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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칼럼] 생활의 정치와 젊은 도시 서울

중앙일보 2021.03.24 00:52 종합 35면 지면보기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두 주 앞으로 다가왔다. 최장수 서울시장이라던 박원순 시장의 미투 사건으로 야기된 이번 보궐선거는 내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당은 정권재창출을,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내세우며 선거전에 돌입하고 있다.
 

미래 경쟁력 높은 젊은 도시 서울
정당이나 이념보다 삶의 정치로
100만 대학생을 위한 정책도 필요
기숙사교통비 지원 공약도 나와야

하지만 서울 시정은 나라의 국정과 다르다. 시장이나 도지사 직을 정당의 집권수단이나 대선의 징검다리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이제 시장후보뿐 아니라 지자체장들은 임기 후 일정기간까지는 대선에 나오지 않고 현직에만 전념하겠다는 공약을 하고 선거에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여야 후보들의 공약에서 서울시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정책이나 미래비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안인 부동산이나 미투 이슈를 부각하고 매표행위 같은 지원금이나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상대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으로 득표 전략만 쫓아간다.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의 흔적은 없다.
 
이제 지자체 선거의 판단기준은 이념이나 지지정당이 아니라 삶의 정치(life politics)가 되어야 한다. 서울시민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 시장의 주된 책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재래시장 다니고 지하철역 앞에서 유세하는 전통적 방식보다는 유권자의 특성별 선거전략이 필요하다. 10여년전 박원순 시장은 200만표 정도를 얻어 당선되었다. 그런데 서울에 대학생이 최소한 100만명이 되는데도 이들을 위한 공약은 없다. 서울에는 4년제 대학이 43개, 전문대학이 10개, 사이버 대학이 10개, 특수 기능대학이 4개가 있다. 서울지하철에 대학이름이 들어간 역은 스무 곳이 넘는다. 세계적으로 이런 도시가 없다.
 
대학은 지식생산의 중심이고 지식은 미래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다. 그렇기에 외국에서는 대학과 대학생들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유럽 대부분의 대학이 국공립으로 학비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 입장이 무료이고 교통비도 할인해준다. 우리는 대학생이 되면 성인으로 간주하여 각종 부담을 자비로 해야 한다. 서울시가 대학을 지식산업으로 활용하고 대학생들을 지원하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알바몬과 신한은행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대학생들의 한달 평균 용돈은 30만원, 거주비용을 포함한 생활비는 60만원 정도이다. 정부가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고 국가장학금 제도를 확대하면서 가계소득 십분위 중 하위 오분위까지는 거의 장학금 지원을 받아서 등록금 부담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위의 조사에 따르면 한달에 30만원이 넘는 대학가 원룸 주거비와 용돈의 3분의 1에 달하는 10만원 정도의 교통비는 그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생들은 학업에 전념해야 할 시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택배, 대리기사 등의 일을 하고 방학 때 막노동까지 한다. 이는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는 국가자원의 낭비이다.
 
대학들이 기숙사를 신축하여 원룸 비용의 절반 가까운 저렴한 주거를 제공하려고 해도 대학가 원룸업자들의 이익만 수호하는 구청장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기숙사 건축허가신청조차 받아주지 않는다. 지하철 요금은 고등학생까지는 할인이 있지만 대학생 할인은 없다. 서울시에는 267만명의 65세 이상 노인이 있는데 경로우대로 서울지하철공사는 1년에 6천억원의 비용과 3천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경영수지가 아니라 복지지원으로 보면 별로 큰 부담은 아니다. 대학생에게도 지하철요금을 지원하면 또 다른 포퓰리즘 정책이 된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위한 큰 투자로 볼 수도 있다. 2021년 정부예산 558조원 중 200조원이 보건복지고용 예산이다. 시민들에게 10만원씩 1조원을 나누어준다는 공약도 있는데 1년에 5천억원 정도면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지하철 요금혜택으로 알바 부담은 줄고 서울은 미래세대를 위하는 선도적 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얻을 수 있다.
 
이제 대학생들은 이념보다 공정을 우선시한다. 아이스하키 남북공동팀 때 그들은 통일보다 공정을 먼저 따졌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보호나 조국사태에서도 불공정 문제로 분노했다. 치솟는 서울 집값에 LH사태로 공분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노인들은 무임승차하고 자신들은 용돈 삼분의 일이 교통비로 나가는 것이 억울하다. 학생회와 시민단체처럼 이념을 내세운 집단들이 그들만의 이익을 챙기는 것도 이제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운동권 학생들만의 리그인 총학생회의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지금 서울시내 대학 3곳 중 1곳에는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총학생회가 없다.
 
정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전은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삶의 질 향상에 있어야 한다. 정치인은 오늘의 복지뿐 아니라 내일 우리 사회를 짊어질 미래세대의 꿈도 보살펴야 한다. 대학생도 유권자다. 이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에 관심을 보이게 해야 서울을 국제경쟁력 높은 젊은 도시로 만들 수 있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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