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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거래일 연속 기계적 매도, 수익률도 저조…기금운용위 전문성 의구심

중앙선데이 2021.03.20 00:02 728호 8면 지면보기

갈팡질팡 국민연금

지난 4일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의 주식 과매도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의 주식 과매도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퇴직금과 마이너스통장 대출금을 더한 2억원으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김모(58)씨는 ‘국민연금’이란 단어만 봐도 화가 치민다. 국민연금으로 대표되는 연기금이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지난 12일까지 무려 51거래일 연속 15조원어치가 넘는 국내 주식을 팔아서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국내 우량주에 투자해 올 초까지는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요즘은 주가가 지지부진해 불안감이 더 크다.
 

과거 잣대로 국내 주식 비중 조절
개미들의 ‘공공의 적’으로 변해

작년 수익률, 삼성전자보다 낮아
비중 많은 해외주식은 10%에 그쳐

폐쇄적·불투명한 의사결정도 문제
내부 견제 장치 수탁위 유명무실

ESG 투자 2024년 500조로 늘려
신연금사회주의 갈등 빚을 우려도

그런 김씨는 15일 삼성전자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뉴스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삼성전자 지분 9.9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주총에 상정된 사외이사 연임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잡음 때문이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가 반대 의결권 행사를 권고했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내부 투자위원회(투자위)에서 찬성표를 행사하기로 정하고,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돼 국민연금의 투자기업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일부 위원들이 재논의를 요구했는 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수탁위원 두 명이 사의를 표명했다. 통상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침은 투자위나 수탁위에서 정하는데, 투자위가 결정하기 곤란한 사안 등은 수탁위로 넘겨왔다.
 
증시 안전판이 증시의 뇌관으로
 
최근 국내 증시에서 국민연금은 동학개미의 ‘공공의 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의 노후자금 833조7000억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과거 증시 침체기에 정부의 압박에 밀려 주식을 사서 논란이 됐다. 지금은 정반대다. 연일 주식을 파는 바람에 ‘증시의 안전판’이 ‘증시의 뇌관’이 됐다. 버블·인플레이션 논란으로 국내외 증시가 흔들리는 시점에 연기금의 매도세가 집중된 까닭에 증시 상승의 뒷다리를 잡은 세력으로 부각됐다.
 
물론 국민연금이 증시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순매도 행진을 이어온 건 아니다. 지난해 심의·의결된 국민연금의 5개년(2021~2025년) 자산 배분 계획에 따르면 운용 자산 가운데 올 연말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는 16.8%다. 지난해 말 21.2%였음을  감안하면 아직 20조원 넘게 더 팔아야 한다. 16.8%라는 목표치에서 최대 ±5%포인트의 오차가 허용되지만, 국민연금으로선 차익 실현으로 수익을 확정할 필요성도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다만 코스피가 2000포인트도 넘지 못하고 박스권에서 움직이던 때의 투자 잣대가 지금도 유효하느냐는 점에서 논란이다. 국내외 증시는 넘치는 유동성 덕에 지수 레벨이 한단계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익명을 원한 투자 전문가는 “시장의 충격 가능성을 무시한 기계적인 매매는 국민연금이 과연 전문성을 갖추고 돌아가는 조직인지 의심을 살 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달 말 열릴 기금운용위에서 시장 상황을 고려해 자산 배분 계획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논란 속에서 국민연금이 주식 투자로 올린 수익률도 그다지 높지 않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 주식에 176조7000억원을 투자해 34.6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벤치마크인 코스피 상승률(30.75%)보다는 높지만 코스닥(44.58%)은 물론 동학개미가 가장 많이 투자한 삼성전자(45.16%)와의 격차도 컸다. 특히 해외 주식에 국내 주식보다 많은 192조8000억원을 투자하고도 수익률은 10.76%에 그쳤다(지난해 나스닥 상승률은 43.64%).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2025년까지 국내 주식 비중을 15%로 낮추고 해외 주식 비중은 35%로 대폭 높일 예정이다. 세간에서 국민연금이 세계 3대 연기금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고 최상의 운용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유다.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 수익률은 2018년 -0.9%로 떨어지면서 악화했다가 2019년 11.3%, 지난해 9.7%(잠정치)로 반등했다. 그러나 국내외 증시의 호황을 감안하면 기대에 못 미쳤다.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총 20명의 위원이 매 분기 1회 이상 모여 의견을 나누는 구조다. 당연직 위원 6명, 근로자 대표 3명, 사용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관계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다. 곽관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기금의 투자·운용이나 기업 경영에 전문 지식이 부족한 위원들이 참여해 우려가 적지 않다”며 “실무 집행을 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와 복지부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의 투자 전문성을 한층 강화하고, 투자 판단은 투자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노후 안전판 역할 할지 의문”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수익률도 문제지만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도 국민연금의 신뢰를 깎아먹는 요인이다. 수탁위에 참여했다가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사외이사 연임안 찬성 과정에서 홍순탁 위원과 함께 사의를 나타낸 이상훈 위원(서울시복지재단 공익법센터장·변호사)은 “2015년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 찬성 이후, 내부 판단 오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외부 전문가 중심의 수탁위가 생긴 것”이라며 “초창기엔 견제가 잘 됐지만 지금은 국민연금과의 충분한 정보 공유 없이 필요할 때 소집돼 자문기구 역할을 하는 애매한 지위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이번에도 국민연금이 내부 결재 라인만 거치고 수탁위까지 사안을 넘기지 않아 찬성 의결권 행사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심지어 ISS보고서도 (수탁위에) 주지 않을 정도로 의사결정 구조가 폐쇄적이고 경직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규정상 외부 제3자인 수탁위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의사결정 관련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지난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상장사는 2416개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276개, 10% 이상은 80개다.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주총 시즌 기업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린 국민연금이 최근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도 내부 견제 장치가 부실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익공유제를 제안하고, 기업을 참여시키기 위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의 투자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공공연히 밝힌 것도 국민연금이 정치권 입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 목소리를 키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성 강화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일부 논의대로 기획재정부 산하로 옮겨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직 투명성 강화와 스튜어드십 코드의 합리적 이행을 독려하는 게 현 시점에서 차선책”이라고 덧붙였다.
 
‘유니버설 오너(거대한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를 대폭 확대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내년에는 전체 기금 자산의 절반 수준까지 ESG 투자를 확대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SG 요소를 반영한 국민연금기금 투자액은 2024년 무렵 5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산업계 친환경 바람이 거세지면서 미국·유럽의 연기금 투자도 ESG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2016년 국내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연금사회주의 논란이 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이 ESG 관련 기업·금융상품에 투자를 늘리면 ‘신연금사회주의’ 갈등을 빚을 우려가 있다. 재계 관계자는 "수익률도 그다지 높지 않고, 전문성·독립성·투명성 부족 논란만 무성한 국민연금이 과연 ‘국민의 노후 안전판’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해외 연기금 ESG 투자 급증, 작년 4경5522조원…국내외 관련 펀드 수익률 고공행진
한국조선해양·SK이노베이션·한국전력 등은 스웨덴 연기금 AP7으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지만, 노동권·인권·화석연료 사용 등 지속가능 성장 관점에서 낙제점을 받아서다. 주요 연기금들은 최근 모든 투자의 초점을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허들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 투자 분석 조직인 GSIA(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Review)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G 관련 투자·운용 자산 규모는 40조5000억 달러(약 4경 5522조원)로 2012년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정부가 ESG 정책 목표를 정하면 연기금이 투자 기준을 설정하고, 자산운용사가 이에 따라 투자를 집행해 기업의 행동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ESG 범위는 날로 넓어지고, 기준도 세분되고 있으며, 지표도 강화되고 있어 자연히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유럽의 ESG 투자 규모는 2018년 기준 14조 달러, 미국은 11조9950억 달러에 이른다. 2014~18년 연평균 증가률은 각각 6.91%, 16.23%다. 일본 이 기간 ESG 투자를 연평균 320.09% 늘렸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 CalPERS) 등 미국의 연기금의 경우 모든 자산에 책임투자 방식을 적용, 네거티브·투자배제 스크리닝으로 ESG 기준에 맞지 않는 기업을 솎아내고 있다. 네덜란드 연기금(PGGM)·노르웨이 정부 연기금(GPFG) 등 유럽은 네거티브 방식과 우수 기업 선정 등 포지티브 방식과 지역사회 투자·ESG 통합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주요국 정부도 ESG 채권을 발행해 연기금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은 국가·증권·펀드의 ESG 등급을 만들어 투자 적격도를 평가하고 있다.
 
황운경 대신경제연구소 법제도연구팀장은 보고서에서 “연기금이 ESG 투자에 나설 경우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담배 기업 투자를 포기하고 다른 품목에 투자한 캘퍼스의 결과는 긍정적이었다”며 “국민연금도 해외 연기금처럼 명확한 투자 제한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외에서 ESG 관련 펀드의 수익률은 높은 편이다. 펀드닥터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43개 ESG 관련 펀드 중 상위 10개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43.87%를 기록했다. K200인덱스펀드(40.41%)보다 높았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ESG 펀드인 마이다스책임투자증권투자신탁은 지난 3개월간 12%의 수익률(18일 기준)을 기록해 펀드 유형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K200인덱스(13.25%)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삼성전자·LG화학·SK하이닉스 등 종목을 주로 담았다. 글로벌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ESG 관련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상품은 인베스코 솔라 상장지수펀드(ETF)로 240%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ESG 관련 상품이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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