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회전 때 잠시만 멈췄다면”…초등생 레미콘 참변이 남긴 것

중앙일보 2021.03.21 16:40
지난 18일, 전북 전주에서 초등학생 A군이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회전하던 레미콘 차량에 치여 숨졌다. JTBC 뉴스룸 캡처

지난 18일, 전북 전주에서 초등학생 A군이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회전하던 레미콘 차량에 치여 숨졌다. JTBC 뉴스룸 캡처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간 아이도 너무 불쌍하고, 가슴에 자식을 묻어야 하는 부모님도 너무 가엽다. 한 가정의 가장이셨을 레미콘 운전자분도 안타깝다."

 
지난 18일, 오전 8시 20분쯤 전북 전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초등학생 A군(11)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우회전하는 레미콘 차량에 치여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의 한 맘카페에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A군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변을 당했다. 우회전하던 레미콘 차량 운전자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우회전 신호 재정립' 목소리 나와

교차로 우회전. 연합뉴스

교차로 우회전. 연합뉴스

이 사고 후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제 우회전도 신호 받아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운전자의 부주의만 탓하기엔 우회전 도중에 벌어지는 위험한 사고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인천 중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70대 노인이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27t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2019년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서 발표한 '신호교차로 우회전 교통류 처리 개선 방안'에 따르면 2012년에서 2016년 사이에 발생한 신호교차로 보행사고의 17.3%가 우회전 차량에 의해 발생했다.
 
특히, '골목' 우회전과 '교차로' 우회전을 구분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A군이 사고를 당한 지점은 교차로가 아닌 골목으로 진입하는 이면도로였다. 횡단보도가 있지만, 보행자 신호등은 따로 없고 우회전 제어 신호등도 없다. 우회적 제어 신호등이란, 일반적 차량 신호등 외에 도로 오른편에 세로로 배열된 신호등이다. 한문철 교통전문 변호사는 "이런 신호등은 교차로에서 우회전하기 직전에 있는 횡단보도에 보행자 신호등이 적색일 때 우회전이 가능한 곳에 많이 설치돼있다"고 말했다. 이어 "A군이 사고 난 지점은 교차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곳에는 우회전 신호등이 따로 설치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직진하는 차선에서 골목으로 우회전할 경우, 운전자가 잠시 정차하거나 신호등을 통해 제어를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원활한 차량 흐름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서다. 한 변호사는 "신호등이 별도로 설치되면 우회전하는 차량이 밀려서 직진하는 차들이 불편을 겪고 교통이 엄청 막힐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다. 레미콘 같은 큰 차의 경우 거울을 통해 확인하고, 승용차의 경우 고개를 직접 돌려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차로 우회전 강력한 단속 필요" 목소리도

교차로에서 우회전 신호를 어기거나, 다른 차량이 신호를 어기도록 부추길 때 과태료를 내는 등 법적으로 단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16년 운전 경력의 맹모(59)씨는 "교차로에서 우회전시, 보행자 신호등이 파란 불이면 사람이 없어도 일단 멈춘다. 근데 그럴 때마다 뒤에서 심하게 경적을 울리거나, 보란 듯이 왼쪽 차선으로 나를 지나쳐서 크게 우회전하는 차들도 있다"며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사람이 없다 싶으면 그냥 우회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한국은 횡단보도에 사람이 있을 때만 우회전 단속을 한다. 운전자가 우회전하기 직전에 횡단보도가 있을 때, 차량 신호등이 적색일 경우 우선 멈춰야 한다.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고 보행자가 건너는 상황이면 차량은 정지선을 넘으면 안 된다. 다만, 보행자가 없으면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이라도 차량은 통과가 가능하다. 도로교통공단은 지난 11일 공식 블로그에 "안전을 생각하면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을 때도 멈추는 게 맞지만, 원활한 차량흐름을 위해 차량 정지 신호와 보행 신호에 대해 특별히 허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A군 사고, 운전자 과실 80~90%로 추정"

경찰 관계자는 A군 사고에 대해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골목길로 진입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문철 변호사는 이에 대해 "레미콘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건 아니다. 상식적으로 속도를 안 줄였는데 우회전이 가능하겠냐"며 "다만 레미콘의 경우 운전석이 높기 때문에 보행자가 안 보이는 사각지대가 많다. 오른쪽 조수석 앞에 거울이 여러 개 있는데 그걸 통해 확인하지 않은 게 운전자의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A군의 과실도 인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횡단보도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한다. 특히,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도 차가 오는지 살펴야 하기 때문"이라며 "다만 어린이 사고인 점 등을 참작해 운전자 과실이 80~90%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정부 "우회전 차량 일시 정지 의무 확대"

지난해 10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 따르면 정부는 우회전 직후 횡단보도 앞,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려고 할 때 등 횡단보도에서 차량의 일시 정지 의무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2022년까지 교통·산재·자살 등 국민생명 관련 3대 분야에서 사망자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지난 2018년부터 진행한 프로젝트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중점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개선 시점 등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