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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공무원의 역설…LH 사태로 본 ‘정부실패’의 민낯

중앙일보 2021.03.17 05:0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청와대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청와대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람들이 정부에서 일한다고 하루 아침에 천사가 되지 않는다. (Individuals do not suddenly become angels when they get a job in government.)”
 
영국의 애덤 스미스 연구소(Adam Smith Institute) 소장을 맡고 있는 에이먼 버틀러(Eamonn Butler)는 자신의 저서 『시장실패와 정부실패: 공공선택학 입문』에서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를 비판하며 이같은 표현을 썼다. “정부가 민간보다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설명도 곁들이면서였다.
 
시장에 맡길 것이냐, 정부가 나설 것이냐의 문제는 경제학의 오래된 논쟁 거리다. 이러한 논쟁은 정치의 영역으로 와서는 ‘큰 정부’를 선호는 진보 진영과 ‘작은 정부’를 선호는 보수 진영의 싸움이 됐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국가는 시장에 모든 걸 맡기지도, 정부가 모든 걸 개입하지도 않는 적정 수준의 균형점을 찾아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직 공무원 73만5909명 역대 최대

 
보수 진영으로부터 10년 만에 정권을 찾아온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비교해 큰 정부를 지향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직 공무원 정원은 73만5909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공무원 숫자로 봤을 때 문재인 정부가 큰 정부라는 데는 상당수 전문가가 동의한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는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기조가 과연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 그동안 여권 인사들은 “정책의 실패라기보다 오히려 시장의 실패”(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라고 주장해 왔다.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에게 주택이 배분되지 않고 투기꾼에게 돌아갔으니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는 논리였다. 그래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각종 규제를 만들고, 공공주택 분양을 통해 직접 공급도 하겠다는 기조였다. 그런 연장선에서 24번이나 대책을 내놓고도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한 김현미 전 장관을 대신해 국토교통부 수장에 오른 사람이 공공성을 강조하는 변창흠 장관이었다.
 

사익 위한 공직 오·남용은 정부실패 

 
하지만 LH 사태는 정부가 항상 옳지는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정부실패라는 것이다. 행정학자 출신인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6년 자신의 논문에서 정부실패의 원인과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눴는데, 그 중 하나가 ‘사익을 위해 공직이 오·남용될 수 있다’였다. 정보를 미리 알고 개발 예정지 땅을 LH 직원들이 미리 사들인 게 들통나 촉발된 이번 사태는 정부의 모세혈관인 공공기관을 넘어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정부, 국회까지 확산하고 있다.
 
그동안 현 정부가 취해온 부동산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논문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비판적 평가」에서 “문재인 정부 3년여간 이루어진 시도들은 시장 내 개인들의 행태를 계몽적인 방향으로 조정하고 통제하고자 했으나, 그 결과는 기존 국내 주택 시장의 내재된 질서를 파괴하는 생태계 교란을 야기하여 심각한 부조화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섣부른 정부 개입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정부 만능주의에 따른 실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서도 드러난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그동안 민간 의료 전문가의 의견이 국가 방역 대책에 반영되도록 민관 합동체제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의협의 의견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백신을 조기 확보해야 한다”는 민간 전문가의 목소리가 컸지만 정부와 민주당이 나서 백신의 부작용을 부각하다가 지난해 12월이 끝나갈 즈음에야 당·정·청이 부랴부랴 백신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전세계에서 105번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꼴찌로 지난달 말이 돼서야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K-방역’이라며 자화자찬했지만, 방역 전문가의 직언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LH 사태-코로나 백신 지연, 정보 독점에 의한 정부실패”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LH 사태와 코로나 백신 확보 지연은) 정보 독점에 의한 정부실패로 볼 수 있다”며 “현 정부의 집권층은 민간에 맡기기보다 정부가 직접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부의 비효율성이 이번에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공개 채용하는 국가공무원은 6450명으로 한국 경제가 급팽창하던 1981년(6870명) 이후 40년 만에 최대다. 공공기관 340곳은 올해 2만6554명을 새로 채용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해인 2017년(1만9862명)에 비해 33.7% 늘어난 인원이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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