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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그래미 3수 리처드 용재 오닐 "BTS도 언젠간 꼭…"

중앙일보 2021.03.15 10:15
그래미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연합뉴스]

그래미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연합뉴스]

 “나는 음악적 배경도 없었고, 큰 도시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힘들게 음악을 했고, 항상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내내 노력해왔다. 그래서 이번 수상은 더 의미가 크다.”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3)가 15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래미 수상 수감을 전했다. 오닐은 14일(현지시간) 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클래식 기악 독주(Best Classical Instrumental solo)’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미국 작곡가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54)의 비올라 협주곡을 녹음한 음반으로 그래미를 받았다.
 
오닐은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비올라 연주자 중 하나다. 저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섰고 지난해에는 유서 깊은 현악 4중주단인 타카치 콰르텟의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했다.
 
그가 한국에서 알려진 계기는 2004년 KBS 다큐멘터리 ‘인간 극장’. 6ㆍ25 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어머니와 조부모를 두고 워싱턴주 작은 도시 세큄(Sequim)에서 자라며 음악가가 된 내용이었다. ‘용재’라는 중간 이름은 당시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만난 강효 교수가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 전화 인터뷰에서 오닐은 “인생에서 그 무엇도 기대한 적이 없었다. 모든 기회는 예측할 수 없이 생겼다”고 했다.
 
오닐은 이번까지 총 세 번 그래미의 후보로 지명됐다. 2005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베스트 독주자, 2010년엔 베스트 실내악 음반의 후보로 올랐다. 오닐은 “2020년은 팬데믹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더욱 기대하지 않았는데 세번째가 행운의 숫자가 됐다”며 “특히 그래미는 클래식 음악가 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엔지니어, 프로듀서, 작곡가, 언론인 모두가 전문성을 가지고 인정한 결과이기 때문에 나에게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콜로라도에는 폭설과 강풍으로 전기가 끊어질 정도인데 이런 소식을 들어 더욱 기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래미의 공식 영상을 통해 “비올라에게 위대한 날”이라는 말도 했다. 음역대가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인 비올라는 보통은 주인공이 아니었던 악기다. 비올라로 그래미를 수상한 연주자로는 킴 카시카시안(69) 정도가 꼽힌다. 오닐은 비올라 음악으로 그래미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작곡가의 힘이 크다고 말했다. “비올라는 오케스트라 악기, 또는 다른 악기와 함께 하는 실내악 악기로 취급된다. 하지만 테오파니디스가 쓴 비올라 음악의 힘을 그래미가 인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계 미국인인 테오파니디스는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2001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해 발생한 9ㆍ11 테러의 충격으로 한동안 작곡을 하지 못했다. 작품을 여러번 개정한 끝에 마지막인 3악장은 희생자에 대한 추모, 인종간 평화에 대한 소망을 담게 됐다. 오닐은 “2018년 작품 개정을 끝낸 작곡가가 나에게 개정판 첫 연주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그해 말 뉴욕주의 올버니에서 올버니 심포니와 함께 이 곡을 연주해 실황을 녹음한 음반이 이번 수상작이다. 오닐은 “보통 비올라 음악은 어둡고 조용하지만, 이 곡은 파워풀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며 “당시 연주에서도 비올라 곡으로는 드물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번에 수상한 부문에서 오닐과 함께 후보로 오른 음악가들은 쟁쟁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으로 전세계 음악계의 총아로 떠오른 독일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뛰어난 기교를 자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러시아의 자존심인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21세기의 가장 각광 받는 작곡가 토마스 아데였다. 오닐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고 했다. 오닐과 함께 녹음한 올버니 심포니 또한 미국의 지역 오케스트라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대형 악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는 “현존 작곡가의 음악을 꾸준히 발굴하고 알리는 악단이며 모든 연주자들이 같이 연주해봐야할 단체”라고 소개했다. 또 “팬데믹 기간 대형 음악 단체들이 모든 공연을 취소하는 와중에도 올버니 심포니만큼은 연주를 지속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고 했다.
 
그는 또 방탄소년단(BTS)의 그래미 수상 불발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대륙을 가로질러 수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내 생각에 그들은 이미 수상 자격이 있다. 그들의 팬의 한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꼭 수상하리라고 믿는다. 확실하다.”
 
오닐은 매년 한국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리처드 용재 오닐의 선물 2020’ 무대에서 연말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줬다. 오닐은 “올해 8월 타카치 4중주단과 내한을 예정하고 있는데 코로나19와 자가격리 등의 상황으로 성사가 불투명한 상태”라며 “라이브 음악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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