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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행주 오타쿠’…설거지로 완성하는 요리의 품격

중앙일보 2021.03.23 15:00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13)

구르메 레브쿠헨 주방에는 분명 식기세척기가 있다. 하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 여러분, 오늘 밤은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식기세척기로 닦을게요.”
그날 수업이 끝난 뒤 상황을 보고, 싱크대 바로 옆에 놓인 식기세척기를 열자 “뭐야. 선생님, 식기세척기 있잖아요!”
불평까지는 아니지만, 얼마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순간적으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악덕 교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주춤한다. 아니, 전혀 주춤할 일이 아닌데도 나 혼자 살짝 당황하고 만다.
 
구르메 레브쿠헨에서는 식사를 마치면 별일이 없는 한, 다 함께 마지막 뒷정리를 한다. 욕심을 내자면 우엉 껍질을 깎거나 오징어 내장 제거 등 식재료 손질도 함께하고 싶지만, 시간상 수업 전에 일찍 온 수강생들의 도움을 받아 밑 손질을 끝내놓는다. 그렇다. 이는 요리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이므로 어쩔 수가 없다. 간혹 수강생들이 스태프나 도우미를 고용하는 게 어떻냐고 물어보는데, 스스로도 이상할 만큼 누군가를 고용해 ‘도움받는’ 것을 못 하겠다. 내가 해버리는 편이 빠르다며 수업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혼자 동분서주하느라 바쁘다.
 
수강생이 설거지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생활을 엿볼 수 았다.[사진 pixabay]

수강생이 설거지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생활을 엿볼 수 았다.[사진 pixabay]

 
꽤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재료 밑 손질부터 시작해 시끌시끌 왁자지껄,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요리가 하나씩 모두의 손에서 완성되어간다. 일단 앞치마를 벗고, 오늘의 요리가 놓인 식탁에 앉아 와인이든 주스든 건배, 그리고 설거지로 이어진다. 이 과정이 오랜 시간 길러져 온 구르메 레브쿠헨의 루틴이다. 그래서 더욱 요리교실에 찾아온 수강생들과 나 사이에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연희동까지 찾아준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자라고 생각하면, 그 사이에 제자를 둘 수 없었다.
 
“요리교실 덕분에 집에서도 설거지를 척척 할 수 있게 됐어요.”
“다른 사람 집에 갔을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설거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어느새 설거지를 하고 있어요.”
 
요리교실에 오래 다닌 제자들이 입을 모아 농담 같은 진심을 꺼내놓는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칭찬하는 건지, 설거지를 시킨 선생님을 향한 투정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겸연쩍은 기분이 든다.
 
“어머. 여기 접시에 거품 묻어 있네.”
“앗. 아직 끈적끈적거려.”
 
싱크대에서는 두 수강생이 뽀득뽀득 싹싹, 싱크대 뒤에서는 여럿이 다 닦은 식기를 착착 정리하고 있는 원활한 흐름을 끊어버리듯, 나도 모르게 시누이 잔소리처럼 쓸데없는 말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늘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그 자리를 지나갈 때, 접시에 묻은 세제 거품을 발견했을 뿐이다.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아아, 거품 조금 묻었다고 병에 걸리는 것도 아닌데. 다 같이 뒷정리를 해주고 있는데. ‘아아, 바보 같은 나’ 하며 내심 무척 후회한다.
 
음식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생기면 먹고 난 후 정리하는 것은 더럽고 귀찮은 일이 아니게 된다. [사진 나카가와 히데코]

음식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생기면 먹고 난 후 정리하는 것은 더럽고 귀찮은 일이 아니게 된다. [사진 나카가와 히데코]

 
그건 그렇고, 설거지에도 꽤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 거품을 낸 스펀지로 빡빡 뽀득뽀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따뜻한 물에 말끔하게 헹궈, 식기의 물기가 잘 마르도록 신경 써가며 큰 건조대에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 일련의 동작에 반해버릴 정도다. 그 정도로 완벽하게 설거지를 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싱크대 주변으로 이리저리 튄 물기를 깔끔하게 닦아 반짝반짝하게 정리하고 나서 주방을 떠난다.
 
‘이 사람은 집에서도 이렇게 할 것이고, 평소에도 성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겠구나’ 하며 수강생이 설거지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생활을 엿본다. 극히 소수지만, 대충대충 하는 나 대신에 가스레인지에 눌어붙은 얼룩까지 싹싹 닦아, 반짝거리게 해준다. 어떨 때는 의자 위에 올라가 환풍기에 알코올을 묻혀 빡빡. 이렇게 되면 나는 모두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으면 좋을지, 눈물이 또르르 떨어질 것 같다.
 
다음은 설거지가 끝나고 싱크대 옆에 쌓인 행주. 용도별로 행주를 나눠 쓰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행주 오타쿠’가 되었다. 요리교실 주방 서랍을 열면 툭 튀어나올 정도로 다양한 행주가 꽉꽉 눌러 담겨 있다. 조리대나 테이블, 싱크대를 닦는 식탁 행주, 설거지한 접시나 조리도구를 닦는 리넨이나 면으로 된 티타월, 무엇이든 닦고 냄비를 집을 때 사용하는 무인양품의 거즈…. 요리교실을 한 번 할 때마다 그 행주가 몇장씩 서랍에서 나오니, 뒷정리가 끝나면 꽤 많은 양이다.
 
그것들을 싱크대에서 한 장씩 벅벅 씻어, 싱크대 옆이나 조리대에 주름을 쫙 펴준 적도 많다. 어머머, 누구지? 행주에 주름도 냄새도 남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해준 사람이. 감사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하루 치 수업이나 아틀리에 일을 마친 뒤의 식탁 행주나 얼룩이 심한 것은 끓는 물에 삶아 소독한 뒤 세탁기에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수강생들이 말려준 행주까지도 냄비에 넣고 삶는다. 그럴 때마다 심술궂은 시누이가 된 기분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문경 씨, 초밥용 밥에 단촛물을 레시피의 두 배로 해서 섞어주세요.”
“네, 어머님.”
 
나보다 여섯 살 정도 많은 듯한 수강생이 이렇게 말했다. 일순 깜짝 놀랐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요리교실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면 누구나 그런 말을 듣고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녀도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자신의 본심에 놀라 민망한 듯 수줍어했다.
 
요리의 에필로그는 설거지다. 구르메 레브쿠헨의 주방에서는 오늘도 설거지에 힘쓰는 수강생들의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수다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진 pixabay]

요리의 에필로그는 설거지다. 구르메 레브쿠헨의 주방에서는 오늘도 설거지에 힘쓰는 수강생들의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수다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진 pixabay]

 
요리교실을 운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강남 자택에서 요리교실을 열던 은주 씨가 연희동 구르메 레브쿠헨에 왔다. 그 인연으로 그녀의 요리교실에 초대받아, 원데이 레슨의 강사로 스페인 요리를 가르친 적이 있다. 스페인 요리라면 파에야는 필수 메뉴라고 생각했던 나는 커다란 파에야 팬까지 준비해 은주 씨 요리교실로 향했다. 도와주는 분도 있어서 수업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연희동 수업처럼 다 함께 만들고 요리를 하나씩 완성해가는 즐거움이랄까 그런 연대감 비슷한 것이 없어서 식탁에 둘러앉아도 서로서로 아는 사람하고만 이야기했다. 그런 부분에서 조금씩 연희동과는 어딘지 다르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도 짧고 다 먹고 나서 바로 가볍게 인사만 나눈 뒤, 한 사람 두 사람 현관으로 사라져갔다. 어이가 없어서 눈을 껌뻑거린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싶었다. 식탁에는 먹다 남은 음식이 접시 위에 쌓여 있고, 포크와 나이프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다 먹고 나서 포크와 나이프는 꼭 접시 위에 올려두는 거야”라고 늘 어린 두 아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던 것은 아무 의미도 없던 것일까.
 
당연히 그곳에는 설거지라는 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은주 선생님의 요리교실에 다닌 젊은 여성은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요리를 배우러 온 것일까. 그로부터 잠시동안 연희동에서 수업을 계속하면서 요리교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되었다.
 
아버지가 요리사라 온 가족이 모이는 날에는 아침 식사 때부터 “오늘 점심에는 뭘 먹을까” 하며 늘 먹는 이야기만 하던 집에서 자란 탓일까. 또는 지금 나 자신이 음식에 관한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요리가 한 그릇이 되기까지의 과정,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한 그릇을 먹고 나서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의 시간, 먹고 난 뒤 정리하는 것까지가 귀중한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생기면 먹고 난 후 정리하는 것은 더럽고 귀찮은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요리의 에필로그는 설거지다. 구르메 레브쿠헨의 주방에서는 오늘도 설거지에 힘쓰는 수강생들의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수다 소리가 울려 퍼진다.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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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히데코 나카가와 히데코 키친 크리에이터 필진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 요리교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고 소통한 이야기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제가 주인공이 되어 '음식이 왜 삶인가'를 쓰려고 합니다. 요리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들부터 가족, 친구, 연희동 동네주민들, 식재료 거래처 사람들까지, 아주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와 저의 삶, 생각, 느낌을 문장 속에 녹여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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