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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지연' 유럽, 3차 유행 직면…경제 전망치 추락에 정치 지형도 '흔들'

중앙일보 2021.03.22 17:34
지난 15일(현지시간) 가동을 중단한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만 명을 넘어서자 이날부터 필수 목적 이외 외출을 금지하고, 학교·상점·음식점·박물관 등을 폐쇄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가동을 중단한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만 명을 넘어서자 이날부터 필수 목적 이외 외출을 금지하고, 학교·상점·음식점·박물관 등을 폐쇄했다. [AFP=연합뉴스]

유럽 주요국들이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지 못한 채 '3차 대유행' 위기에 처했다. 이 여파에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곤두박질치고, 각국의 정치 지형도 흔들리는 형국이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코로나19 3차 유행과 백신 접종 지연에 주요 투자은행들은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을 포함한 유럽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다국적 금융그룹 ING의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글로벌 매크로 대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1분기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8%에서 -1.5%로 낮췄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Lockdown) 조치가 3월 중에 점진적으로 해제될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로 전망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영국 바클레이즈도 내년 유로존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3%에서 4.3%로 내려 잡았다. 현재 속도라면 2분기 말에나 이동 제한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란 예상에서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버그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4.4%에서 4.1%로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성장률 전망이 상향 조정되고 있는 미국·중국 등과 달리 유럽에서 이처럼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건 상대적으로 백신 접종률이 낮은 데다 코로나19 재확산 조짐까지 나타나면서다. 각국도 속속 봉쇄 강화에 들어간 상태다.
 
프랑스는 20일부터 4주간 파리를 포함한 북부 지역에 이동제한조치를 내렸다. 이탈리아도 지난 15일부터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 등 주요 도시를 포함한 전국 절반가량에서 봉쇄에 들어갔으며 부활절 연휴인 4월 3일부터 5일까지 이탈리아 전역에서 이동을 차단할 예정이다. 독일도 코로나19 3차 유행 조짐에 봉쇄 조치를 다음달 18일까지 4주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1일 전했다.  
 
모건스탠리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가 계속된다면 또 한 번의 여름을 잃게 될 것"이라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이 2~3%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 깃발. [중앙포토]

유럽연합(EU) 깃발. [중앙포토]

관건은 백신 접종 속도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지만 최근 수급 문제로 이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FT에 따르면 인구 100명당 코로나19 백신 접종인구는 미국 37명, 영국 43명이지만 EU는 12명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접종이 지연되자 현지에선 유럽연합(EU) 내 고질적 관료주의가 배경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EU 관료들이 사후 불거질 수 있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백신 도입 계약에 미온적이었던데다,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 절차도 미국·영국 등에 비해 지연됐다는 것이다. 또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놓고 제각각 대응을 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지난 18일 EMA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결론 내린 뒤 접종을 중단했던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은 다시 접종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섣부른 조치에 접종 속도는 더 늦어지고, 백신에 대한 신뢰도도 추락시켰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난 18일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이같은 'EU의 실패'가 "10년 전 유로존 위기를 악화시켰던 EU의 관료주의와 경직성 등 근본적인 결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한 EU 관료들이 회피하면 안 되는 위험까지 회피하면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란 비판이다. 
독일 경찰이 지난해 11월 라이프치히에서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대의 행진을 막고 있다. [EPA=연합뉴스]

독일 경찰이 지난해 11월 라이프치히에서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대의 행진을 막고 있다. [EPA=연합뉴스]

또다시 봉쇄가 연장되면서 곳곳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올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임 선출을 앞둔 독일에선 여당인 기독민주당(CDU)이 14일(현지시간) 치러진 두 곳의 주의회 선거에서 참패했다. 프랑스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지난 1월 주제페 콘테 총리가 코로나19 방역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도 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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