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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빨갱이 누명 벗었다”…제주4·3 억울 옥살이 전원 무죄

중앙일보 2021.03.16 20:20

검찰 “증거 없다…항소 않기로”

16일 제주지법에서 제주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이뤄진 가운데 생존수형인 고태삼·이재훈씨가 무죄 판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최충일 기자

16일 제주지법에서 제주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이뤄진 가운데 생존수형인 고태삼·이재훈씨가 무죄 판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최충일 기자

“나머지 인생이라도 편안히 살게 되어서 진짜 감사합니다.” 

72년 전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생존 수형인 고태삼(92)씨가 16일 무죄선고를 받은 후 내뱉은 한마디다.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하던 중 생사 소식이 끊긴 제주4·3 행방불명 수형희생자 333명과 일반재판 생존수형인 2명 등 335명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전원 무죄 판결이 나왔다. 지난 1월 4·3 행방불명희생자 10명에 대해 처음으로 무죄가 선고된 후 두 번째 집단적 무죄 판결이다.
 

“하루라도 일찍 억울함 풀어주려 하루에 재판” 

16일 오전 제주지법에서 제주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이뤄졌다. 최충일 기자

16일 오전 제주지법에서 제주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이뤄졌다. 최충일 기자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장찬수)는 이날 제주 4·3행방불명 수형인 고(故) 김순원씨와 생존수형인 고태삼·이재훈(91)씨 등 335명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에 걸쳐 진행된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이날 판결에서는 검찰의 구형대로 선고가 이뤄진 만큼 항소없이 재판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재판부는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된 피고인들과 그 유족이 이제라도 그 굴레를 벗고 평안을 찾기 바란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335명의 피고인에 대해 하루에 동시 판결 진행은 제주지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첫 대단위 ‘일괄적 재심판결’이라는 점도 주목을 받았다. 재판부가 이날 이례적으로 300명이 넘는 피고인에 대해 선고를 한꺼번에 내린 이유는 하루라도 일찍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배려 차원이다. 재심을 청구한 생존수형인과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대부분이 고령이어서다.
 

“명예 회복 실마리 준 재판부에 감사”

16일 오전 제주지법에서 제주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이뤄졌다. 무죄 선고를 받은 유가족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16일 오전 제주지법에서 제주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이뤄졌다. 무죄 선고를 받은 유가족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고(故) 박세원씨의 아들 박영수씨는 무죄 선고 후 자리에서 일어나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4·3 역사의 기념비적인 날의 명재판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영혼을 대신해 절을 올리려고 했는데 금지돼 있어 대신 목례를 올리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재판부는 무죄 선고가 이뤄질때 마다 “(행불인) 피고인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억울하게 목숨을 빼았겼다”며 “이 선고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오신 분도 계시는데,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재판 중간에 피고인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유족들에게 발언 기회를 제공했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4·3 수형인의 명예 회복을 위한 실마리를 마련해 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다만 아직도 명예 회복을 하지 못한 희생자가 많아 앞으로도 오늘과 같이 무죄를 선고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제주4·3유족회는 "법원이 1948년과 1949년에 있었던 군사재판에 의해 즉결처형되거나 수형인이 돼야 했던 행방불명인 333명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다"며 "70여년 전에 씌워졌던 빨갱이 굴레를 비로소 벗고, 진정한 명예회복의 단초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부모·형제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 유족 분들의 소원이었다”며 “오늘 판결을 계기로 행방불명 희생자들이 억울함을 풀고, 안식을 찾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70년 전 1만5000명 사망, 3631명 행방불명 

16일 오전 제주지법에서 제주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이뤄졌다. 무죄 선고를 받은 유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충일 기자

16일 오전 제주지법에서 제주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이뤄졌다. 무죄 선고를 받은 유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4·3은 광복 이후인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발생한 소요사태 당시 무고한 주민들이 대거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을 맞아 기념 집회가 열렸고, 가두시위를 벌이던 중 어린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치여 다쳤다. 항의하던 민간인에게 경찰이 총을 발포했고, 6명이 사망했다. 이후 대규모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1만5000명이 사망하고 3631명이 행방불명됐다. 당시 내란실행,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수형인은 2500명에 달한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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