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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김정은 농구외교 최측근 캐나다인, 중국 인질외교 희생양되나

중앙일보 2021.03.22 17:07
김정은 위원장이 2013년 북한에서 마이클 스패버를 반갑게 맞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위원장이 2013년 북한에서 마이클 스패버를 반갑게 맞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김 장군(Marshall Kim)’이라 부르는 캐나다인, 마이클 스패버(46).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3년 차였던 2013년, 미국 스타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방북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핵심 인사다. 김 위원장이 그의 손을 붙잡고 환히 웃는 사진은 한때 그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이었다. 그는 2017년 서울과 일본 도쿄에서 두 차례 기자와 만나 “북한은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스패버가 2018년부터 중국 당국에 스파이 혐의로 억류 중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엔 스패버의 주요 근거지였던 북ㆍ중 접경지대 단둥(丹東) 법원에서 재판이 열렸다. 2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이 재판을 보기 위해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ㆍ영국ㆍ호주 등의 외교관들이 모였다. 중국 당국은 이들에게 법원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나 이들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 시위 성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 이 재판 소식을 전하며 “서구사회는 이 재판은 (인권 침해로 인해) 국제법 위반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클 스패버의 2017년 사진. 그의 뒤에 '충복'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AP=연합뉴스

마이클 스패버의 2017년 사진. 그의 뒤에 '충복'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AP=연합뉴스

 
스패버는 사실상 미ㆍ중 충돌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의 스파이 혐의도 불분명한 데다, 그가 구금된 당시 미ㆍ중은 중국의 대표적 IT 기업인 화웨이(華爲)를 두고 줄다리기 중이었다. 화웨이 창업주의 딸이자 부회장인 멍완저우(孟晩舟)가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억류돼 가택연금 상태에 들어간 것과 관련이 있다. 멍 부회장의 구금에 항의하기 위해 중국 당국이 캐나다인인 스패버를 구금했다는 게 WP등 주요 매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2013년 북한의 농구외교를 성사시켰던 거간꾼 스패버가 미ㆍ중 신(新) 냉전 사이에서 인질 외교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WP는 실제로 20일 보도에서 ‘인질 외교(hostage diplomacy)’라는 용어를 썼다.  
 
중국 당국은 멍완저우 부회장의 석방 협상을 위해 스패버를 카드로 쓰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멍 부회장의 석방 교섭을 미국 법무부가 고려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공식 출범한 뒤에야 이번 재판을 열었다는 시점도 미묘하다.  
 
지난 17일 중국 단둥 법원 앞에서 스패버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 AFP=연합뉴스

지난 17일 중국 단둥 법원 앞에서 스패버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 AFP=연합뉴스

 
재판 결과는 더욱 공교롭다. 재판을 지켜본 스패버 가족에 따르면 중국 법원은 이날 심리만 진행하고 판결은 보류했다고 한다. 일종의 시간끌기로 해석된다. 그의 형제인 폴 스패버는 재판 직후 현장에 모여든 서방 외교관 및 기자들에게 “마이클은 그저 평범한 캐나다 사업가이고 캐나다와 중국,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관계를 위해 건설적 역할과 특별한 일들을 해왔다”며 “그는 중국에서 살며 일하는 삶을 사랑했으며 중국을 해치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이클 스패버의 구명운동은 한국에서도 진행됐다. 그를 위한 기부 모임이 북한을 전문으로 보도하는 일부 외신 매체 기자들 주도로 수차례 열렸다. 그러나 그의 석방 여부는 현재 미국과 중국의 고차 방정식에 달려 있다. 스패버는 2017년 기자와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만나 “북한은 개방된다면 무궁한 기회를 갖고 있다”며 “나는 그에 기여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캐나다인일 뿐”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와 미국 및 호주 등 서방 국가의 외교관들이 스패버의 재판이 열리는 단둥 법원 앞에서 시위 성격으로 서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캐나다와 미국 및 호주 등 서방 국가의 외교관들이 스패버의 재판이 열리는 단둥 법원 앞에서 시위 성격으로 서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의 가족은 그를 “평범한 사업가”라고 표현했으나 사업 내용은 비범하다. 그가 차린 사업체 중엔 ‘백두문화교류사’도 있는데, 2017년 북한이 개최한 국제아이스하키축전 등이 이 회사 작품이다. 북한 관광 사업도 수차례 진행했다. 북핵 위협에 맞선 국제사회의 제재 노력과는 반대되지만 그는 자신의 의도가 정치와는 무관하며 북한의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기자에게 강조했다.  
 
그의 운명은 그러나 현재 안개 속이다. 김정은 위원장 등 북한 당국은 스패버의 구금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그의 고국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재판이 열린 19일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 당국이 스패버를 자의적으로 구금하고 재판을 불투명하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우리는 그의 석방을 최우선순위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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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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