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카세트테이프

중앙일보 2021.03.22 00:20 종합 29면 지면보기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카세트테이프의 제품명은 콤팩트 카세트다. 카세트는 자기를 띈 테이프를 보호하는 플라스틱 덮개를 뜻한다. 콤팩트 카세트는 크기를 줄인 카세트를 의미한다. 카세트테이프는 네덜란드 필립스에서 제품 개발을 담당하던 루 오텐스(1926~2021)가 발명했다. 이달 초 세상을 떠난 오텐스는 2013년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엔지니어로서 가장 후회하는 일은 필립스가 워크맨을 개발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필립스를 제치고 1979년 워크맨을 처음으로 선보인 소니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카세트테이프는 1963년 독일 베를린 라디오 전자전시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LP와 릴테이프가 주름잡던 음악 저장 매체 시장에 큰 충격이었다. 사람 얼굴만 한 릴테이프를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사이즈로 줄인 덕분에 음반 시장은 크게 변화했다. 세계적으로 카세트테이프는 1000억개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음질을 크게 끌어올린 콤팩트디스크(CD)가 1982년 모습을 드러내자 카세트테이프는 존재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손에 꼭 잡히는 뛰어난 휴대성과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CD와 공존할 수 있었다. 국내에선 90년대 ‘길보드’ 차트를 주도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믹스 테이프는 연인들의 선물 리스트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MP3플레이어를 앞세운 디지털 음악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카세트테이프는 자취를 감췄다. 재생 횟수가 증가하면 소리가 늘어지는 카세트테이프의 약점은 치명적이었다.
 
사라졌던 카세트테이프는 최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LP와 함께 레트로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지난해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은 혼성그룹 싹쓰리는 신곡을 카세트테이프로 발매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KT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판매에 나섰다.
 
유행탓일까. 정치권에선 철 지난 카세트테이프가 뱅뱅 돌아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 “촛불 정신” 카드를 다시금 꺼내 들었다. 지난 4년간 오토리버스(반복재생)된 적폐청산 테이프는 늘어질 대로 축 늘어져 큰 반향이 없다. 늘어진 카세트테이프가 만드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처량하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