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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지게 가난' 선반공 출신…추락 정의당 위해 나선 여영국

중앙일보 2021.03.14 09:00
정의당 당대표 보궐선거에 단독 출마한 여영국 전 의원이 지난 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정치비전 및 주요 현안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정의당 노선의 대전환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겠다"며 "불평등, 기후위기, 차별에 저항하는 반기득권 정치동맹을 형성하겠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정의당 당대표 보궐선거에 단독 출마한 여영국 전 의원이 지난 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정치비전 및 주요 현안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정의당 노선의 대전환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겠다"며 "불평등, 기후위기, 차별에 저항하는 반기득권 정치동맹을 형성하겠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김종철 사건 이후 정치를 그만해야 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많이 무너졌다.”

 

[여의도Who&Why]당 대표 단독 출마 여영국

정의당 당대표 보궐선거에 단독 출마한 여영국 전 의원(57)은 출마를 결심하게 된 ‘솔직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번 선거는 김종철 전 대표가 동료 의원을 성추행한 뒤 물러나면서 ‘정의당 창당 이래 최대 위기’라는 평가 속에 치러지게 됐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주변 사람들도 출마를 할까 말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며 “그런 상황에서 내가 포기할 순 없었다. 부족하지만, 당을 살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당초 이번 보궐선거에는 여 전 의원 뿐 아니라 박원석, 이정미, 윤소하 전 의원 등 그보다 정치이력이 화려한 인사들도 출마를 고려하고 있었다. 제9·10대 경남도의원과 1년간의 지역구(경남 창원성산) 의원 경험이 의정 경력인 여 전 의원은 나머지 셋과 비교하면 중앙정치 경험이나 인지도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밀리는 인사다.
 
하지만 결국 출사표를 던진 건 여 전 의원 하나였다. 그는 “우선 지금은 경쟁하기보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상처받은 당원들을 보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단독 후보가 왜 여영국이 됐느냐’는 질문에 “나는 다른 분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지역민과 오래 소통해온 후보라는 점에서 당원과 소통하면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데 다들 공감해준 것 같다. 주변의 출마 권유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노동자 출신

다른 후보들이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며 정치에 진입한 것과 달리, 여 전 의원은 공고를 졸업한 뒤 공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진성 노동자’ 출신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저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요약한다.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돈이 안드는 국립 부산기계공고에 진학했다. 졸업 후 통일중공업(현 SNT중공업)에 선반공으로 입사했는데, 거기서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취업 중이던 문성현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그 인연으로 노동문제에 눈을 뜬 그는 노조 활동에 뛰어들었고, 1986년엔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구속되기도 했다.

 
2019년 4·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노회찬 전 의원 사망으로 공석이 된 창원성산에 출마한 여영국 정의당 후보가 3일 밤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결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19년 4·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노회찬 전 의원 사망으로 공석이 된 창원성산에 출마한 여영국 정의당 후보가 3일 밤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결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정치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는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열사의 분신자결이었다. 여 전 의원은 전태일 열사의 ‘내게 대학 다니는 친구라도 있었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때 나도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선거에서 내리 세 번 떨어지는 등 정치 주변부에 머물다 2010년 지방선거에 처음 도전했다. 2009년 대림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벌이며 “싸우는 것엔 한계가 있다. 제도권으로 들어가야 노동자 문제 해결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019년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사망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에 당선돼 국회에도 입성했다.  
 

“지역·노동 중심으로 당 쇄신할 것”

여 전 의원의 궤적을 대표하는 ‘지역’과 ‘노동’이라는 키워드는 그가 정의당을 회생시키기 위해 내세우는 중심축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5일 출마선언에서 “지역과 노동을 중심으로 정의당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드러난 정의당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그 길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의당은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이후 ‘2차 가해 제보’를 접수를 두고 내홍을 겪었고, 지난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당시엔 ‘조문  거부 논란’으로 탈당 사태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당이 여성주의에 지나치게 매몰됐다”는 내부 비판이 적잖았다.  이에 대해 여 전 의원은 “여성·청년·성소수자 등 정의당이 존중하는 다양한 가치들이 전혀 충돌하거나 대립할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의 기반인 노동의 가치가 깊이 뿌리박고 있지 못하다 보니 가치 논쟁이 생기면 흔들렸다”고 진단했다.
  
여영국 정의당 전 의원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여영국 정의당 전 의원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는 국가가 생활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국가일자리보장제’와 임금체계가 취약한 일자리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기본소득제’를 정책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의사결정 구조를 지역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역위원장이 참여하는 의사결정기구를 설치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단독 출마지만 그는 요즘 전국의 지역위원장 등에게 매일 전화 50통씩을 돌리며 선거유세를 한다. 이유를 묻자 “탈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분들이라고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투표 참여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며 “열심히 해볼 테니 다시 한번 마음을 내보자고 격려하고 있다. 상처받은 당원들 마음을 어루만지며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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