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회의하는 척 도면 찰칵, 신도시 정보 새는 곳 따로 있다"

중앙일보 2021.03.23 00:34 종합 25면 지면보기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특별검사 수사와 국정조사가 거론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련 신도시 투기 사태의 판이 커지고 있다. 성범죄 사건 때문에 치르는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양성평등 이슈보다 부동산 투기 논란이 더 뜨겁다.
 문제점과 해법을 찾기 위해 부동산 전문가와 서울시 행정에 밝은 전직 관료를 만났다. 고종완(64)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와 목영만(62)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다. 고종완 교수는 부동산학을 처음 공부한 1998년부터 23년간 이론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투자의 고수'로 불린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으로 활동하며 다음 달『살 집 팔 집』을 출간한다. 

[부동산·행정 고수가 진단한 신도시와 서울시]
"정치인 고액 후원 토호에 신도시 정보 유출 가능성"
"특정 진영 예산 나눠먹기 서울시 행정 이념화 심각"
부동산 실정, 신도시 투기로 번져
계좌·통화내역·SNS 다 조사해야
서울 시민의 삶, 행정에 종속 심해
공공 주도 개발로는 집값 못 잡아

 그는 "신도시 투기의 씨앗은 이미 잉태돼 있었는데, 터질 게 터졌다"고 진단했다. 신도시 개발 방식이 ^비밀주의인 데다 ^공공이 독점해왔고 ^계획부터 실행까지 단기간에 졸속으로 추진해온 데 원인이 있다고 비판했다. "투기꾼들 눈에 몇년만에 추진하는 신도시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없다. 내부 정보만 빼내 땅을 선점하면 끝이다." 그의 진단은 통렬하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4일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4일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는 대안으로 일본 도쿄의 도쿄 롯폰기힐스, 미드 타운, 신마루노우치 개발 사례를 배우자고 조언했다. 1986년에 마스터 플랜을 짜서 17년 만에 마무리한 도심 개발 사업이다. 미리 개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고 정부가 토지를 수용해 투기꾼이 발붙일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신도시 투기 행태가 특히 궁금했다. "반드시 내부 정보를 갖고 한다. 고급 정보가 있으니 베팅하듯 대량으로 집중적으로 매입한다. 대규모 대출을 받는다. 선심 쓰듯 정보를 공유해 지인을 참여시킨다. 개발과 보상 업무를 담당해 내부 정보를 잘 아는 LH 직원은 건설사나 부동산 개발회사의 브로커로 영입될 가능성이 있다. 차명으로 거래하고 법인을 세우거나 건설사 등과 이면계약을 맺는다. 정보 제공 대가를 받거나 지분만큼 투자 이익을 챙긴다."
고종완 한양대 특임교수(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투기꾼들에게 신도시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없다"며 금융 계좌 추적, 통화내역과 SNS를 조사하면 투기 실태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고종완 한양대 특임교수(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투기꾼들에게 신도시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없다"며 금융 계좌 추적, 통화내역과 SNS를 조사하면 투기 실태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먹이사슬처럼 얽힌 신도시 기획부터 발표까지 과정도 다시 보자. 3기 신도시는 2018년 12월에 발표됐다. 그 전에 주관부처인 국토부가 LH에 후보지 물색을 요청해 LH 지역 본부로 내려갔다. LH와 경기도, 경기주택도시공사(GH), 기초 지자체가 후보지를 협의했다. 통상 기획재정부·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국방부 등과도 협의한다. 중간에 청와대·총리실에는 수시로 보고된다. 통상 당정 협의에는 국토부 장관과 여당 정책위의장, 국토교통위 간사가 참석한다. 그만큼 정보 유출 범위가 넓다는 얘기다.
 그는 "지자체 협의 단계에서 시·도 의회에 보고된다. 이 단계에서 지방 유지, 건설 토호 세력에게 정보가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고액 후원자가 개발 정보를 요구할 때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다. 후원회를 반드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2018년 9월 당시 국토교통위 소속 여당 의원은 과천·광명·시흥 등 수도권 8곳을 신규 택지 후보지로 검토한다는 내부 자료를 공개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정보 유출자는 당시 경기도에 파견 나갔던 국토부 소속 공무원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보가 술술 샐 만큼 내부 통제가 허술하다니 충격적이다. "협의할 때 휴대전화로 도면을 슬쩍 찍으면 된다. 도로를 따라 땅값이 결정되니 개발 도면에서 도로 계획을 보면 돈 되는 땅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특급 정보를 입수하면 공자·부처·예수 등 성인군자가 아닌 보통 사람은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투기보다 걸릴 위험이 낮아 더 안전하고 수익률은 10~20배 더 높으니 더 짜릿하다."
 그렇다면 숨어 있는 투기꾼을 찾는 방법은 없을까. 고 교수는 "혈연·지연·학연 등 인적 네트워크를 찾아내고 금융 계좌와 통신 내역을 추적해야 한다. 휴대전화와 SNS도 조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인과 아내, 부모와 장인·장모와의 100만원 이상 거래만 찾아도 드러난다고 한다. 그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변창흠 국토부 장관 취임 2~3개월 전에 거래된 땅을 집중 조사하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투기 광풍의 근본 원인에 대해 고 교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념을 앞세워 시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인간의 근원적 욕구 등 주거 정책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수도권 주택 보급률은 105%가 적정한데 101%라 공급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수요 억제 규제에 치중하다 보니 대책이 먹히지 않았다. 강남을 때리면 집값이 잡힌다고 착각했다. 도미노 풍선효과만 키웠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해 불평등만 심화시켰다."
 바람직한 부동산 정책은 무엇일까. "주택은 행복 여부를 결정하는 1순위다. 집은 거주·자산·연금 등 3가지 기능을 한다. 그런데 지금은 공공임대주택 천국이 됐다. 하지만 임대주택은 30년 거주한 뒤에는 나가야 하니 빈손 신세가 된다. 자기 집이 없으면 주택연금도 가입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 노후에 임대주택 거주자를 위한 국가 차원의 복지 비용만 커진다. 따라서 미래의 중산층인 3040 세대엔 임대주택보다 장기저리 융자를 통한 자가 보유를 권장해야 한다. 주거 사다리를 올라타게 해줘야 한다. 대신 빈민층에겐 공공임대 주택을 보급하고 고소득층은 시장 자율에 맡기면 된다."
 
서울시에서만 27년간 잔뼈가 굵은 목영만 한양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는 "공공이 독점하는 지금의 도심 재생 정책은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해 궁극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장세정 기자

서울시에서만 27년간 잔뼈가 굵은 목영만 한양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는 "공공이 독점하는 지금의 도심 재생 정책은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해 궁극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장세정 기자

 목영만 교수는 1981년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해 서울시청에서만 27년간 일한 행정 베테랑이다. 서울시 행정과장·환경국장, 맑은 서울 추진본부장 등을 거쳐 행정안전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그는 지난 1월『서울을 서울답게』란 책을 발간했다. 전직 공무원이 관(官) 주도 행정을 신랄하게 비판해 놀랐다. "시장이든 공무원이든 시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오만한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기반을 조성하고 민간이 잘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주택 정책을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았다. 주택을 살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이런 욕구를 충족해주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그동안 정책은 거꾸로였다는 것이다. 절차·소유권·가격·세금 등 4대 규제를 가하고 공공이 민간에 개입하니 공급이 제대로 안 되고 집값만 폭등했다는 진단이다. "집값 폭등의 비극은 2013년에 잉태됐다. 박원순 시장은 재개발(뉴타운)과 재건축 등 민간이 주도하던 주택 사업 182곳 중 150곳을 조사해 114곳의 지구지정을 해제했다. 이에 따른  충격으로 당시 민간 주택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후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폭등을 초래했다."
 3선 시장의 시정 10년에 대한 평가를 묻자 "1000만 시민의 삶이 행정에 종속됐고, 민간의 공공 종속이 고착됐다"는 혹평이 돌아왔다. 실제로 세계 150개 도시를 평가한 결과를 보면 서울의 도시 경쟁력은 2015년 11위에서 지난해 17위로 떨어졌다. SH 사장으로 박 시장과 호흡을 맞췄던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도심 재생 사업 등 공공 주도 개발에 대해 그는 "사실상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질타했다.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해 양질의 주택 공급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민선 이후 서울시장 자리가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전락하면서 행정이 이념화·정치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서울시는 조직·예산 등 행정 시스템을 통한 분배에 몰두했다. 박 시장이 만든 민주주의위원회가 예산 배분 등 의사결정에 개입했고 사회적기업 지원센터를 통해 이념이 맞는 특정 진영이 예산 나눠먹기 사업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1995년 민선 시장시대가 열린 이후 조순·고건 전 시장 때는 달랐다고 한다. 행정과 정치가 8 대 2의 대원칙을 지켰는데 박 시장 때 와서 깨졌다는 것이다. 그는 "비대해진 시장 비서실이 실·국을 장악하면서 공직사회의 집단지성이 무너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두 전문가는 누적된 부동산 실정이 3기 신도시 투기 사태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수급 원리와 인간의 원초적 주거 욕구를 무시한채 이념에 집착한 나머지 수요 억제와 공공 독점 정책에 몰두하다 국민 고통만 키웠다는 두 전문가의 분석에 십분 공감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성범죄 사건 때문에 4월 7일 보궐선거를 치르는 서울시청 본청 전경.

고 박원순 시장의 성범죄 사건 때문에 4월 7일 보궐선거를 치르는 서울시청 본청 전경.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