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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들 안그래도 힘든데…수천억 부품수리 관세 날벼락?

중앙일보 2021.03.19 04:57
항공기 부품 관세 감면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항공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뜩이나 업황이 좋지 않은데, 수천억원에 달하는 관세부담까지 겹칠 수 있어서다.
 

내년부터 관세면제 축소…항공업계 날벼락

내년부터 항공사 부품관세 면제가 단계적으로 축소되면서 항공사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대한항공

내년부터 항공사 부품관세 면제가 단계적으로 축소되면서 항공사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대한항공

1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항공기 부품에 적용하는 관세면제 혜택을 내년부터 연 20%씩 축소해 오는 2026년 이후 완전히 폐지한다.
 
'부품'이 아닌, 항공기에 들어가는 '완제품' 장비는 우리나라를 포함 대부분 나라에서 원래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항공이 국가 전략 산업인 데다 벨류 체인이 국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완제품이 아니라 부품에 적용하는 관세다. 예전에는 항공기 수리에 쓰는 부품에도 완제품처럼 100% 감면을 해줬다. 하지만 2013년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늘어나자 정부는 관세법상 부품 관세 면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FTA로 관세가 없어졌으니 굳이 관세 면제 조항을 국내법에 따로 둘 이유가 없어서다.
 
하지만 항공업계 특성상 FTA를 통해 부품 관세를 면제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FTA를 이용하려면 부품이 협정 체결국에서 생산했다는 원산지 증명이 필요하다. 보잉과 에어버스 등 글로벌 항공기 제작업체들은 이 원산지 증명에 소극적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원산지 증명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드니 ‘갑’의 위치에 있는 항공기 제작사들이 이를 해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실제 FTA를 이용한 과세면제 활용률을 보면 최근까지 15% 내외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국적 5개사만 매년 1000억 부담↑

관세면제 조항이 완전히 폐지되면 국내 항공사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5개 국적 항공사(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 부품 관세 면제 금액은 코로나19가 없었던 2018년(1048억원)과 19년(1017억원) 모두 1000억원이 조금 넘었다.
 
다른 저비용항공사(LCC)까지 합치면 업계 추산으로 관세 면제 규모는 약 20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이후 항공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지난 4일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면세구역. 전문가들은 백신보급에도 항공업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중앙포토

지난 4일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면세구역. 전문가들은 백신보급에도 항공업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중앙포토

최근 어려운 항공업계 사정도 관세부담을 더 커 보이게 한다. 제주항공과 진에어는 지난해 각각 3358억원과 1847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해 창사 이후 최대적자를 냈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703억원 영업손실을 봤다. 그나마 여객 대신 물류비중을 늘린 대한항공만 2383억원 깜짝 흑자를 기록했다. 
 
앞으로 전망은 더 불투명하다. 백신 보급 이뤄지고 있지만, 항공 업황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실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글로벌 여객수요가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부처 눈치 보기…"범정부 차원서 나서야"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와 항공사들은 세계무역기구(WTO) 민간항공기협정(TCA) 가입을 통해 부품 관세 면제를 받는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TCA란 항공기 부품 교역 자유화를 목적으로 미국·EU 등 32개국이 가입한 다자협정이다. 이 협정에 가입하면 항공기에 쓰는 부품은 원산지 증명 없이도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하지만 업계와 부처 간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와 항공기 제작업계는 난색이다. TCA에 가입하면 항공기 제작업체에 줬던 정부 지원 등이 불가능해질 수 있어서다. 실제 TCA는 민간항공기 연구·개발·생산에 정부 보조금 등을 금지한다.
 
항공기 제작업계 관계자는 “이제 걸음마 수준인 국내 항공기 제작업체들이 정부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발전하기 어렵다”면서 “항공사들이 코로나로 잠시 경영이 어려운 것은 알겠지만, 이 때문에 TCA를 가입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고 우려했다.
 
항공업계는 정부부처가 각자 입장만 고수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시형 한국항공협회 차장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업계나 특정 부처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코로나19로 어려운 항공업계 사정을 고려해 범정부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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