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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여자화장실 변기 수 규제…배려 포장한 ‘역차별’ 법?

중앙일보 2021.03.16 09:00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44) 

우리나라 주택구조가 서구화되면서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화장실일 것이다. 수세식으로 바뀐 것도 큰 변화지만 화장실이 집안으로 들어온 것은 가히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처가와 뒷간(화장실)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도 있듯이 화장실은 본채에서 가장 멀고 외진 곳에 설치했다.
 
대부분 서민 주택의 화장실은 비바람을 피하지도 못하는 구조인 데다 조명시설도 없어 밤에는 특히 무섭고 불편한 장소였다. 게다가 화장실과 관련된 괴담을 떠올리면 더 겁이 났다. 구조도 위험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어릴 때 거기에 빠졌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이동식 변기인 요강이 있지만 그것도 그리 편리하지도 위생적이지도 않다.
 
과거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사는 집은 대부분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해야 했다. 불편하기도 했고 이웃 간에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많은 집은 세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무허가 집이 밀집해있는 동네나 가난한 사람이 집단으로 이주해 살던 지역은 더 열악했다. 남녀 구분도 되어 있지 않은 공중화장실이 마을에 고작 몇 개 있어 길게 줄을 서야 했다. 아직도 시골로 여행을 가거나 친인척 집을 방문할 때 화장실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한 계기는 아파트가 도입되면서부터다. 70년대 아파트 분양광고에는 '욕조, 양변기, 세면기, 수건걸이 설치'라는 문구가 크게 들어가 있었다. [사진 pixabay]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한 계기는 아파트가 도입되면서부터다. 70년대 아파트 분양광고에는 '욕조, 양변기, 세면기, 수건걸이 설치'라는 문구가 크게 들어가 있었다. [사진 pixabay]

 
이렇듯 화장실은 꼭 필요한 공간이면서 가장 천대받던 공간이었다. 요즘은 아무리 작은 원룸 구조라도 집집이 화장실은 필수다. 관광지로 변한 한옥마을에 있는 가옥도 대부분 실내에 수세식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다. 외관은 전통 한옥 구조인데 실내는 완전 서구식 구조로 개조해 두었다. 오랜 세월 가까이할 수 없었던 공간이 이제는 집안 깊숙이 들어왔고 주방과 더불어 인테리어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이는 공간이 되었다. 주부들에게 선택받으려면 주방과 욕실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처럼 주택의 화장실 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도입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아파트 분양광고를 보면 ‘욕조, 양변기, 세면기, 수건걸이 설치’라는 문구가 크게 들어가 있다.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 당시에는 대단한 이슈였다. 그 당시 주택구조로 볼 때 이러한 아파트 광고는 소비자를 유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지금은 규모가 작은 아파트도 대부분 화장실이 두 개 이상 설치돼 있는데도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으니 격세지감이라고 할까.
 
주택의 화장실 문화가 아파트 도입으로 획기적으로 변했다면 우리나라 공중화장실 문화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한 계기는 88서울올림픽이다. 그 전까지는 주택과 마찬가지로 시설도 재래식이었고 대부분 낡고 숫자도 부족했다. 당시는 노상 방뇨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공간인지라 우리의 화장실 시설 개선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지자체마다 아름다운 화장실을 선정해 시상했다. 그 덕에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시설이 단기간에 현대화했다. 그것은 올림픽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의 화장실 인심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후하다. 특히 무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유럽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화장실에 집중하느라 편리한 화장실을 놓쳤다.
 
여성화장실의 변기를 단순히 남성보다 한 개라도 더 설치하라는 조항은 얼핏 보면 여성을 배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배려를 포장한 불평등 조항이다. [사진 pixabay]

여성화장실의 변기를 단순히 남성보다 한 개라도 더 설치하라는 조항은 얼핏 보면 여성을 배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배려를 포장한 불평등 조항이다. [사진 pixabay]

 
공중화장실에서 여성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단체 행사장이나 공연장도 그렇지만 주말이나 명절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불편은 심각하다. 남성 화장실은 여유가 있는데 여성용이 이렇게 부족한 이유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조항에 다음과 같은 설치기준이 만들어졌다.
 
‘공중화장실 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
 
건축 관련 법 중에 여성을 배려(?)하는 유일한 법조문이다. 이 법을 달리 해석하면 남성 화장실 공간이 여유가 있다 해도 여성화장실의 변기 숫자보다 더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민원의 산물이겠지만 이러한 변기 숫자의 산술적 접근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화장실은 1인당 이용시간이 가장 큰 변수다. 여성은 남성의 이용시간과 비교할 때 대충 어림잡아도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남성보다 한 개라도 더 설치하라는 조항은 얼핏 보면 여성을 배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배려를 포장한 불평등 조항이다.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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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수필가 필진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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