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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한 방 먹인 미 오웬스와 ‘성탄 카드’ 우정 나눠

중앙선데이 2021.03.20 00:21 728호 27면 지면보기

[죽은 철인의 사회] ‘마라톤 영웅’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시상식에서 손기정이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리고 있다. 앞은 3위 남승룡, 뒤는 2위 하퍼. [사진 손기정 평전]

베를린 올림픽 시상식에서 손기정이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리고 있다. 앞은 3위 남승룡, 뒤는 2위 하퍼. [사진 손기정 평전]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생(1912∼2002)을 ‘죽은 철인의 사회’에 모시지 못한 게 늘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내가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 수상자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길용체육기자상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우승할 당시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신문에 실어 큰 고초를 당한 동아일보 이길용기자의 정신을 기리는 상이다.
 

아리아인 과시 베를린 올림픽서
동양인·흑인 금메달 따 굴욕 안겨

일제에 탄압 받았지만 큰 뜻 펼쳐
보스턴 우승 일본 선수에게 축전

“스포츠로 전쟁 없는 세상 만들자”
2002 한·일 월드컵 성사에도 한몫

얼마 전 출판사 ‘귀거래사’ 김연빈 대표가 보낸 이메일을 받았다. 김 대표는 일본 메이지대 명예교수인 데라시마 젠이치가 쓴 책을 번역해 지난해 8월 〈손기정 평전〉을 냈다. 김 대표는 “‘스포츠는 국제연대를 심화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손기정 선생의 말씀을 폭력과 성적지상주의에 물든 한국 스포츠계에 던져주고 싶다”고 했다.
 
김 대표가 보내준 책을 꼼꼼히 읽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와 더불어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우의’라는 손기정 정신이 뚜렷하게 잡혔다.
 
올림픽 마라톤서 2시간 30분 벽 깨
 
손기정의 행동에서 영감을 얻은 ‘블랙 파워 설루트’. [중앙포토]

손기정의 행동에서 영감을 얻은 ‘블랙 파워 설루트’. [중앙포토]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인 손기정은 어려서부터 뜀박질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라 보통학교를 16살에 졸업한 뒤 육상 명문 서울 양정고보에 스카우트된다.
 
당시 손기정의 싸움 상대는 달리기 기록이 아니라 배고픔이었다. 그는 자서전에 “어떻게 배고픔을 이기느냐, 배고픔을 잊고 더욱 열심히 달리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안 되면 맹물로라도 주린 배를 채우고 또 달리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독지가의 도움으로 숙식을 해결한 그는 베를린 올림픽 일본대표 선발전인 메이지신궁 체육대회에서 2시간 26분 42초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남승룡, 일본 선수 2명과 함께 손기정은 보름 이상 걸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베를린에 입성한다.
 
그런데 조선인 두 명이 출전하는 걸 참을 수 없었던 일본인 코치는 “최종 출전자 3명을 정하기 위해 7월 22일 30㎞ 기록경기를 실시한다”고 했다. 대회를 불과 18일 남기고 거의 풀코스를 뛰게 한다는 미친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손기정과 남승룡은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여의도공항에 개선한 뒤 칼을 찬 경관과 형사에게 팔을 붙잡힌 채 끌려나오는 손기정. [사진 손기정 평전]

여의도공항에 개선한 뒤 칼을 찬 경관과 형사에게 팔을 붙잡힌 채 끌려나오는 손기정. [사진 손기정 평전]

8월 9일 오후 3시, 섭씨 30도의 무더위였다. 디펜딩 챔피언 사바라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갔다. 10㎞ 지점에서 손기정이 속도를 내자 나란히 달리던 하퍼(영국)가 “슬로우, 슬로우”라며 말렸다. 무더위 속에서 사바라의 속도전에 말리면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역시나 사바라는 30㎞ 지점에서 넘어져 의식불명이 되었다.
 
31㎞ 지점에서 하퍼를 떨쳐낸 손기정은 최후의 난관 비스마르크 언덕을 내장이 뒤틀리는 복통 속에서 넘어섰고, 스타디움에 1위로 골인했다. 마지막 100m는 12초대에 뛸 정도의 엄청난 스퍼트였다. 2시간 29분 19초 2. 올림픽 마라톤에서 처음 2시간 30분을 깬, 세계최고기록이었다. 하퍼가 2위, 남승룡이 3위였다. 손기정은 결정적인 조언을 해 준 하퍼와 죽는 날까지 크리스마스 카드로 우정을 주고받았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준 청동 투구를 돌려받은 손기정 선생. [중앙포토]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준 청동 투구를 돌려받은 손기정 선생. [중앙포토]

손기정이 성탄 카드로 정을 나눈 또 한 사람이 베를린 올림픽 육상 4관왕(100m, 200m, 멀리뛰기, 400m 계주) 제시 오웬스였다. 둘은 아리아인의 혈통적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 올림픽을 기획한 히틀러에게 한 방씩 먹였다. 흑인 오웬스가 단거리 금메달을 휩쓸었고, 육상의 꽃 마라톤 우승은 동양인에게 돌아갔다. 오웬스는 귀국 후 “히틀러는 올림픽 4관왕인 나와 악수하기를 거부했다. 백악관도 역시 그랬다. 올림픽에서 개선하자마자 흑인들만 사용하는 버스 뒷문에 매달려 가야만 했다”고 말했다.
 
시상식에서 입상자들은 월계관을 썼고, 우승자는 월계수 화분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연주되고 일장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손기정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은 고개를 푹 숙이고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는 것이었다. 훗날 남승룡은 “너는 부상으로 받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어서 좋았겠지만 나는 아무 것도 없어서 괴로웠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손기정은 ‘일장기 말소 사건’을 귀국선이 싱가포르를 지날 때 들었다고 한다. 손기정의 쾌거가 ‘제2의 3·1 운동’으로 번질까 두려워한 일제는 그를 대중에게서 띄어놓으려 갖은 수단을 썼다. 선수단이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을 때 손기정은 허리에 칼을 찬 경관과 사복형사에게 팔이 붙잡힌 채 중죄인처럼 끌려나왔다.
 
50년 보스턴 대회 1~3위 후배 조련
 
베를린 올림픽 육상 4관왕 제시 오웬스. [중앙포토]

베를린 올림픽 육상 4관왕 제시 오웬스. [중앙포토]

이후 손기정은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 상과에 진학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어하자 학교를 그만둔다. 메이지대에서 그를 받아줬지만 일본 정부는 ‘다시는 육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부로 입학을 허가했다. 선생은 숨지기 직전 “하코네역전(마라톤)에서 달리고 싶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광복 후 손기정은 지도자로 변신한다. 조선마라톤보급회를 결성하고 자신의 집을 합숙소로 바꿔 유망주를 조련했다. 그가 키워낸 선수가 1947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서윤복, 50년 보스턴 1,2,3위를 휩쓴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등이었다.
 
한국전쟁 때문에 참가할 수 없었던 51년 보스턴에서 일본인 다나카 시게키가 우승하자 선생은 ‘다나카 군의 우승은 아시아의 우승이라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손 기테이.’라고 쓴 축전을 보낸다. 일제에 끊임없이 탄압과 차별을 받았음에도 선생은 ‘한(恨)’을 넘어 큰 뜻을 펼쳤다. 스포츠를 통해 아시아가 연대하고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합치자는 철학이었다.
 
선생은 한-일 프로야구 교류,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일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끝난 2002년 11월 15일, 선생은 지상의 레이스를 끝냈다. 천상에서 그가 묻는 것 같다. “올림픽의 가치는, 스포츠의 참뜻은 무엇인가.”
 
1968년 ‘블랙 파워 설루트’ 손기정·남승룡에 영감 얻어
손기정과 남승룡이 베를린 올림픽 시상식에서 침통하게 고개를 숙인 모습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재현됐다. 육상 200m에 출전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토미 스미스(금메달)와 존 칼로스(동메달)는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을 하늘 위로 올렸다.
 
훗날 ‘블랙 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라 불린 이 장면은 흑인 차별을 방관하고 있는 세계를 향한 항의 표시였다. 은메달을 딴 호주의 피터 노먼도 두 선수를 지지하는 뜻의 배지를 달고 시상대에 올랐다.
 
훗날 존 칼로스는 “이 퍼포먼스는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에 나오는 손기정과 남승룡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세 선수는 관중의 심한 야유에 시달렸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두 미국 선수를 올림픽에서 영구 추방했다. 피터 노먼도 귀국 후 호주의 인종주의자들에게 협박을 받았다.
 
지난 연말 세계육상연맹 어워드에서 세 선수가 ‘회장상’을 수상했다. 반세기도 더 지나서 이들의 명예가 완벽하게 복권된 것이다. 〈손기정 평전〉을 쓴 데라시마 교수는 “너무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착실히 세계가 움직이고 있는 증거”라고 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 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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