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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북한 미사일 발사 알고도 외신 보도 나올 때까지 침묵

중앙일보 2021.03.25 00:02 종합 10면 지면보기
정부가 지난 21일 발생한 북한의 무력시위를 파악하고도 외국 언론의 보도가 나올 때까지 침묵한 배경을 두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그간 군 당국은 북한의 주요 미사일 도발 동향을 즉각 공개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해 4월 14일 강원도 문천에서 동해 상으로 단거리 순항미사일 수 발을 발사했을 때도 이를 당일에 밝혔다. 24일 합참 관계자는 “한·미가 포착한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에 있다”며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공개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개선 청와대 의중 반영”
선거 악재 우려도 미공개 원인 추측
“대북 스탠스 잡는 바이든에도 부담
한·미, 발표 않기로 합의 가능성”

하지만 군 안팎에선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통상 합참은 미사일 발사와 같은 민감한 대북 군사 동향은 즉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장관에게 동시에 보고한다”며 “대외 발표는 안보실 지침에 따라 작성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북한순항미사일발사동향.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한순항미사일발사동향.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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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각자의 사정으로 발표하지 않기로 합의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회 정보위 소속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한·미 군 당국은 발표하지 않기로 서로 합의했고, 과거에도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한·미 합의로 발표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 정책 리뷰 중인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 북한의 저강도 도발을 공개하는 것은 부담일 수 있다”며 “반응을 보일 경우 북한이 그것조차 이용할 수 있기에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정부가 “단거리 순항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위반이 아니다”는 점을 들어 미국을 설득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한국의 요구를 미국 측이 못 이기는 채 들어줬단 것이다. 실제 한·미는 미 언론을 통해 뒤늦게 공개된 이후 이런 입장을 밝혔다.
 
4·7 재·보궐 선거도 변수일 수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청와대가 여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소재를 공개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북한의 도발 수위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 센터장은 “이번 시험발사는 춘계 도발의 시작점으로 보인다”며 “당장 다음 달 15일 김일성 생일이 있는 만큼 북한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공개로 지난 15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임기 말에 편안치 못하게 될 것”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말라”고 압박했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담화를 낸 뒤 다가온 첫 일요일 아침(21일 오전 6시 50분쯤)에 단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와 관련, 한 정부 소식통은 “김여정의 메시지는 ‘경고’가 아니라 미리 준비한 대로 행동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철재·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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