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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과학을 신뢰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2021.03.15 00:40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요새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차례가 빨리 돌아오기만 고대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사태를 잘 관리하면서 세계적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급히 백신을 개발할 과학적 역량은 없었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야 하니 충분한 물량을 마음대로 확보하기가 힘들다. 백신 개발에 가장 앞선 것은 역시 과학의 초강국인 미국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백신을 훌륭히 만들어낸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백신 맞기를 회피하고 있다. 효율과 안전성에 대한 엄격한 시험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국민의 무려 30%정도가 백신 맞기를 꺼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흑인이나 중남미계 소수인종들 사이에서 백신 회피 현상이 심하다.
 

백신 개발한 미국, 백신 회피 확산
정치 불신이 과학 불신으로 이어져
과학지식의 근원에도 신뢰가 필요
신앙과 달리 신뢰는 노력으로 얻어

언뜻 보면 기묘한 일인데, 미국의 역사를 좀 알게 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핍박 받으며 살아 온 사람들은 정부나 사회지도층을 신뢰하지 않으며, 과학도 특히 정부가 주도하는 백신 접종 캠페인같은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술은 모든 이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의료 기관에 대한 신뢰도 결여되어 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악명높은 터스키기 매독 연구의 역사가 있다. 이는 미국 앨러배마 주 터스키기(Tuskegee)지역의 가난한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의 장기적 진행 경과를 연구하는 임상시험이었다. 치료해 준다는 거짓말로 환자들을 1930년대에 꼬드긴 후 계속 관찰만 하면서 실제로 치료는 하지 않았다. 1940년대에 페니실린이 나와서 매독을 정말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이 사람들에게는 약을 주지 않고 악화되는 병상을 계속 관찰하였다. 이것이 1972년에 언론에 폭로되면서 연구가 중단되고 나중에 정부에서 사과하고 보상까지 하였지만 파괴된 신뢰를 회복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식민지에서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상태에서 전염병이 퍼지는데 옛날에 한국인들을 잡아다 생체실험까지 했다고 소문난 일본 과학자들이 백신을 개발했다 하고 접종을 강요한다면 다들 의심하고 반발할 것이다. 그런 상상을 떠나서 현실로 돌아와보면, 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간에 백신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이 보인다. 미국을 다시 보면 소수인종 뿐 아니라 현재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백신 기피 풍조가 있다. 이렇게 과학에 대한 신뢰는 정부나 지배층에 대한 신뢰와 맞물려있다. 그러니 과학이 아무리 훌륭해도 정치적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그 과학이 가져다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과학의 응용 뿐 아니라 과학 지식 자체도 신뢰에 기반한 것이다. 오늘 최저기온이 영상10도였는데 내일은 온도가 영하로 급강하하면서 눈까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다고 하자. 그런 간단한 이야기도 불신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기상대에서 사용하는 온도계가 정확히 작동되고 있는가? 관측자는 온도계를 실수 없이 제대로 읽었을까? 거짓말로 보고한 것은 아닌가? 내일의 일기를 예보한 것은 집계한 관측결과에 어떤 이론적 모델을 적용한 결과인데, 그 이론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전문가라고 해도 손수 모든 것을 다 확인해 볼 수는 없으니 다른 사람들과 관측 기구들과 이론들을 모두 신뢰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과학 연구도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과학의 기초 이론과 방법론을 신뢰해야 하는가 묻는다면, 거기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을 무조건 믿는 것인가? 과학에 대한 신뢰는 종교적 신앙과도 같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믿음이라 해도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과학에 부여되는 신뢰는 신앙과 달리 상황에 따라 철회될 수 있다.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태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과학자들을 일단 신뢰하고 들어가지만 그들이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그 신뢰는 철회된다. 이것은 과학자라는 인간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과학 이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신봉하다시피 했던 이론들도 새로운 관측과 어긋나는 등 자꾸 문제가 생기면 과학자들은 거기에 대한 신뢰를 결국 철회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했던 내용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재평가 받는다. 과학에서 영원한 진리란 없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그 신뢰는 절대적이 아니라 잠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과학의 기본적 태도이다. 바꿔 말해보자면, 과학적 신뢰는 계속된 노력을 통해서 어렵게 얻고 유지하는 것이다. 과학자 사회에서는 서로간의 정직성과 연구방법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을 대할 때는 그런 공을 들이지 않고 무조건 우리가 잘 아니까 따르라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으며, 그러할 경우 민심은 떠나버릴 우려가 있다. 권력자가 신뢰를 강요할 수 없으며 계속 좋은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과학과 정치는 또 근본적으로 연결된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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