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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왜 식품업계 10곳 임원을 불렀을까

중앙일보 2021.03.23 00:04 경제 2면 지면보기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달 초 식품업계 임원들을 불러 가격 인상을 자제하길 바란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각 기업에선 경영·기획 담당 임원 등 제품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들이 참석했다. 10곳을 불렀지만 일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22일 "말이 협조 요청이지, 업체에 따라서는 제품값을 올리지 말라는 경고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상승 중”이라며 “제품 가격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사실상 가격을 통제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식품부, 제품값 인상 자제 요청
대두 56% 옥수수 46% 밀 50%
국제곡물값 폭등, 기업들 속앓이
“정부도 세금완화 등 지원 노력을”

글로벌 곡물 가격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글로벌 곡물 가격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업체는 제품 가격의 인상을 검토하다가 막판에 철회했다. 업계에선 “정부 눈치를 보다 어쩔 수 없이 후퇴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2월 t당 326달러였던 대두 가격은 지난달 508달러로 뛰었다. 옥수수 가격도 같은 기간 t당 149달러에서 217달러로 올랐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지난 1년간 선물 거래 가격을 보면 대두는 55.8%, 옥수수는 45.6% 각각 상승했다.
 
식품업계에선 ▶지난겨울 미국의 기록적인 한파 ▶러시아의 곡물 수출세 인상 ▶중국의 곡물 수요 증가 등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식물성 기름인 팜유 가격은 두 배(전년 동기 대비)가 됐다. 밀가루 가격은 50%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격 인상 없이) 당장은 버티지만 계속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식품업계는 일반적으로 3~6개월 분량의 원재료를 재고로 갖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 더 오르면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제품 가격을 이미 올린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 간 희비도 엇갈린다. 풀무원은 지난 1월 첫째 주 주요 대형마트에 공급하는 두부와 콩나물 납품 가격을 10~14% 인상했다. 풀무원은 국내 두부 시장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CJ제일제당과 대상도 납품 가격을 10~15% 인상했다.
 
수입산 밀을 사용하는 제과업계도 이미 제품 가격을 조정했다. 뚜레쥬르는 지난 1월 빵 가격을 평균 9% 올렸고, 파리바게뜨는 95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5.6% 인상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양산빵(봉지 빵)은 지난 10일부터 개당 100~200원씩, 평균 9% 올랐다. SPC삼립은 대형마트에서 크림빵의 판매가를 기존보다 100원 비싼 1200원으로 조정했다. 다만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라면과 과자 등은 아직 가격 인상 폭이 크지 않았다. 통계청은 소비자 물가지수를 계산할 때 품목별 가중치(전체는 1000)로 라면은 2.4, 스낵 과자는 3을 적용한다. 라면과 스낵 과자의 가중치는 커피(2.4)·달걀(2.6)과 비슷하거나 다소 높은 수준이다.
 
익명을 원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을 억누르면 언젠가는 더 큰 폭으로 뛸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상품 가격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월권 아니냐”고 말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원재료값 상승에도 개별 기업에 부담을 종용하는 방식이 얼마만큼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무조건 찍어누르는 것보다는 세금 완화 같은 방법을 통해 (식품업체의) 가격 인상 억제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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