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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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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중앙일보 국방부 출입기자 seajay@joongang.co.kr

K21 장갑차에 '레드백' 젊은 피로 수혈…연말 한국에 온다

중앙일보 2021.03.14 05:00
 
제2차 세계대전에 활약한 전투기 가운데 미국의 P-51 머스탱(Mustang)을 최고라 꼽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1942년 1월 P-51A형이 처음 실전에 투입됐을 땐 머스탱은 기대 이하의 전투기였다. 미국제 엘리슨 엔진이 문제였다. 고도 4000m만 올라가면 힘이 달렸다. 결국 전투기가 아닌 지상 공격기로 쓰였다.

[이철재의 밀담]



한화디펜스의 레드백. 호주 방위사업청

한화디펜스의 레드백. 호주 방위사업청

 
하지만, 머스탱은 그해 11월 거듭 태어났다. 엔진을 영국제 멀린으로 바꾼 P-51B와P-51C가 나오면서 머스탱은 독수리처럼 날쌔고 매서워졌다. 그리고 바로 나치 독일 공군 전문 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쳤다. 머스탱은 6ㆍ25전쟁 땐 한국 공군의 첫 전투기로 용맹을 떨쳤다.


 
머스탱과 같이 처음엔 평범했지만, 개량을 거치면서 명품으로 탈바꿈한 무기들이 제법 있다. 한국 육군의 주력 보병전투차량(IFV)인 K21도 머스탱의 길을 걸을 기회가 생겼다. 2차 양산사업이 곧 시작하면서다.
 
 

호주 맞춤형 ‘레드백’, 한국군 도입 가능성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합참에서 100대 이상의 K21 추가 소요가 결정됐다. 현재 소요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며, 관련 예산을 타내면 2024년부터 육군은 새 K21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익명을 요구하는 정부 소식통은 “육군 제7 기동군단에 K21를 더 배치한다”며 “북한의 탱크는 이제 우리의 상대가 안 된다. 유사시 안정화 작전에선 K21이 K2 탱크보다 유용한 전력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K21의 시범 사격 장면. [중앙포토]

K21의 시범 사격 장면. [중앙포토]



2007년 개발이 끝난 K21은 승무원 3명과 완전무장한 보병 9명을 태울 수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70㎞이며, 외부 도움 없이 물에 떠 시속 6㎞로 나아갈 수 있다. 40㎜ 기관포와 7.62㎜ 기관총을 달고, 앞으론 현궁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할 계획이다. 준수한 성능이다. 
 
그러나 K21이 나온 뒤 전쟁은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2차 양산 K21에 레드백의 젊은 피를 수혈하자는 여론이 군 안팎에서 일고 있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구체적인 기종 선정 때 기존 K21 추가 주문이 아닌 레드백 선택도 고려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레드백은 한화 디펜스가 호주 육군의 LAND 400 3단계 사업에 내놓은 도전작이다. LAND 400 3단계 사업의 목적은 180억~270억 호주달러(약 16조~24조원)를 들여 호주 육군의 궤도형 보병전투차량(IFV) 450대를 사는 것이다. 맞상대는 독일 방산기업인 라인메탈 디펜스의 링스(Lynx) KF41이다.
 
현재 호주 현지에서 레드백과 KF41의 성능ㆍ방호ㆍ화력 등을 평가하고 있다. 10월 평가를 모두 마친 뒤 내년 상반기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호주에 사는 붉은등독거미(redback)를 뜻하는 레드백의 원형은 K21이다. K21을 호주인의 체형을 고려해 크기를 키웠고, K9 자주포의 파워팩(엔진+변속기)을 가져왔다. 군 관계자는 “K21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레드백을 만들 수 있었다”며 “두 장갑차는 DNA가 같다”고 말했다.
  
 

“같으면서 다르다” 레드백 원조는 K21

같은 DNA의 형제 사이지만, K21과 레드백은 차이도 크다. 그래도 K21에 당장 도입할 수 있는 레드백의 신기술이 여럿 있다. 이를 더하면 K21은 화룡점정(畵龍點睛)에 금상첨화(錦上添花)다.

 
하드킬 능동방어 시스템인 아이언 피스트. 제너럴 다이내믹스 유튜브 계정 캡처

하드킬 능동방어 시스템인 아이언 피스트. 제너럴 다이내믹스 유튜브 계정 캡처



우선 능동방어 시스템인 아이언 피스트다. 과거 탱크나 장갑차는 미사일과 같은 적의 대전차 화기를 만나면 피해야만 했다. 그러다 미사일을 탐지하면 연막탄을 자동으로 발사하거나, 전자 장비로 미사일의 센서를 교란하는 소프트킬(soft kill) 기술이 나왔다. 최근 대응탄을 발사해 대전차 무기를 직접 파괴하는 하드킬(hard kill) 기술로 발전했다.
 
레드백엔 장갑차로 접근하는 적 대전차 미사일을 능동위상배열레이더(AESA)로 포착한 뒤 이를 요격하는 아이언 피스트(Iron Fist)가 갖춰졌다. 이지스 구축함이 SM-3 미사일로 적 탄도미사일을 격추하는 방식대로다.


장갑차 내부에서 외부 상황을 볼 수 있는 아이언 비전. 디펜스업데이트 유튜브 계정 캡처

장갑차 내부에서 외부 상황을 볼 수 있는 아이언 비전. 디펜스업데이트 유튜브 계정 캡처

 
지휘관이 장갑차 내부에서 특수 헬멧으로 밖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이언 비전(Iron Vision)도 있다. 장갑차 내부 승무원은 밖을 볼 수 없다. 조준경과 잠망경이 외부를 관측하는 도구인데 시야가 아주 좁다.
 
그런데 아이언 비전은 장갑차 밖의 영상을 헬멧 장착형 디스플레이에 뿌려준다. 고개만 휙휙 돌리면 마치 투명 장갑차 너머 외부를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아이언 피스트와 아이언 비전은 이스라엘 기술이다.
 
레드백의 궤도는 철이 아닌 복합소재 고무궤도(CRT)다. 고무와 내열성 강화 합성섬유, 철선으로 만들어졌다. CRT는 철제 궤도와 비교하면 주행 소음이 적고, 기동 성능이 높아진다. 내구성도 더 늘어난다. 철제 궤도보다 50% 이상 가볍기 때문에 연료를 아낄 수 있는 건 덤이다.


복합소재 고무궤도(CRT) 홍보 동영상. Soucy Defense 유튜브 채널 캡처

복합소재 고무궤도(CRT) 홍보 동영상. Soucy Defense 유튜브 채널 캡처

 
한화 디펜스 관계자는 “레드백의 아이언 피스트ㆍ아이언 비전ㆍCRT는 예산만 주어진다면 K21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 K21 고질병 고치고 장병 살려야

2차 양산 때 K21의 고질병을 고치자는 의견도 있다. 바로 도하 성능이다.

 
K21이 도하를 하고 있다. K21은 이처럼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혼자 물을 건너갈 수 있다. 국방TV 유튜브 계정 캡처

K21이 도하를 하고 있다. K21은 이처럼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혼자 물을 건너갈 수 있다. 국방TV 유튜브 계정 캡처



K21은 양쪽에 특수 에어백을 달았다. 강을 만나면 에어백에 공기를 붙어 넣어 물에 장갑차를 띄운다. 산을 끼고 흐르는 강이 많은 한국의 지형을 고려한 성능이다. 유사시 기동군단이 올라갈 북한은 다리가 많지 않고, 탱크나 장갑차의 무게도 견딜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도하장비 없이도 K21이 강을 건너야만 한다고 육군 지휘부가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도하 성능을 설계에 반영하려면 장갑차의 무게를 줄여야만 했다. 25t의 K21이 다른 IFV보다 가볍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반면 레드백은 도하 성능이 없다. 대신 두툼한 장갑을 여유롭게 둘렀다.
 
또 2009년 12월과 2010년 7월 K21은 도하 도중 침수사고가 일어났다. 안타깝게 순직자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하는 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K21 장갑차는 도하 훈련 할 때 침수 사고 발생을 우려해 모든 병력이 탑승하지 않는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걸 막기 위해 일부 에어백 바람도 빼고 강을 건넌다. 국방TV 유튜브 계정 캡처

K21 장갑차는 도하 훈련 할 때 침수 사고 발생을 우려해 모든 병력이 탑승하지 않는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걸 막기 위해 일부 에어백 바람도 빼고 강을 건넌다. 국방TV 유튜브 계정 캡처

 

“K21 도하 훈련을 할 때 조종수만 K21을 탄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에어백 뒤쪽에 바람을 덜 넣는다. K21이 강을 건너는 동안 특전사 부대원이 고무보트를 타고 만일을 대비해 옆에 따라다닌다”

 
한국에서 도하를 할만틈 깊은 강은 많지 않다. 육군은 순식간에 다리를 놓는 자주도하장비를 도입하려고 한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세계적으로 기갑차량의 중장갑ㆍ중무장화가 대세”라며 “도하 성능은 K21이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군·호주군 모두 만족하는 ‘시범운용’

K21에 레드백의 피를 수혈하기에 앞서 육군이 레드백을 직접 운용해볼 수 있다. 호주에서 평가를 마친 레드백 2대가 올 연말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연말 레드백 시제품을 국내로 가져오면 육군이 시범운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니면 시범운용 레드백 2대를 주문할 수 있다. 호주에서 가져오건, 새로 주문하건 ‘꿩 먹고 알 먹기’다.  

 
호주 육군의 LAND 400 3단계 사업에 참가해 경합중인 한국의 레드백(왼쪽)과 독일의 KF41(오론쪽). 호주 방위사업청

호주 육군의 LAND 400 3단계 사업에 참가해 경합중인 한국의 레드백(왼쪽)과 독일의 KF41(오론쪽). 호주 방위사업청



육군이 레드백 2대를 굴려보면서 K21 2차 양산 사업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또 레드백의 호주 수출에 도움이 된다. 방위사업청은 수출용 무기체계 군 시범운용 제도를 운용한다. 기업이 수출하려고 개발한 무기체계를 우리 군이 일정 기간 시범적으로 운용한 뒤 운용 실적을 제공하는 제도다. 지난해 4월부터 이미 6륜 장갑차, 4륜 장갑차, 총기류 등이 군에서 시범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미 배치된 K21도 레드백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2023년부터 K21을 야전에서 공장으로 가져온 뒤 점검하고 성능을 높이는 창정비가 이뤄진다. 이때 성능을 레드백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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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비용이다. 신형 레드백 단가는 40억원 수준인 K21보다 꽤 비싼 편이다. 창정비 비용도 20억원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10년 후 K21을 현재 레드백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이번에 바로 성능을 끌어올리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레드백은 방어력에선 K21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저출산 시대 병사의 생명을 지키는 예산이 전혀 아깝지 않게 됐다. 정부와 군 당국이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
 
이철재ㆍ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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