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병상의 코멘터리] 대법원 ‘한명숙 유죄’..이걸 뒤집어?

중앙일보 2021.03.17 21:27
 2017년 8월 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한 전 총리의 모습.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오른쪽 둘째)와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이 교도소로 나가 한 전 총리를 맞았다. 우상조 기자

2017년 8월 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한 전 총리의 모습.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오른쪽 둘째)와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이 교도소로 나가 한 전 총리를 맞았다. 우상조 기자

1.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 이후 이상한 사건의 연속입니다.  
17일 박범계 법무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정치자금’사건을 수사했던 검사에 대한 ‘모해위증교사’의혹을 다시 검토하라고 대검에 수사지휘했습니다. 꼭 10년전 한명숙을 수사했던 검사가 ‘증언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다시 뒤져보라는 얘기입니다. ‘대검 부장들이 검토하라’고 했지만 사실상 기소하란 얘기로 들립니다.  
 
2. 우선 한명숙이 누구인지 알아야..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가 됩니다.  
한명숙은 친노 세력의 대모입니다. 노무현정부 환경부장관을 거쳐 최초 여성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2007년 당내 대선후보, 2010년 서울시장후보였고, 2012년 민주통합당 대표까지 지냈습니다.친노쪽에서는 한명숙이 ‘이명박근혜 시절 정치적 탄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3.사건이 복잡합니다.요약하자면..2010년 수감중이던 건설업자(한만호 한신건영 대표.2018년 사망)가 ‘한명숙에게 9억 줬다’고 진술합니다. 한명숙이 기소됐는데..한만호가 법정에서 ‘돈 줬다는 거짓말이다’며 진술을 뒤집습니다. 1심 무죄. 2심에선 유죄가 됩니다. 결정적으로 한만호가 준 1억원 수표를 한명숙 동생이 전세금으로 사용한 물증 때문입니다. 대법원에서도 이 부분은 만장일치..유죄확정됐습니다.
 
4.그런데 2020년 5월 두가지 뉴스로 한명숙사건이 ‘수사검사가 위증을 강요했다’는 ‘모해위증교사’사건으로 바뀝니다.
첫번째는 뉴스타파와 MBC의 보도.한만호가 ‘검사로부터 위증(한명숙에 돈 줬다) 강요받았다’고 기록한 비망록이 보도되었습니다.
두번째는 KBS의 보도.한만호와 같이 수감생활했던 재소자가 ‘검사로부터 위증(한만호가 돈 줬다고 하는 얘기 들었다)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법무부에 진정서를 냈다는 겁니다. 두 가지 모두 한명숙을 감방으로 보낸 수사검사를 겨냥했습니다.
 
5.사실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첫번째 비망록의 경우 이미 재판과정에서 다 알려진 내용입니다. 한만호가 법정에서 주장한 내용인데다 횡설수설해 ‘신뢰성 부족’으로 간주됐습니다. 대법원까지 이런 점 감안해 유죄선고 내렸습니다. 
두번째 진정서가 이번 박범계의 지휘권행사에 직접 관련됩니다. 진정내용에 대해 지난 7월 추미애 최측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산하 인권감독관실에서 ‘무혐의’결론 내렸습니다. 그러자 추미애가 대검에 재감찰을 지휘했습니다. 윤석열 퇴임 직후인 지난 5일 대검 감찰과에서도 ‘무혐의’로 종결했습니다.  
 
6.이런 모든 절차를 거쳐 종결됐음에도 불구하고 박범계가‘유죄를 주장하는 대검감찰부(임은정 대검감찰연구관) 얘기를 들어보라’고 지휘했습니다.  
임은정의 주장에 따라 일단 ‘위증한 한만호의 동료 재소자’를 22일 공소시효에 맞춰 기소하라는 지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위증을 한 사람을 기소하면..위증을 교사한 검사에 대한 공소시효가 중지되기에 앞으로 얼마든지 수사를 할 수 있습니다.
 
7.왜 이런 무리수를 둘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한명숙 유죄확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서‘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임을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추미애도 한명숙 출소 날 말했습니다. 한명숙은 무죄, 검찰은 적폐라고..
한명숙 옥살이 중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8.물론 한명숙이 무죄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법원전원합의체에서 내린 유죄입니다. 뒤집을려면 재심을 해야합니다. 비망록이나 진정서가 재심을 해야할만한 명확한 사유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모해위증교사’혐의로 검사가 처벌받을 가능성도 높아보이진 않습니다. 대신 수사과정에선 무리한 관행이 많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로 활용될 겁니다. 만약‘정치 쇼’를 넘어 진짜로 적폐관행이 청산된다면 좋겠습니다.
 
9.박범계도 이런 법리적 한계를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여권이 내심 노리는 건 법이 아니라 정치적 효과일 겁니다. 한명숙의 억울함에 대한 동정여론과 친노 이미지 개선..그리고 한명숙에 대한 사면복권이란 면죄부까지 이뤄진다면 ‘대모 구하기’작전은 성공이겠죠.  
이런 과정은 코앞에 닥친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친노 결집’이란 득표전략이 될 수 있겠습니다.  
 
10.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무너지는 법의 안정성입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사법절차가 다시 파헤쳐지고,뒤집어지고, 부패마저 사면복권되면 안됩니다. 이런 행태야말로 정치적폐입니다. 
〈칼럼니스트〉
2021.03.17.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