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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정의용 면전서 작심발언…北·홍콩·남중국해 꺼냈다

중앙일보 2021.03.17 20:35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17일 열린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과 중국의 홍콩 자치권 침해 및 신장에서의 인권 침해 등을 거론하며 “우리는 이런 억압에 맞서야 한다. 한국과 공동의 시각을 달성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 열린 한ㆍ미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한국도 함께 중국에 맞서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게 이번 방한 목적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첫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서 작심 발언

“중국, 티벳ㆍ신장서 인권 유린”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진행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모두발언에서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침식하는 위험한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홍콩의 자치권을 조직적으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고, 대만의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있으며, 티벳과 신장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남중국해에서 국제법에 위배되는 해양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다”고 중국을 지목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전용기편으로 경기도 평택 소재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뉴스1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전용기편으로 경기도 평택 소재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뉴스1

이날 회담 모두발언은 언론에 공개하기로 사전에 합의돼 있었다. 이를 잘 아는 블링컨 장관이 모두발언에서 이처럼 중국을 직격한 것은 이번 방한에서 해당 사안들을 중요하게 다루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상 예민한 문제는 비공개 외교 회담에서만 거론하되, 언론에 알리지 않는 식으로 로키 대응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날은 사실상 작심발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北 극도로 꺼리는 인권문제 거론  

블링컨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가장 꺼리는 북한 인권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는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유린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수호해야만 한다. 이를 억압하는 이들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유린’이라는 표현은 김정은을 책임자로 사실상 명시하며,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고 권고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서 쓴 표현이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17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를 통해 도착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17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를 통해 도착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블링컨 장관은 한국도 이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우리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과 인권, 민주주의, 법치를 위한 공동의 시각을 (한국과)달성할 수 있기 바란다”면서다. 한국 역시 민주주의와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원칙을 지닌 나라라면 이런 시각을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다름 없다.  
블링컨 장관은 또 “수십년 동안 한ㆍ미 동맹은 역내 안보의 보루였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맹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수십년의 기반을 닦는 것”이라며 “그게 우리가 오늘 여기 와 있는 이유”라고도 했다.  

정의용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이날 블링컨 장관의 발언 수위는 예상했던 것보다 높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당초 동맹 복원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상견례 격의 첫 만남에서 이견이 표출될 만한 의제는 공개적으로는 거론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그간 남북관계와 한ㆍ중 관계 등을 고려해 홍콩이나 신장 등 인권 문제에서는 제대로 된 입장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3년 연속으로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초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블링컨 장관은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에 대해 함께 대응하자고 한 셈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실제 모두발언에서 양 측은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도차가 났다. 정 장관은 “한ㆍ미 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자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이라며 “한ㆍ미 동맹의 지속적인 발전은 우리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또 “오늘 회담의 결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확고히 정착해서 실질적 진전을 향해 나아가는 동력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은 북한 인권 상황을 비판했을 뿐 아니라 북한의 핵ㆍ미사일 프로그램을 주된 위협으로 거론했다. 그는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공동의 위협”이라며 “우리는 한국 및 일본을 포함한 다른 동맹들, 파트너들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北에만 집중하다 국익 놓칠 수도”

이를 의식한 듯 외교부는 회담 뒤 보도자료에서 “두 장관은 확대 회담 80분 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추가 협의를 위해 장관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25분 간 당국자 한 명씩만 배석한 채 단독 회담을 했다”며 양측이 북핵 문제에 대해 긴밀하게 조율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없었다. “두 장관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 공동의 가치 증진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연계해 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ㆍ미 간 협력을 계속 증진하기로 했다” 등이다. ‘신남방정책과 연계해’란 표현은 한국이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구상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참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 양쪽 모두에 쓰는, 전략적 모호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다만 국무부가 회담 뒤 내놓은 언론 고지문(media note) 내용은 블링컨 장관의 모두발언보다 훨씬 절제된 표현들을 담았다. ‘한ㆍ미 동맹-21세기를 위한 양자 협력의 확대’라는 제목으로 회담 결과를 담았는데, 중국이나 북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인도ㆍ태평양 협력’이란 항목에서 “인도ㆍ태평양에 대한 지속적 대화와 한국의 신남방정책과의 조율을 통해 미국과 한국은 보건 안보, 사이버 역량 강화, 에너지 안보, 민주주의 이니셔티브를 비롯한 역내 공동의 우선 사안들에 대한 목표를 달성하기를 기대한다”고만 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대중 연합 전선 구축을 앞두고 미국이 한국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강력한 압박과 설득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인권 문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단호한 입장과 원칙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 하면 이 때문에 미국이 생각하는 한ㆍ미 동맹의 층위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2+2 회의는 동맹회복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남북관계에만 집중하다 더 큰 국익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블링컨 장관은 문 대통령 예방과 정의용ㆍ서욱 장관과의 공식 회담 외에 다른 정ㆍ관계 인사들을 만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11월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방한했을 당시 다수의 여권 인사들이 왕 위원과 만난 것과는 비교된다. 당시 왕 위원은 박병석 국회의장과 송영길 외통위원장, 문정인 당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윤건영ㆍ이재정 의원 등과 식사를 하거나 따로 만났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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