 조치는 임용권자의 재량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오히려 정 차장검사가 기소된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반면 채널A 전 기자와 유착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한동훈 검사장은 일선 업무에서 배제돼 법무연수원 용인 분원,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본원으로 근무지를 옮겨야 했다. 채널A 유착 의혹 수사팀은 한 검사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올렸지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결재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성윤 중앙지검장의 경우도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수원지검의 수사 대상이 됐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를 받아야겠다며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이 지검장은 후임 검찰총장에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앞선 사례를 보면 현 정권의 관심 사안을 처리하다 문제가 생기면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실하게 적용된다. 피의자 신분도 공직 인사에서 큰 흠결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적폐 세력에 의해 고초를 겪은 영광스런 상처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친정부’ 검사는 각별한 관심과 부탁의 대상이 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4일 출근길에서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에 대해 “감찰 업무를 맡아야 하는데, 자기 의중을 드러내는 데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관으로서의 관심과 부탁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수사와 감찰을 하는 검사가 의중을 드러내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제대로 된 인사권자라면 따끔하게 경고를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보직 교체를 해야 한다.
 
반대로 정권 눈 밖에 난 공직자에겐 좌천 인사에다 감찰, 수사까지 뒤따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경우도 법원의 판단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이런 식의 내 편 챙기기 인사가 반복되면 공직 사회의 근간이 훼손된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은 24일 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검찰은 언제부터 ○○라인, ○○측근 등으로 갈려 있다는 말을 듣고 있고 우리도 무의식중에 그렇게 행동하고 상대방을 의심한다”고 언급했다. 뼈 아픈 진단이다.
 
조 대행은 “사법 영역에서 내 편, 네 편을 가르면 안 된다. 법리와 증거 앞에 겸손해야 하고 자신의 철학이나 세계관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회의가 내가 주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연한 것을 이렇게 비장하게 말해야 하는 게 오늘날 법무부·검찰의 현실이다.
 
김원배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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