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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채 폭행 영상 제보해도…"코치와 상황극" 믿은 학교·경찰

중앙일보 2021.03.16 06:00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교육부에 학교폭력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은 본 사건과 무관함. 연합뉴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교육부에 학교폭력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은 본 사건과 무관함. 연합뉴스

서울의 한 고교에서 아이스하키팀 코치가 학생들을 1년 넘게 폭행했지만, 학교와 경찰은 제보를 받고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폭행 사건에 허술하게 대응한 학교 관계자들은 교육청의 솜방망이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16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강동구 A고교 아이스하키팀 학생 폭행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이 알려지자 지난달 16일부터 6일동안 감사 인력 7명을 투입해 감사를 진행했다.
 

코치 B씨, 상습폭행·금품수수 수사 의뢰 

[연합뉴스]

[연합뉴스]

감사 결과 아이스하키팀 코치 B씨는 2019년 1월 강릉시의 한 아이스링크장 탈의실에서 학생선수 2명의 엉덩이와 머리를 하키채로 때린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해 11월에는 고려대 아이스링크장에서 학생선수 1명을 하키채로 폭행했다. 구타와 욕설을 하며 '대학 못간다'고 협박했고, 뺨을 때렸다는 목격자 진술도 나왔다.

 
B씨는 학생선수의 학부모로부터 2019년부터 2년동안 총 605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도 받는다. B씨는 청소년 대회 대표로 선발해준다며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은 B씨와 학부모의 통화 녹취와 진술을 바탕으로 혐의를 파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A고교에 B씨를 해고 하라고 권고하고 상습폭행과 금품수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B씨에게 금품을 준 정황이 있는 학부모 9명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 위반 혐의로 함께 고발했다.
 

폭행 제보에도…"상황극이었다" 변명 믿은 경찰·학교

경찰 자료사진. 연합뉴스

경찰 자료사진. 연합뉴스

B씨의 폭행 의혹은 지난해 초부터 불거졌지만, 수사기관과 학교, 교육지원청 모두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익명의 제보자가 폭행 영상이 담긴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A고교에 보냈다. A고교는 송파경찰서와 강동송파교육지원청에 학교폭력을 신고했다. 하지만 접수 약 한달이 지나 송파경찰서는 '기소의견 없음'으로 처분했다. 범죄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강동송파지원청도 마찬가지로 혐의를 찾지 못했다. 경찰과 교육청 조사에서 일부 학생들이 “폭행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코치와 짜고 한 상황극이었다”라고 한 진술을 의심없이 믿은 것이다.
 

한 반에 모아놓고 폭행 조사한 학교 관계자 '견책' 

A고교의 조사는 엉터리로 이뤄졌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제보가 접수된 다음날 A고교는 학생선수를 한 공간에 모아놓고 피해 여부를 물었다. 학생 신원을 보호할 수 없는 환경에서 조사를 한 것이다.
 
A고교는 제보 5일 만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도 열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재조사 민원을 받은 교육지원청이 A고교에 B씨의 징계를 논의하라고 했지만,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의 허술한 수사와 A고교의 부실 대응으로 학생선수의 피해가 1년 이상 이어졌지만, 학교 관계자는 가벼운 징계를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은 A고교 교장과 교감에게 경징계인 '견책' 처분을 내렸다. 운동부 담당 교사 등 6명에게는 경고·주의 처분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관계자는 "제보를 받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A고교 관계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었다"며 "감독 소홀이 드러난 책임자에게는 징계 관련 규정에 따라 견책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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