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범계 수사지휘, 겉으론 수용 뒤로는 반격…조남관의 묘수

중앙일보 2021.03.18 17:41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1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새도시 투기 의혹 수사를 위한 긴급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1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새도시 투기 의혹 수사를 위한 긴급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56·연수원 24기)이 18일 '한명숙 수사팀의 모해위증' 의혹 관련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는 대신 박 장관이 제시한 대검찰청 부장회의에 일선 고검장들도 참석하도록 했다. ‘대검 부장·고검장 확대 회의’에서 자신이 지난 5일 내린 무혐의 결정을 재심의하도록 한 것이다. 
 

'秋 인사' 포진 대검 부장 3~4명 "공정성 우려"
"집단 지성" 6인 고검장 등 확대회의 19일 10시

법조계에선 추미애 전 장관이 ‘윤석열 고립용’으로 보낸 대검 부장단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6인 고검장을 참여하도록 하면서 수적 열세를 뒤집은 조 대행의 '반격의 묘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오전 10시 열리는 확대 회의에서 기존 불기소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장관 지휘 수용하지만, 고검장 의견도 듣겠다"

조 대행은 이날 오전 발표한 입장문에서 "대검은 이번 사건 처리 과정에서 합리적 의사결정 지침에 따라 공정성을 담보하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도 "미흡하다는 장관의 수사지휘서 지적을 겸허히 수용해 '대검 부장회의를 신속히 개최해 재심의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동수) 감찰부장과 임은정 연구관(대검 감찰정책연구관) 등 조사·기록 검토 관계자들로부터 사안 설명과 의견을 청취하고 충분한 토론을 거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대행은 동시에 친정부 성향 검사장이 다수인 대검 부장단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대검 부장회의 참석자를 고검장으로 확대했다. "대검에 근무하는 모든 부장검사만의 회의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부족하다는 검찰 내·외부의 우려가 있다"며 "사건 처리 경험과 식견이 풍부하고, 검찰 내 집단 지성을 대표하는 일선 고검장들을 대검 부장회의에 참여하도록 해 공정성을 제고하고 심의의 완숙도를 높이겠다"고 하면서다.
 
박 장관은 이날 대구지검 상주지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조 대행의 이 같은 결정에 "문제없다"며 수용 입장을 밝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8일 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에 찾아 검찰 관계자들을 격려 후 떠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직원 격려차 상주지청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8일 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에 찾아 검찰 관계자들을 격려 후 떠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직원 격려차 상주지청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대검부장·고검장 확대 회의에도 최종 결정은 조남관 몫

대검 예규인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은 대검 부장회의를 검찰총장, 대검 차장, 대검 부장으로 구성하도록 규정돼 있다. 다만 검찰총장이 사안에 따라 고검장과 일선청 검사장 등을 참석하게 해 회의를 구성할 수 있게 돼 있다.

 
고검장을 포함한 '확대' 부장회의 논의를 거쳐도 사건 처분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법률적으로 검찰총장 권한을 가진 조 대행에게 있다. 부장회의에서 기소 의견이 많다 해도 조 대행이 불기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조 대행이 부장회의 의견을 액면 그대로 따른다면 검찰청법상 검사의 단독 관청 규정과 지휘 체계에 따른 의사결정 체계를 위배하게 된다는 시각까지 있다. 부장회의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지 최종 기소 여부 판단은 결국 조 대행과 주임검사인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의 몫이라는 뜻이다.
 
형사소송법 전문가인 이완규 변호사는 "검사는 검찰청법상 합의제 관청이 아닌 단독관청이기 때문에 대검 부장회의가 사건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고 법적 근거도 없다"며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근거를 들어 기소하라는 지시를 해야 했고 그 기소에 대해 후에 무죄가 선고되면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상철 서울고검장(왼쪽부터), 오인서 수원고검장, 구본선 광주고검장, 박성진 부산고검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고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상철 서울고검장(왼쪽부터), 오인서 수원고검장, 구본선 광주고검장, 박성진 부산고검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고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朴 '절차 문제'에 趙 "집단 지성에 묻자" 반박…치밀한 수 싸움

박범계 장관이 모해위증 의혹 사건 감찰에 나선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이 지난 5일 불기소 결정에 배제됐다며 절차를 문제 삼은 데 대한 반박의 의미도 있다. 
 
조 대행은 "당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 처음 외부 전문가로 '전문수사자문단'을 검토했으나 대검 감찰부에서 반대해 부득이 대검 각 부 선임 연구관 '대검연구관 6인 회의'를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했고 임은정 연구관에 의견 표명 기회를 줬으나 스스로 참석을 거부했다"라고 밝혔다. 박 장관에게 합리적 의사 결정 절차를 거부한 건 '기소' 의견을 고집하던 한동수 감찰부장과 임은정 연구관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고검장들을 회의에 참여시킨 것도 치밀한 수 싸움의 결과다. 18일 최종 결정은 조 대행 몫이지만 확대 회의에서 다수 의견이 나와야 불기소 입장을 고수할 명분이 생긴다.
 
조 대행을 뺀 대검 부장회의 구성원은 7명 가운데 간사인 조종태 기획조정부장, 이철희 과학수사부장을 제외한 이종근 형사부장,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등은 한동수 감찰부장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 부장단 중 다수가 기소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상철 서울고검장을 필두로 6명의 고검장이 부장회의에 참여하면 불기소 쪽으로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이들 고검장들은 지난해 말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사태 때 추미애 전 장관에게 "재고하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최근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립 추진에도 반대한 바 있다.
 

조남관 "지난해와 정반대 상황에 만감 교차"

조 대행은 이날 주변에 "지난해에 채널A 사건과 관련해 검찰국장으로 법무부 장관을 보좌해 수사지휘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총장 대행으로 수사지휘를 받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며 "만감이 교차하고 역지사지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추미애 전 장관이 지난해 7월 채널A 사건과 관련해 윤 전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중앙지검이 독립적으로 수사하라고 수사 지휘를 했을 때 법무부 검찰국장이 바로 조 대행이다. 
 
그는 하지만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 "LH 투기로 국민이 피곤한 데 10년 전 사건으로 신경 쓰게 해선 안 된다"라며 "수사에 일부 부적절한 측면이 없진 않겠지만 혐의 유무는 다른 차원의 성격"라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