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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준의 퍼스펙티브] 정파적 법원·검찰 인사로 위태로워진 ‘대한민국 공화국’

중앙일보 2021.03.15 00:34 종합 25면 지면보기

정권에 줄 세우는 인사

손영준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손영준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통합과 공존을 이야기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2017년 5월 10일 취임사),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2019년 6월 6일 현충일 기념사), “서로에 대한 이해와 다름에 대한 관용과 다양함 속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2019년 10월 22일 국회 시정연설) 등의 말은 큰 기대와 환영을 받았다. 이런 발언을 관통하는 철학은 통합과 균형, 관용의 공화주의 정신이다.
 

대법원장은 집권당 심기 살피면서 법관 인사 결정 미루고
정권에 반기 든 검사는 좌천시키고 친 정권 검사로 채워
자의적 인사로 합리적 견제세력 없어지고 국민 갈등 깊게 해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화합과 통합의 길로 정책 전환해야

그러나 정부의 실제 정책은 거꾸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선택적 인사’는 그중 하나다.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간 ‘추-윤’ 갈등은 결국 검사들을 줄 세우는 것이었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검사들은 좌천시키고, 그 자리를 친정권 검사들로 채웠다. 신현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파동은 청와대의 반(反)공화적 인사 방침에 대한 저항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과 손발을 맞췄던 민정수석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맞서는 것은 정부 인사 원칙이 궤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원칙 어긋난 헌법기관 인사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사태는 법원 인사도 ‘선택적’임을 보여준다. 대법원장이 인사 결정을 미루면서 집권당 심기를 살피는 것은 삼권 분립, 공화주의에 어긋난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법정 구속은 행정부에서도 선택적 인사가 공공연하게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사건이다. 대통령이 제시한 통합과 공존이 공허한 이야기가 돼서는 안 된다.
 
선택적 인사는 정권 이익에 봉사한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인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사건을 맡은 재판장이 인사 관행을 깨고 유임됐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댓글 조작 사건에 유죄 선고한 재판장은 조기 교체됐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입시 비리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담당 재판부를 ‘대등재판부’(경력이 비슷한 3명의 부장판사로 이뤄진 재판부)로 바꾸면서 현 정부에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역임한 판사를 포함한 것은 파격이다. 그런데도 이해하고 납득할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정치적 고려가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정부의 선택적 인사가 법원과 검찰, 환경부뿐일까. 안 그래도 문 정부의 인사 특징은 캠코더(문재인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고 소문나 있다.
 
헌법기관 인사에는 독립·균형·공정의 인사 원칙을 지켜야 한다. 원칙이 어긋나면 후폭풍은 심각하다. 법원 판결과 검찰 조사, 행정행위는 신뢰를 잃게 된다. 사법부는 신뢰가 생명이다. 판·검사 성향에 따라 재판 결과가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다면 사람들은 승복하지 않는다. 다른 길을 생각한다. 그것은 부패로 이어진다. 지금의 선택적 인사는 축구 경기에서 심판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과 같다. 전임 정부에서 이런 일이 없지 않았다. 보수 정권에서도 인사권을 통한 편 가르기가 진행됐다. 촛불로 일어난 문 정부는 다를 줄 알았다.
 
납득할 기준 없는 발탁·좌천 인사
 
단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역대 모든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차기 정권을 염두에 두었다. 다음 정부가 정치 철학을 계승해 주기를 바랐다.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헌법 1조가 규정하는 공화주의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인사는 세력을 확장하는 손쉬운 방편일 수 있다. 그러나 엽관제(獵官制, spoil system)를 적용해도 원칙과 기준은 필요하다.
 
정무직 인사도 파행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현 정부에서 야당 반대로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장관급 이상 임명자가 29명이다. 노무현 정부 때 3명, 이명박 정부 때 17명, 박근혜 정부 때 10명과 비교해보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공화정은 위기에 처해 있다. 공존과 견제, 균형의 원리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법원·검찰은 독립적 권한과 권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들 기관에 대한 인사는 임의로 이뤄진다. 합리적 견제 세력이 들어설 공간은 줄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공화주의는 위태롭다. 정치적 입장과 이념에 따라 편이 갈리고, 자의적·임의적 지배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 선택적 인사는 결국 공화국 전체 시민의 여망과도 어긋난다. 납득할 기준 없이 발탁 인사와 좌천 인사를 거듭하다 보면 조직은 반드시 탈이 난다.
 
공화국은 국민 모두의 것
 
공화주의는 황제나 왕이 임의로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다. 공화제는 군주제가 아니다. 공화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헌법 기구가 각각의 헌법적 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원·검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위치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들 기관에 대한 시민사회와 언론의 감시는 필요하다. 이것이 법치이고, 권력분립이고 공화주의다. 검찰 개혁은 정치권이 좋은 의도를 가진다 해도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검찰 개혁 문제로 나라가 두 쪽이 난 꼴이다.
 
지금 우리의 공화정은 정파적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인사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언젠가 물러난다. 공화국 운영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것이다. 지난 촛불 정신은 그런 원칙을 확인했다. 열정을 내려놓고 통합·균형·견제의  공화주의 정신을 가다듬었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과 미래 세대가 물려받을 국가와 사회는 영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지도자가 백성들과 다투는 것을 최하수정치라고 했다. 지금 정부의 선택적 소통, 선택적 인사는 반쪽 정책이다. 다른 반쪽과 끝없는 갈등을 낳았다. 문 대통령이 처음 표방한 통합과 공존의 철학과 가치가 국민 모두에게서 동의받았으면 좋겠다. 이제라도 화합과 통합의 길로 정책을 전환했으면 한다. 공화국은 정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국민과 갈등 일으키는 정치가 최악
『사기(史記)』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2세기 중엽~기원전 80년대 초반)이 중국 고대 왕국으로부터 전한(前漢) 시기까지 중국 1000년 역사를 다룬 책이다. 총 130권 52만6500자에 이르는 『사기』는 천하 이치를 깨닫는 역사서의 귀감으로 간주된다.  
 
사마천은 『사기』 마지막 편 ‘화식열전’에서 정치 지도자의 통치 형태를 5개 등급으로 나눈다.
 
“고선자인지(故善者因之), 기차이도지(其次利道之), 기차교회지(其次敎誨之), 기차정제지(其次整齊之), 최하자여지쟁(最下者與之爭)!”
 
가장 좋은 것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순리(順理)의 정치이며, 그다음은 백성을 이익으로 이끄는 정치이며, 그다음은 백성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정치이며, 그다음은 백성들을 단속하여 가지런히 하는 정치이다.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들과 더불어 다투는 것이다. 백성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따르게 할 일을 놓아두고, 오히려 백성과 갈등을 일으켜 고통스럽게 하는 통치 행태가 최악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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