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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제목이 ‘Pali-Pali!!(빨리빨리)’…유머의 작곡가 김택수

중앙일보 2021.03.22 17:20
재미와 유머의 음악을 쓰는 작곡가 김택수. [중앙포토]

재미와 유머의 음악을 쓰는 작곡가 김택수. [중앙포토]

 2018년 완성된 음악 ‘빨리! 빨리!’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연주하는 곡이다. 두 악기는 축 늘어진 것 같은 음형을 반복하며 연주를 시작하다가 조금씩 힘을 낸다. 음량이 커지고, 변화를 거친 끝에 음악은 달려나간다. 잘게 쪼개진 리듬을 해결해내느라 연주자들은 무척 바쁘다.
 

첫 개인 음반 내 "듣기 좋은 음악 아니어도 재미있으면 좋겠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곡가 김택수(41)의 곡이다. 워싱턴주의 ‘왈라왈라(Walla Walla) 실내악 축제’ 위촉으로 작곡했다. 그는 곡의 제목을 ‘Pali-Pali!!’라는 영문 철자로 옮겨 2018년 6월 미국에서 초연했다. 맨 앞의 느린 음악은 데드라인을 앞두고 ‘떨지 말고 침착하자’며 되뇌이는 부분이고,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작곡가는 국악의 산조에서 빨라지는 패턴을 가져다 썼다. 작곡가는 “정말 빨리 해야하는 일을 앞두고는 누구나 잠시 늘어졌다가 시작하지 않느냐”고 했다.  
 
이 곡을 포함해 네 곡을 담아 음반을 낸 김택수는 22일 기자 간담회에서 “내 곡이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재미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싶다는 생각으로 곡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택수의 곡은 재미있다. 같은 음반에 실린 또 다른 곡은 ‘잊힌 깽깽이 주자들을 위한 오마주(Homage to Anonymous Ancient Fiddlers)’다. 바이올리니스트 두 명이 무대에 오르고, 한 명은 악기의 줄을 풀어 일부러 음정을 틀리게 만들어야 한다. 작곡가는 “이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명시했다. 옛 동유럽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음정을 낮춰 연주하곤 했던 전통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고 두 연주자는 기가 막히게 어려운 음표들을 해치운다. 김택수는 “이름 없었을 명연주자들을 기리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작곡가 김택수 [사진 크라이스클래식]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작곡가 김택수 [사진 크라이스클래식]

 
소위 살아있는 작곡가들의 음악은 크게 인기가 없다. 20세기 이후 작곡가들은 듣기 좋은 멜로디, 예측 가능한 화음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택수는 이러한 현대성을 이어가면서도 재미있는, 말이 되는 음악을 쓴다. 그는 “현대음악은 재미가 없다고 하지만, 꼭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어도 들었을 때 ‘이상하게 재미있다’거나 ‘어떻게 이게 음악이 되지’이라는 반응을 얻으면 그걸로 된다는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매우면서 맛있는 음식과 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음악은 유머가 가득한 주제에서 출발해 현대적 리듬과 에너지로 완성된다.국민체조 음악과 ‘못찾겠다 꾀꼬리’를 오케스트라 연주에 집어넣어 ‘국민학교 환상곡’(2018년)을 쓰기도 하고, 찹쌀떡·메밀묵 장수의 소리로 합창곡도 만들었다. (‘찹쌀떡 Chopsalteok’, 2012년) 다음 달 9일엔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부산시립교향악단이 김택수의 짠!!(Zzan!!)을 초연한다. 한국의 음주가무를 주제로 한 신곡이다.
 
김택수는 서울 과학고,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작곡과에 다시 입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화학은 결국 물질을 해체해서 뭐랑 뭐가 반응하면 뭐가 나온다는 실험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음악도 비슷하다. 수학처럼 공식이 있진 않지만 '이렇게 하면 이만큼 정도 되더라'는 공통점이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작곡 공부를 계속했고 지금은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의 작곡 및 음악이론 교수다. 뉴욕필하모닉이 그의 작품을 연주했고, LA필하모닉도 연주를 예정하고 있다. 또한 소프라노 조수미, 피아니스트 손열음,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발레리나 김주원 등이 음반 편곡자로 그를 선택했다. 김택수는 “작곡가, 편곡자로 참여했던 음반이 30여장이지만 개인 음반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작곡가로서 자신의 음반을 내는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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