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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 부활 내 어깨에 달렸다, ‘여자 윤경신’ 류은희

중앙일보 2021.03.18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핸드볼 여제’ 류은희는 올림픽을 위해 유럽 생활을 잠시 접고 한국에 왔다. [사진 대한핸드볼협회]

‘핸드볼 여제’ 류은희는 올림픽을 위해 유럽 생활을 잠시 접고 한국에 왔다. [사진 대한핸드볼협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류은희(30·부산시설공단)의 귀국 선언에 프랑스 클럽팀 동료들은 고개를 숙였다. 체코 출신 ‘절친’ 베로니카 말라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핸드볼 1부 리그 파리(Paris) 92에서 뛰던 류은희가 동료와 함께했던 마지막 미팅 자리 풍경이었다.
 

올림픽 메달 찍고 유럽무대 복귀 꿈
코로나로 1년만에 프랑스서 귀국
지난 연말 세계선수권서 득점 2위
“기회 오면 언제든 해외 재도전”

류은희는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문화, 환경이 달라서 유럽 진출 초반에는 (적응이) 어렵고 고민도 많았다. 동료 덕분에 1년 반 무사히 뛰었다. 팀 성적이 한창 좋던 시기라 더 미안했지만, ‘네 선택을 존중한다.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며 다들 격려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류은희는 한국 여자 핸드볼에서 남자 핸드볼의 전설 윤경신(현 두산 감독)에 비견할 만한 유일한 선수다. 1m80㎝ 장신에 왼손잡이. 공수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다. 2008년 성인 무대 데뷔 후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다. 2012년 런던과 16년 리우 등 두 차례 올림픽에서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다. 한국이 2014년 인천에서 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딸 때도 선봉에 섰다.
 
국내에서는 더 이룰 게 없었다. ‘꿈의 무대’ 유럽으로 눈길을 돌렸다. 2019년 7월 파리 92와 ‘1+1년’ 계약했다. 여자 핸드볼에선 2011년 오성옥 이후 8년 만의 경사였다. 첫 시즌부터 이달의 선수(2월)로 선정되는 등 맹활약했다. 2021년 6월까지 1년 더 뛸 기회를 얻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제동이 걸렸다. 프랑스의 하루 확진자 수가 3만 명을 넘었다. 리그도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불안했던 류은희는 유럽 최고 선수의 꿈을 잠시 접었다.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신 ‘도쿄올림픽’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류은희는 “적응을 마치고 한창 뛰던 중이라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유럽을 향한 문이 닫힌 건 아니다. 당장 다음 시즌 재도전할 수도 있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해외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돌아온 류은희와 함께 부산시설공단은 창단 후 최고 성적(19승 1무 1패)으로 2020~21시즌 SK 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우승했다. 챔피언 결정전도 2전 전승으로 마쳤다. 류은희는 “리그 중간에 합류했고, 도중에 부상으로 빠졌다. 다른 선수 공이 훨씬 컸다. 동료와 즐겁게 운동하고 좋은 결과까지 나와 기분 좋다”고 말했다.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1순위 목표를 정조준한다. 여자 핸드볼은 2019년 9월 도쿄올림픽 아시아 예선 전승 우승으로 일찌감치 본선행을 확정했다. 류은희는 “5년 전 리우 때는 부상(어깨 수술)에서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고 나가 좋은 경기를 할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도쿄에서 ‘메달’의 한을 풀 생각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강호 노르웨이 등 유럽 선수는 체격부터가 다르다. 파워와 스피드까지 겸비해 더욱 어려운 상대다. 유럽에서 그들과 매일 몸싸움을 했던 류은희가 대표팀에 자신의 경험을 수혈할 시점이다.
 
류은희는 지난해 12월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69골을 터트려 득점 2위에 올랐다. 쟁쟁한 유럽세를 꺾고 물오른 기량을 뽐냈다. 그는 "확실히 ‘유럽 무대에서 뛴 효과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감도 많이 붙었다. 팀 후배 강은혜(25)처럼 젊고 체격 좋은 선수가 유럽 무대를 경험한다면, 대표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17일 진천선수촌에 모였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음성이면 곧 입소해 합숙훈련을 시작한다. 선수촌 생활은 언제나 힘들지만, 이번엔 더욱 힘들다. 류은희는 "방역 문제로 주말 외출과 배달음식 반입이 금지될 수 있다고 들었다.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다. 지금은 그게 가장 큰 걱정”이라며 웃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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