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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 끝 그래미상 리처드 용재 오닐 “비올라에게 위대한 날”

중앙일보 2021.03.16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14일(현지시간)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등에서 열린 제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로 ‘베스트 팝 그룹/듀오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오른 방탄소년단(BTS)의 수상은 불발됐다. 하지만 ‘베스트 클래식 기악 독주(Best Classical Instrumental solo)’부문에서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3)은 그래미를 안았다.
 

‘베스트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
“힘들게 음악 해온 내게 큰 의미
BTS 이미 수상 자격, 꼭 타게될 것”
4대 본상 모두 여성…“보수성 깼다”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오닐은 “나는 음악적 배경도 없었고, 큰 도시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힘들게 음악을 했고, 항상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노력했다”며 “그래서 이번 수상은 내겐 큰 의미”라고 했다. 그는 미국 작곡가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54)의 비올라 협주곡을 녹음한 음반으로 그래미를 받았다. 앞서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한 그는 지난해엔 유서 깊은 현악 4중주단인 타카치 콰르텟의 멤버로 합류했다.
 
오닐이 한국에 알려진 건 2004년 KBS 다큐멘터리 ‘인간 극장’을 통해서다. 6·25 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어머니를 두고 워싱턴주 작은 도시 세큄에서 음악가로 성장한 인생사가 소개됐다. 오닐이 그래미 후보로 지명된 건 모두 세 차례. 2005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베스트 독주자, 2010년엔 베스트 실내악 음반의 후보로 올랐다.
 
오닐은 “그래미는 클래식 음악가 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엔지니어, 프로듀서, 작곡가, 언론인 모두가 전문성을 가지고 인정한 결과여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미의 공식 영상을 통해 “비올라에게 위대한 날”이라는 말도 했다. 음역대가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인 비올라는 보통은 주인공이 아니었던 악기다. 비올라로 그래미를 수상한 연주자는 킴 카시카시안(69) 정도다. 오닐은 “비올라는 오케스트라 악기, 다른 악기와 함께 하는 실내악 악기로 취급된다. 하지만 테오파니디스가 쓴 비올라 음악의 힘을 그래미가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리스계 미국인인 테오파니디스는 2001년 곡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 해 9·11 테러 충격으로 한동안 작곡하지 못했다. 여러 번 고쳐 쓴 끝에 마지막 3악장에 희생자에 대한 추모, 인종간 평화에 대한 소망을 담았다. 오닐은 “2018년 작품 개정을 끝낸 작곡가가 나에게 개정판 첫 연주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그해 말 뉴욕주 올버니 심포니와 함께 실황 녹음한 음반이 이번 수상작이다. 오닐은 “보통 비올라 음악은 어둡고 조용하지만, 이 곡은 파워풀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당시 연주에서도 비올라 곡으론 드물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수상 불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대륙을 가로질러 수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내 생각에 그들은 이미 수상 자격이 있다. 그들의 팬의 한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꼭 수상하리라고 믿는다. 확실하다.”
 
오닐은 매년 한국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리처드 용재 오닐의 선물 2020’ 무대를 올렸다. 오닐은 “오는 8월 타카치 4중주단과 내한을 예정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불투명한 상태”라며 “라이브 음악을 자유롭게 연주할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이 14일 한국 가수 처음으로 음악계 최고 영예의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독 무대를 펼쳤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이 14일 한국 가수 처음으로 음악계 최고 영예의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독 무대를 펼쳤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한편 이번 그래미는 4대 본상(제너럴 필드) 트로피가 모두 여성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등 특유의 ‘보수성’을 깼다는 평가가 나온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는 흑인 인권 운동을 다룬 노래들도 대거 수상했다. 백인·남성 중심의 시상식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려 변화의 물꼬를 텄다는 분석이다.
 
‘Z세대의 아이콘’ 빌리 아일리시는 2019년 11월 발표한 싱글 ‘에브리싱 아이 원티드(everything i wanted)’로 2년 연속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했다. 지난해 그는 첫 정규 앨범과 타이틀곡 ‘배드 가이’로 신인상은 물론 올해의 레코드·앨범·노래 등 4대 본상을 석권했다. ‘올해의 앨범’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포크로어(folklore)’가 차지했다. 2010년 ‘피어리스’, 2016년 ‘1989’에 이어 세 번째 수상이다. 메건 더 스탤리언은 신인상을 비롯, 3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미국 노예 해방의 날(6월 19일)을 기념해 발표한 싱글 ‘블랙 퍼레이드(BLACK PARADE)’로 올해 최다 부문(9개)에 노미네이트된 비욘세는 솔로 가수 최다(트로피 28개) 수상 기록을 세웠다. 그는 “가수로서 우리 역할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모든 흑인 아티스트를 격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의 노래’는 허(H.E.R)의 ‘아이 캔트 브리드(I Can’t Breathe)’에 돌아갔다. 지난해 백인 경찰에게 목숨을 잃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자 BLM의 슬로건이다. 허는 “저의 두려움이 이렇게 큰 변화와 영향을 가져올 줄 몰랐다. 이것이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변화”라며 “2020년 여름 우리가 싸운 에너지를 유지하자”고 강조했다. 릴 베이비는 ‘더 비거 픽처(The Bigger Picture)’ 무대에서 흑인이 백인 경찰에게 폭력 제압당하는 장면을 재연하기도 했다. 한국계 뮤지션 앤더슨 팩도 지난해 미국이 처한 현실에 대한 저항 메시지를 담은 ‘록다운(Lockdown)’으로 ‘베스트 멜로딕 랩 퍼포먼스’에 선정됐다.  
 
김호정·민경원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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