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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정이삭과 윤여정

중앙일보 2021.03.18 00:27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혜란 문화팀 부장

강혜란 문화팀 부장

“교포 2세들이 만드는 작은 영화에 힘들지만 보람 있게 참가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저예산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이 얼떨떨하다며 밝힌 소감이다. 그는 처음에 영어로 된 대본을 읽다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란 걸 간파하고 출연을 수락했다. 그가 연기한 순자는 딸 모니카(한예리) 가족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미국 아칸소 시골농장으로 달려간다.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에겐 외할머니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정 감독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은 외할머니는 갯벌 조개를 캐서 딸을 키웠다. 그랬던 딸이 허허벌판 뙤약볕 농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어땠을까. 꼬마 정이삭은 그걸 몰랐고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다”고 투정을 부렸다. 아버지 나이가 된 정 감독은 그 애틋함을 담아 ‘미나리’를 만들었다. 골든글로브를 먼저 울린 ‘진심의 언어’에 아카데미 측은 총 6개 부문 후보로 답했다.
 
노트북을 열며 3/18

노트북을 열며 3/18

윤여정이 선뜻 나선 것은 그 자신의 이민 경험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1970년대 중반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이혼 후 최저시급 2.75달러 슈퍼마켓 캐셔로 일했던 경험이 있다. 정 감독 부모가 미국 땅에 정착하려 안간힘을 쓰던 시기와 일부 겹친다. 미국이 애초 이민자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선 해방 후 부동의 이민 선호국 1위다. 1980년대에만 약 35만 명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 내 한국계 인구가 약 170만 명이다. 선거 때면 한인 정치인 당선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유다. 이민 2세인 정 감독과 스티븐 연의 도약은 세대를 걸쳐 축적된 한국계 문화자본이 이만큼 커졌단 뜻이기도 하다.
 
전 지구적인 이주의 경제학을 분석한 책 『엑소더스』에서 폴 콜리어는 이주의 근본 동력을 더 생산성 있는 사회모델로 편입하려는 욕망으로 본다. 문제는 부유국에서 새 삶을 시도할 땐 초기 투자비용이 크단 점이다. 노동의 대가는 커질지언정 본국에서의 사회적 지위보다 더 낮게 편입되기 쉽다. 이게 개선되는 건 후대에 가서다. 그의 분석 모델에서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출신국의 처지도 나아진단 점이다. 부유국의 디아스포라(해외에 흩어진 이주자들)와 지속적인 인력·자본·이념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빈곤국의 삶이 개선된다는 논리다. 국가 전체를 떠나서 한·미 영화계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 사회에 자리 잡은 한인 자본과 커뮤니티, 인적 네트워크 없이 지난해 ‘기생충’의 쾌거가 가능했을까. ‘미나리’는 그런 교류가 낳은 성공담 2탄이고 정이삭과 윤여정은 ‘진심의 언어’로 이를 성취한 주인공들이다.
 
강혜란 문화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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