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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봉숭아 학당’ 같은 어르신의 휴대폰 학습 교실

중앙일보 2021.03.17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83)

나이든 어른이 디지털 세상에서 헤맬 때 ‘짜잔~’하고 오지랖 청년이 나타나, 도와주고 가르쳐주는 ‘공감 세상’ 캠페인 광고가 있다. 내가 겪는 일이라 감동이다.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지만, 함께하진 못해도 이해는 해야 하는데 멍하니 있다가는 한국말도 못 알아듣는 유령 노인이 되어 버린다. 80세가 훌쩍 넘으신 어른도 요즘은 최신형 휴대폰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시골에 사는 남성 어른은 전화하고 받기 기능만 고수하신다. 그래도 여성은 사진도 찍고 문자도 곧잘 보낸다.
 
동네 지인이 시에서 하는 ‘스마트폰 갖고 놀기’ 수업을 신청해 주 2회 수업을 듣는데 어르신들이 따라 하며 즐거워한다.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리는 게 탈이지만, 하고 또 하다 보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격려하며 교육 보조자로 기웃거린다.
 
동네 지인이 시에서 하는 ‘스마트폰 갖고 놀기’ 수업을 신청해 주 2회 수업을 듣는데 어르신들이 따라 하며 즐거워한다. [사진 pxhere]

동네 지인이 시에서 하는 ‘스마트폰 갖고 놀기’ 수업을 신청해 주 2회 수업을 듣는데 어르신들이 따라 하며 즐거워한다. [사진 pxhere]

 
“하룻밤 자고 나면 깜짝깜짝 놀랄 소식을 접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내일이 궁금해서 죽기가 싫네. 허허.” 한 어르신이 고급식당에 다녀온 자랑을 하다가 곧 푸념을 늘어놓는다.
 
“우리 인생은 끝난 것 같아. 살아 있어도 어찌 보면 유령이지. 며칠 전엔 자식이랑 최신식 식당을 갔지. 의자에 앉혀줘 요란한 밥상은 받았네만 어찌나 불편한지. 이보게, 우리도 짜장면만 시켜 먹지 말고 이참에 잘 배워서 나가세. 내가 비싼 밥 한번 사리다.”
 
며칠 전 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비슷한 공감 글을 봤다. 한 어른이 햄버거가 먹고 싶어 가게로 들어가 무인 주문기인 키오스크를 입력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냥 나오면서 딸에게 슬픈 문자를 보낸다.
 
“난 이제 끝난 것 같아….”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눈앞에 먹고 싶은 먹거리를 두고도 못 먹는 세상을 살고 있다.
 
“까짓거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처박혀 살면 되지 뭐”라며 미리 체념하는 어르신을 모시고 최신 자동시스템 식당에 실습(?)을 갔다. 내가 근간에 가장 즐겨하는 봉사활동이다. 입구부터 예약한 식당 고유번호를 누르면 주차장 문이 스르르 열린다. 들어가면 엘리베이터가 바로 식당으로 안내한다. 평소엔 내가 졸병이지만 오늘은 내가 상사다.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에 예약번호를 누르라 하고 지정된 좌석에 앉는다. 얼굴 없는 신과 같은 로봇님이 물이랑 간단한 전채와 도구를 싣고 덜덜덜 가까이 오면 어른도 맞선보는 처녀 가슴이 되어 버린다. 로봇은 인사를 하며 받아 옮기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가까이 앉은 어른에게 옮기라 하니 일어서서 로봇에게 꾸벅 절하며 나른다.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다시 메인 음식이 나오고 맞은편 분이 똑같은 모습으로 일어나 꾸벅 절한다. 음식 맛보다 더 재밌는 식사시간이 되었다. “하하하.”
 
식당을 다녀온 뒷담화로 며칠이 또 즐겁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되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배우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노후가 서럽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배워 좋은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점 찾아가며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것이다. 며칠 전엔 기차 탈 일이 생겨 역에 나가니 꼬부랑 어르신이 안절부절못하시며 ‘나오는 곳’ 앞에서 서성이다가 나에게 묻는다. 서울 아들네 갔다가 아들이 기차표를 사줘 오랜만에 기차 타고 잘 도착했는데 내릴 때까지 표 검사를 안 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연세 많은 어르신과 ‘휴대폰 갖고 놀기’ 복습을 한다. 이모티콘이나 사진을 찍어 붙여서 서로 안부 묻기다. 함박웃음 웃는 행복한 시간이다. [사진 pixnio]

오늘도 연세 많은 어르신과 ‘휴대폰 갖고 놀기’ 복습을 한다. 이모티콘이나 사진을 찍어 붙여서 서로 안부 묻기다. 함박웃음 웃는 행복한 시간이다. [사진 pixnio]

 
이전엔 승무원이 돌며 가위질하거나 표 검사를 했는데 이젠 컴퓨터가 알아서 어르신 타신 걸 확인했으니 집에 들어가셔도 된다고 설명해드렸다. 그래도 미심쩍은 마음에 길게 늘어선 줄을 헤집고 표 파는 곳에 고개를 들이밀고 확인 또 확인이다.
 
오늘도 연세 많은 어르신과 ‘휴대폰 갖고 놀기’ 복습을 한다. 이모티콘이나 사진을 찍어 붙여서 서로 안부 묻기다. 함박웃음 웃는 행복한 시간이다.
 
‘발리옵미우 발니’(빨리 와 봐요 빨리)
‘농헙갓어병언지소햇어처저잉오시’(농협 가느라 병원 취소했으니 천천히 오시오)
 
백세인생에 틀리면 어떻고 느리면 어떤가? 투박한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쓴 최신 편지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신기한 세상도 살아 있을 때 경험해 보고 가야지.
 
발리밥머으로오시요하마이잇 ll( 빨리 밥 먹으러 오시오 할 말이 있어).
 
흐흐흐, 이 어르신은 밥 먹으러 오라는 글만 벌써 몇 번째다. 조만간 이런 문자가 올 것 같은 예감도 든다.
 
“빨리 나와 봐. 햄버거 먹으러 가자.”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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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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