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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 4월, 악의 신 아포피스가 지구 온다…충돌확률 2.7%

중앙일보 2021.03.16 05:00 종합 23면 지면보기
지구로 돌진하는 소행성을 상상한 그래픽.

지구로 돌진하는 소행성을 상상한 그래픽.

 ‘악(惡)의 신’. 지난 6일 지구를 스쳐 지나간 소행성 아포피스의 뜻이다. 이집트 신화 속 태양신 라와 대결하는 신인 아펩의 그리스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태양신 라가 질서와 빛ㆍ정의를 상징한다면, 아포피스는 혼돈과 어둠을 뜻한다.    
 

400m급 소행성, 8년 뒤 지구 근접
정지궤도 위성보다 4000㎞ 가까워
충돌할 경우 히로시마 원폭 8만배
미국·프랑스 등 주요국 탐사 계획

2004년 12월 미국 국립광학천문대 산하 킷픽 천문대가 발견한 이 소행성은 지름이 미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조금 큰 400m에 달한다. 아포피스는 지구와 가까운 공전 궤도를 돌고 있는데 10년에 한 번꼴로 지구와 가까워진다. 지난 6일엔 지구에서 1680만㎞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가 초당 4.58㎞의 속도로 지나갔다.    
 
이 정도면 수많은 지구 근접 소행성 중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악의 신이라는 살벌한 이름으로 불린 이유는 따로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 따르면 아포피스는 100년 이내 지구 충돌 확률이 100만분의 1 보다 높은 지구위협천체 4개 중 하나로 꼽힌다. 발견 당시 천문학자들은 아포피스가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2.7%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때가 앞으로 8년 뒤인 2029년 4월14일 6시46분이다. 이때 아포피스와 지구와의 거리는 약 3만7000㎞. 무궁화위성과 같은 정지궤도 위성보다 약 4000㎞ 더 가까운 거리다. 이 정도면 3~4등급의 밝기로, 맨눈으로도 관측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아포피스 크기의 소행성이 이처럼 지구에 가까이 접근할 확률은 1000년에 한 번이라고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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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피스가 지구에 떨어진다면

 
아포피스처럼 지름 400 m에 가까운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지름 20~50 m급 소행성만 하더라도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1908년 러시아 퉁구스카에는 지름 50 m급 소행성이 떨어져 주변 2000㎢의 산림이 초토화됐다. 지름이 400 m일 경우 폭발력이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8만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름 10㎞에 달하면 지구 생물의 대멸종을 일으킬 수 있다. 중생대 백악기 지구의 지배자였던 공룡을 멸종시킨 것이 지름 7~10㎞의 소행성이나 혜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해 말 한국지질연구원이 발표한 직경 4㎞의 경남 합천 운석 충돌구엔 5만년 전 지름 200 m가량의 운석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질연구원 측은 당시 “합천 운석 충돌로 서울~부산까지 초토화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9년 4월, 지구는 별일이 없을까. 과학자들은 아포피스가 과학소설(SF) 영화 ‘딥 임팩트’(1998)처럼 지구와 충돌하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르다고 판단한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장은 “아포피스는 아직 멀리서 관찰한 게 전부여서 길쭉한 감자 모양을 했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라며 “2018년 초 미국 항공우주국의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 호가 태양계 끝 카이퍼벨트에서 찍어 보낸 소행성 울티마툴레처럼 아포피스가 두 개의 천체가 맞닿아 있는 눈사람 모양일 경우 지구에 근접할 때 균열이 생겨 둘로 나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꼭 2029년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아포피스의 큰 덩어리 일부가 지구에 충돌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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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피스 맞이 경쟁 나선 세계 주요국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포피스가 2029년 지구에 근접하기를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 과학자들은 인류가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포피스가 지구 가까이 오기 전에 탐사선을 보내 정확한 형태와 지질 성분을 파악하고, 혹 분열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 본부장은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확인될 경우엔 영화 딥 임팩트처럼 소행성에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방향을 바꿔놓아야 한다”며 “인류가 가진 기술로 지름 300~400 m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2029년 ‘아포피스 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MIT 등 4개 기관에서 탐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대만과 프랑스도 아포피스 탐사를 선언했다. 한국 정부도 특정 소행성을 정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지만 2018년 1월 발표한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에서 소행성 탐사를 밝힌 바 있다.     
지난 6일 소행성 아포피스가 지구로부터 1680만㎞ 지점까지 접근했다가 초당 4.58㎞ 속도로 지구 근방을 통과했다. 괄호 안이 아포피스 소행성. 천문연이 촬영했다.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지난 6일 소행성 아포피스가 지구로부터 1680만㎞ 지점까지 접근했다가 초당 4.58㎞ 속도로 지구 근방을 통과했다. 괄호 안이 아포피스 소행성. 천문연이 촬영했다.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한국도 소행성 탐사 계획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2018년 우주위원회 회의에서는 2035년까지 한국형발사체를 이용해 소행성 탐사선을 자력 발사하고, 현지에서 시료를 채취한 후 지구에 귀환하는 시나리오를 통해 도킹과 지구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한다는 정도의 계획만 세웠다”며 “아포피스 소행성이 이슈가 되고 있는만큼 일정을 2029년으로 당길 수 있는지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천문연구원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주재한 ‘과학기술미래포럼’에서 아포피스 소행성 탐사(안)을 발표했다. 2023년 탐사 프로젝트를 시작해 최소 2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2026년 말이나 2027년 초에 소행성 탐사선을 쏘아 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2028년 12월 지구로 다가오는 아포피스와 미리 만날 수 있게 된다. 천문연은 아포피스 맵핑(자세한 지형 촬영)과 고해상도 영상을 확보해 위험요소를 확인하고, 큰 문제가 없을 경우 초소형 로봇을 이용한 근접 탐사 등을 한 후 지구로 돌아오거나, 또 다른 소행성 탐사를 위해 떠나는 일정을 세워두고 있다.     
 
천문연구원에 따르면 15일 현재 크기가 140m보다 큰 ‘지구위협 소행성’이 2173개에 달한다. 또 지구 위로 매일 떨어지는 유성도 100t에 이른다. 6600만 년 전 공룡 대멸종의 주범이 소행성이었던 것처럼, 35만 년 전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도 언젠가 소행성 충돌로 멸종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전에 지구온난화나 핵전쟁이 먼저 찾아올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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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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