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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선거는 과연 민주주의의 꽃인가?

중앙일보 2021.03.23 00:22 종합 28면 지면보기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선친은 가덕도에 방조제를 쌓았습니다. 만을 방조제로 막아 간척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오늘날의 새만금 같은 발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물살이 세고 수심이 깊어 난공사였습니다. 더욱이 여름이면 태풍의 길목이 돼 애써 쌓았던 제방이 무너지기 일쑤였습니다. 5·16으로 들어선 군사정권은 그 공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야심 찬 이름의 ‘건국 토건 회사’를 경영하며 형성했던 선친의 재산은 속절없이 사라져 갔습니다. 마침내 빚을 끌어대던 선친은 완공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공사를 접었습니다.
 

60년 전 가덕도 선친의 아픈 추억
선거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탈법
염치가 없는 여당과 속 좁은 야당

집으로 밀려들던 채권자들을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심장병과 만성 두통을 얻은 것이 그때였습니다. 가덕도와 관련된 저의 쓰라린 가족사를 60년 만에 소환시킨 것은 느닷없는 신공항 소식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과거 오랜 시간과 전문적 검토를 거쳐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인데 왜 다시 불려 나와 쾌도난마식으로 처리되었는지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가덕도는 김해공항, 진해공항과 가깝습니다. 한 지역에 다닥다닥 공항 세 개가 들어서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좁은 국토 우리나라의 허브 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이라 대부분의 국제선은 인천으로 들어와 환승되는데 28조 원씩이나 들여 큰 국제공항을 또 만들어야 하는지도 궁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덕도의 지형 여건으로 볼 때 상당히 어려운 공사가 될 것입니다.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서부터 비롯되는 광대한 개펄이 훼손되고 환경은 악화할 것입니다.
 
저의 궁금증은 여당 대표의 말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이제 민주당 후보가 마음 놓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그 말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에 와서 “가덕도 신공항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을 때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무너진다”고 했었군요.
 
코로나19 상황이긴 하지만 입만 열면 ‘조(兆)’가 튀어나오는 그 대범함에 현기증이 납니다. 개인 살림도 빚을 줄이는 것이 건전한 상식인데 나라 살림인들 다르겠습니까? 천문학적인 이 빚들은 결국 누가 갚는 것입니까? 만에 하나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베네수엘라 등의 국민들이 고통을 겪게 된 것도 포퓰리즘으로 무너진 국가재정과 인플레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총선 전날,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빨리 지급하라고 지시한 것은 불공정 게임이었습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성추행이 원인이 되어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당헌을 고치면서까지 후보를 내고 불리한 부산에서 야당도 반대하기 어려운 대규모 지역 토건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것도 불공정 게임입니다. 더욱이 이 문제로 야당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이 갈라서게 됐으니 여당은 꽃놀이패로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느닷없이 터진 LH 사태로 민심이 싸늘하게 돌아서자 부산 경부선 철도를 지하화하겠다, 서울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하겠다는 대규모 토목공약이 살아납니다. 여당 서울시장 후보는 시민 1인당 10만 원씩 재난위로금도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선거가 과연 민주주의의 꽃일까요? 세계 민주주의의 지도국 미국에서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여섯 명의 사망자를 낸 것은 “표를 도둑맞았다”는 부정선거 시비 때문이었습니다. 미얀마에서 대규모 유혈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부정선거를 이유로 일어난 쿠데타에 대한 민중의 불복종입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민중 봉기로 4·19 혁명이 일어나 피로써 정권을 바꾸었지요.
 
한국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퇴임 이후가 불행하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퇴임 이후 잊혀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는 잊혀질 권리가 없습니다. 국회 청문회를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해온 결과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조기 퇴진을 자초했습니다. 청문회 때부터 재임 내내 사과만 한 그는 개인적으로도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야당은 서울시장 후보의 아름다운 단일화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정치는 결단인데, 여론조사 방법과 문항의 이 불리를 따지다 각자가 후보 등록을 했습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막판협상 끝에 두 후보가 각자 선거운동에 나서는 일만큼은 가까스로 막았습니다.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당과 욕심 많고 속 좁은 야당을 바라보며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를 생각합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당신이 살아 있음으로/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조금 더 쉽게 숨 쉴 수 있었다는 걸 아는 것//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공이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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