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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벼랑끝 전술…검투사 김종훈 "배터리 사업 접을수도"

중앙일보 2021.03.15 05:00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오른쪽)과 서린동 사옥. [뉴스1]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오른쪽)과 서린동 사옥. [뉴스1]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과 관련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패소 결정을 받은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 “미국 내 공장 철수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공장의 지속적인 가동을 위해 승소한 LG에너지솔루션이 요구하는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과 사업 철수에 따른 기존 투자금 손해 비용을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 인터뷰

 
이 같은 의견은 지난 10일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개최한 감사위원회에서 나왔다. 이사회는 ITC 결정에 대한 경영진의 보고를 받고 보완책 마련을 위해 이날 감사위를 열었다.
 
김종훈 이사회 의장은 다음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ITC의 결정을 우선 비판했다. ITC의 결정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검토(Presidential Review)에 따라 뒤집히거나 LG-SK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SK는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미국으로 가져갈 수 없게 된다. 공장 가동이 사실상 멈출 수 있는 제재다.
 

김종훈 “주주 이익 부합해야” 

이에 대해 김 의장은 “10년씩 공장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면 그냥 사업을 접으라는 것”이라며 “10일 회의에선 ITC 결정 부당성에 대한 성토가 내부에서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 같았으면 기업에 그 정도의 과도한 처분이 내려진 데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관련 이메일 기록을 지운 것 등은 기술침해를 했다고 오해를 살 만한 아주 큰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지만, 선진국 기관인 ITC가 그런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유감의 뜻은 경영진과 같았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ITC 입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ITC 입구. [로이터=연합뉴스]

 
김 의장은 2007~2011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국제 전문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측 수석 대표로 활동하며 ‘검투사’란 별명을 얻었다. 19대 국회(2012~2016년)에선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향후 LG와의 협상 계획을 묻는 기자 질문에 우선 “경영진이 아니어서 LG가 얼마의 합의금을 제시했는지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지만 “주주 이익을 명분으로 한 협상 원칙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3조원씩 들여서 미 조지아주에 공장을 지었는데 그걸 가동 못 하게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러면서 “이사회의 일원으로 ‘주주 이익에 우선되는 협상 방식은 무엇이다’라는 말은 분명히 할 수 있다”며 “LG가 요구하는 돈을 지급하면서까지 공장을 돌리는 게 주주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그땐 장사를 접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배터리 사업 자체를 포기하든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하든지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경영진에 전했다”고 말했다. LG가 요구하는 합의금은 3조~4조 원대, SK 측은 최대 1조원을 제시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LG에너지솔루션 미시건 공장. [사진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미시건 공장. [사진 LG에너지솔루션]

 

LG “SK 공장 인수 참여” 

김 의장의 이런 의견에 대해 SK 내부에선 ‘LG의 요구에 휘둘리지 말라’며 이사회가 경영진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업을 포기해도 그만이라는 입장을 내세워 LG 측이 요구하는 합의금을 깎게 하거나, 바이든 대통령의 우려를 키우는 ‘벼랑 끝 전술’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LG 측도 강경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SK 공장 차질에 따른 조지아주 지역 경제 침체 우려에 대해 LG 관계자는 “조지아주 주민과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상태다. LG 에너지솔루션은 최근 김종현 사장 명의의 편지를 주 상원의원 측에 보내 “만약 외부 투자자가 SK의 조지아주 공장을 인수한다면, 이를 운영하는데 LG가 파트너로 참여할 수도 있다”고 여론을 달랬다. 이 밖에도 LG는 2025년까지 미국에서 5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독자적으로 2곳 이상의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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