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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폭탄' 선거 날린 盧정부···공시가 쇼크, 여당 갈라치기

중앙일보 2021.03.17 16:41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세계 어느 나라 유권자든 세금을 더 내라는 정부를 반기지는 않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매년 7.1%(2018년), 9.5%(2019년), 9.1%(2020년), 8.9%(2021년)씩 총지출 예산이 증가하고 있지만 “증세하겠다”는 말을 꺼려하는 건 그런 이유다.
 
그런데 4·7 재·보궐선거를 불과 3주 앞둔 지난 15일 납세자 입장에선 사실상 증세로 받아들일 사건이 벌어졌다. 국토교통부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올해 공시가격을 전국 평균 19.08% 올렸다고 발표한 것이다. 세종시만 놓고 보면 70.68%나 급등했다. 공시가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보유세 부과와 직결된다. 과거 큰 부자만 내는 세금으로 여겨졌던 종부세 부과 대상은 지난해 30만9361가구에 비해 70% 정도 늘어난 52만4620가구다.
 

野 “세금 폭탄…모두 죽이려는 정책”

 
야권은 당장 “세금 폭탄 중의 폭탄이다. 집을 가진 사람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모두 죽이려는 정책”(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역구 주민을 만나 보면 ‘집값은 정부가 올려 놓고 왜 세금은 나한테 내라고 하냐’고 한다”며 “민심이 상당히 안 좋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야권이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의 종부세 기억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종부세를 도입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정부와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내놓은 증세안에 대해 “세금 폭탄”이라고 불을 지폈다. 많은 정치 전문가들은 종부세 논란이 그해 10월 재·보선과 이듬해 5·31 지방선거에서의 열린우리당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의 기억 떠올리는 야권 

 
민주당 입장에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촉발된 공직자 땅 투기 논란 때문에 여론 흐름이 좋지 않은 데다가 세금 문제까지 불거졌으니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만큼 여권은 이번 공시가 인상의 부담이 일부 비싼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에게 집중된다고 적극 알리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대표 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공시가격 상승으로 세금 폭탄이 현실화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맞지 않는 보도”라며 “대부분의 공동주택은 재산세에 큰 변동이 없고, 공시가격 6억원 이하 1주택 세대는 오히려 세 부담이 감소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남의 고가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은 늘었다”며 일부 부유층의 부담이란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홈페이지 첫 화면에 큰 글씨로 ‘공동주택 10가구 중 9가구 공시가격 6억원 이하. 공동주택 92%는 보유세 감소’라고 소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첫 화면. 공동주택 공시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구는 보유세가 감소한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다. 화면 캡처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첫 화면. 공동주택 공시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구는 보유세가 감소한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다. 화면 캡처

‘부자 증세’에 초점 맞추는 여권

 
여권의 이러한 대응 방식은 유권자의 심리를 파고드는 셈법으로 보인다. 지난달 14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양극화 완화를 위해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늘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57.4%는 ‘동의한다’, 39.3%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개의 여론조사에서 보편적 증세에는 부정적 답변이 더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른바 ‘부자 증세’에는 이처럼 긍정적 답변이 더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번 선거가 집값 상승의 직격타를 맞은 서울의 시장을 뽑는 선거란 점이다. 공시가 9억원을 초과해 서울에서 종부세를 내는 집이 지난해에는 28만842가구였지만 올해는 47% 늘어난 41만2970가구다.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종부세 대상인 셈이다. 강남보다 강북의 공시가 인상률이 높아지면서 종부세 대상이 되는 아파트가 위치한 구(區)도 기존의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을 뛰어넘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으로 뻗어가고 있다. 이미 강서구와 성북구의 경우 종부세 대상 아파트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큰 영향” “결정적 아냐”…재·보선 영향 전망은 엇갈려

 
전문가들은 실제 이번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하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정치적 변수는 겉으로는 요란하지만 결정적이지 않을 때가 많고, 경제적 변수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 “LH 사태뿐 아니라 종부세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걸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배철호 리얼미터 전문위원은 “세금은 전통적인 선거 변수이면서도 한국 선거에서는 그동안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국정운영에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부(富)의 재분배를 위해 부자에게만 세금을 매기는 ‘부유세(富裕稅)’의 명분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철호 전문위원은 “민주당은 소위 갈라치기 방식으로 소수의 부담이라고 말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집값 오르는 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라며 “자가 소유가 아닌 사람도 앞으로 ‘저 부담이 내 문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민감한 부동산 이슈에 기름 붓는 격”  

 
민주당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코로나 재난지원금 등으로 재정이 어렵고, 공시지가 현실화는 이미 계획된 것이라 불가피한 결정”이라면서도 “LH 사태로 부동산 이슈가 민감한 상황에서 (공시가격 인상이)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고 말했다.
 
허진·송승환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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