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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처럼 구제역도 K-진단키트, "방역 골든타임 지켰죠"

중앙일보 2021.03.15 06: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키트로 K-방역이 이름을 떨치기 전 세계의 인정을 받은 K-진단키트가 있다. 정부 기관의 업무를 감찰하는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모범사례’로 꼽은 구제역 진단키트다.
 

구복경 검역본부 연구관 인터뷰

한국은 지난 2000년 이후 구제역의 공격을 받아 왔다. 지금까지의 대응 과정에서 소·돼지 등 약 390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고, 피해액은 3조3436억원에 이른다. 2010년 350만 마리를 살처분하며 최악의 피해를 겪은 뒤 2011년부터는 전국적인 백신 예방 접종을 실시했다. 구제역은 소·돼지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이 걸리는 병으로 전염성이 매우 강해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중요 가축 전염병으로 지정했다.
 

“국가적 재난, 공무원이 미리 준비해 둬야”

구제역 예방접종을 하려면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무슨 ‘혈청형’인지 알고 그에 맞는 백신을 써야 한다. 한국과 주변국에 주로 발생하는 구제역 바이러스 혈청형은 O형·A형·Asia1(아시아1)형이다. 만약 O형 백신을 접종한 해에 A형 구제역 바이러스가 확산하면 국가 대응은 곧바로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A형 접종을 시작한다. O형 백신은 A형 구제역 바이러스에 무용지물이다. 구제역의 전염성이 강한 만큼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 구복경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사진 구복경 연구관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 구복경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사진 구복경 연구관

문제는 기존의 진단키트로는 현장에서 양성·음성만 확인할 수 있을 뿐 해당 바이러스가 어떤 혈청형인지는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를 실험실로 옮겨 하루 이상 걸리는 검사를 해야 했기에 신속한 초동 대처가 불가능했다. 
 
방역 대응이 더 빨라져야 한다고 생각한 구복경(사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은 2017년 11월 구제역진단과 근무 당시 세계 최초로 구제역 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함께 어떤 혈청형인지까지 15분 안에 현장에서 감별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개발했다. 코로나19로 치면 변이 바이러스 여부를 약 5일이 걸리는 유전자 분석을 거치지 않고 진단키트에서 바로 알 수 있는 셈이다.
 
구 연구관은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 시국에 공무원들이 국가적 재난에 대한 대응책을 미리 준비해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진단키트가 완성 단계에 접어든 2017년 2월의 일화를 전하면서다.
 

사상 최초 O·A형 동시 발병, 하루 만에 판단

2017년은 역대 살처분 두수가 가장 적은 ‘역대급 선방’을 기록한 해였다. 그러나 진단키트가 아니었다면 사상 처음 겪는 위기를 겪을 수도 있던 해다. 그해 2월 5일, 충북 보은의 젖소 농가에서 ‘O형’ 구제역이 1호로 발생했다. 2014~2016년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 모두 O형이었으므로 평소대로라면 사흘 뒤인 2월 8일 경기도 연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도 O형으로 판단해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도별 구제역 발생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연도별 구제역 발생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러나 구 연구관은 연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를 진단키트로 시험했고, 해당 바이러스가 O형이 아닌 A형임을 확인했다. 사상 처음으로 국내에 O형과 A형이 함께 발생한 것이다. 구 연구관은 “당시 소는 O형과 A형 백신을 접종하고 있었고, 돼지는 O형만 접종하는 상태였다”며 “소를 위해 비축해둔 A형 백신을 즉시 돼지에 맞출 수 있어 ‘골든타임’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A형 백신을 소에만 계속 맞췄다면 백신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코로나처럼 구제역도 K-방역 

구 연구관과 진단 시약 개발 업체 메디안디노스틱이 상용화한 진단키트는 구제역이 계속 발생하는 동남아시아 등에서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 등에도 한국의 진단키트를 보낸다. 구 연구관은 “3조원에 가까운 피해가 발생한 2010년 이후 대부분의 인력이 백신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그러나 백신이 안정성을 갖춘 뒤에는 빠른 진단에 우선순위를 둬야 했다”고 진단키트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구 연구관은 현재 실험실이 아닌 행정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 방역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구 연구관은 “한국은 선진국 중 구제역이 상시 발생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로, 그동안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런데도 구제역 방역 관련 논의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코로나 K-방역처럼 동물 방역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논의가 필요할 때 대한민국이 선두주자로서 목소리를 인정받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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