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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해, 1500만원 벌래? 직장인들의 '생존형 부캐' 변신

중앙일보 2021.03.21 09:00
개그맨 유재석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가수인 '유산슬'이라는 부캐(부 캐릭터)를 선보였다. 사진 MBC

개그맨 유재석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가수인 '유산슬'이라는 부캐(부 캐릭터)를 선보였다. 사진 MBC

유두래곤, 지미 유, 유르페우스, 유산슬, 닭터유, 유고스타, 카놀라 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개그맨 유재석씨를 가리키는 별칭이죠.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씨는 '본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다양한 '부캐(부 캐릭터)'를 선보였습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외모와 말투, 그리고 성격까지 바꾼 캐릭터가 발표될 때마다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밀실]<제63화>
'부캐'로 돈 버는 MZ세대

 
유씨뿐 아니라 다양한 부캐를 내세운 연예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부캐 열풍은 방송가뿐 아니라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어난 MZ세대에게도 상륙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부캐는 TV 속 부캐와는 좀 다릅니다. 월급 외 수입을 창출하는 데 활용하는 경제적 개념으로 보는 건데요. 굳이 비유하자면 예능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거죠.
 
밀실팀은 새로운 일상을 개척하고 있는 3명의 청춘을 만나봤습니다. 부캐의 세계, 한번 들여다볼까요?
 

#1. 본캐 넘은 부캐 수입? '취미생활'로 돈 벌 거야!

월 1500만원. 책 〈이번 생은 N잡러〉의 저자 한승현(34)씨가 UI 디자이너라는 본업이 아닌 부캐로 버는 돈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죠. '취미로 용돈이나 벌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여러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프로N잡러'로 거듭났습니다. 캐릭터 굿즈도 팔아 봤고, 대학에서 강의도 합니다. 작가 일이 부캐의 끝이 아닌 시작인 거죠.
 
한씨는 "회사 일이 재미 없어서 다양한 취미를 경험하려 하다 보니, 제일 잘 맞는 게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시간과 재능으로 돈을 벌었는데, 이제는 노하우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합니다.
IT 업계의 10년 차 직장인 헤더(가명·30대)는 와인에 대해 더 공부하기 위해 와인샵을 차렸다. ['조수와' 인스타그램]

IT 업계의 10년 차 직장인 헤더(가명·30대)는 와인에 대해 더 공부하기 위해 와인샵을 차렸다. ['조수와' 인스타그램]

부캐를 통해 부수입을 얻으려는 밀레니얼 세대는 점점 늘어나는데요. 지난달 10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직장인 73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 넘는 51%가 '본업 외 활동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부업을 계획 중이라고 밝힌 비율도 4명 중 1명에 달했습니다. 
 
IT업계 근무 10년 차인 헤더(가명·30대)의 부캐는 와인 전문 사장님입니다. 지난해 여름 '조수와(조금 수상한 와인 샵)'를 열었는데요.

그는 "원래 와인을 좋아했다. 더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직접 가게를 차렸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부캐에 대해선 "조금 빡센 취미생활을 하는 와인 샵 사장"이라고 정의했죠.
 

#2. 수익과 자기 계발, 두 마리 토끼 다 잡는다!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이전 세대가 했던 부업과 다를 바 없지 않냐는 거죠. 하지만 MZ세대의 부캐는 단지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자기 계발과 스펙의 일종으로 여기는 경향이 두드러지죠.
 
오태근(36)씨는 마케터가 본업입니다. 여기에 결혼식 사회자, 싱어송라이터, 콘텐트 기획자라는 부캐를 셋이나 갖고 있죠.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오씨는 "부업은 본업과 관련된 활동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본업에도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부캐 활동이 본업을 방해하긴커녕, 도움이 된다는 말이죠.
16일 밀실팀과 만난 'N잡러' 오태근씨. 오씨는 마케터, 결혼식 사회자, 싱어송라이터, 콘텐트 기획자로 여러 개의 부캐를 가지고 있다. 석예슬 인턴

16일 밀실팀과 만난 'N잡러' 오태근씨. 오씨는 마케터, 결혼식 사회자, 싱어송라이터, 콘텐트 기획자로 여러 개의 부캐를 가지고 있다. 석예슬 인턴

와인을 공부하려 와인 샵 사장이 된 헤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 모범생 트랙을 달린 인생이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뭔가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끝없이 질문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부캐 활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3. 먹고 살기 힘들 땐 부캐 한 스푼 얹어보자!

'스몰 워크, 빅 머니(small work, big money).' 
직장인이라면 열이면 열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는 문구를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MZ세대에겐 '본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전반적으로 스며들어 있죠.

 
한승현씨가 여러 직업을 넘나드는 N잡러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재미없는 회사, 불만족스러운 연봉, 그리고 불안한 미래. 한씨는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나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는 내 능력을 회사 밖에서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정년 퇴임 관련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뉴스1

정년 퇴임 관련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뉴스1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2030 취준생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 이상은 첫 직장에서 정년까지 다니는 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처음 입사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이 당연했던 과거와 달리, MZ세대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을 롤모델로 삼곤 합니다.

파이어족은 절약과 부수입을 통해 연 지출액의 약 25배를 모은 시점, 그러니까 월급을 따박따박 받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자립'을 바라봅니다. 이게 가능해지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삶을 즐기는 거죠. 대부분은 늦어도 40대 초반까지 조기 은퇴하는 걸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4. 아무나 한다? 부캐도 '프로'의 영역이라고!

개그맨 김해준의 부캐 '최준' (왼쪽). [유튜브 캡처]

개그맨 김해준의 부캐 '최준' (왼쪽). [유튜브 캡처]

다만 아무나 하는 건 아닙니다. 본캐도, 부캐도 성공적으로 키우려면 꼭 명심해야 합니다. 부캐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영역이란 점을요.
 

"돈만 빨리 많이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면 내 안의 실력이 쌓이지 않고, 일하기도 싫어져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먼저 탐구한 후에 시작하면 더 장기적으로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돼요." (한승현씨)

 

"'이것저것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 꼭 이것저것 손댄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하다 보면 모든 걸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거든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들,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시도하고자 노력하는 상황이라고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오태근씨)

 
매일 늘어나는 현실 속 부캐들, 어찌 보면 꿈과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인데요. 여러분들도 새로운 부캐를 찾고 싶으신가요?
 
백희연·박건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영상=석예슬·장유진 인턴, 백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