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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주택시장에 부는 세습 바람

중앙일보 2021.03.13 15:30
증여·상속 비중이 역대 처음 매매 앞질러… 집값 폭등으로 불어난 자산에 보유 심리 강해져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고가 주택을 세습하려는 심리가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 도심의 고가 아파트일수록 매매보다 증여·상속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다. 역대 처음으로 증여·상속 비중이 매매 비중을 앞지를 정도다. 이는 주택 자산에 대한 규제 수위가 높아질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양상이다.

고가주택 부의 대물림 시작됐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최근 ‘임대주택등록제 현황 및 조세 등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다. 조사 대상인 서울 4개 아파트 단지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대치은마),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아현래미안),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상계주공5),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이촌한가람)이다. 이들에 대해 인근 중개업소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중개업소들은 단지 특성, 거래 사유, 수요 변동 등 지역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중개업소들은 해당 지역에서 집주인들의 거래를 주선 대행하는 업무 특성상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처리했다.
 

소유권 변동 사유 매매 줄고 증여·상속 늘어

부동산 소유권이 바뀌는 통상적인 유형은 매매·증여·상속·경매·기증·교환·대물반환·대물변제·재산분할·화해·소유권보존(토지·건물 최초 등기) 등이다. 4개 단지의 소유권 변동을 보면 대한민국 고가 아파트의 지표로 꼽히는 대치은마의 경우, 매매 비중은 2000년 427건(소유권 이전 유형들 중 차지하는 비율이 약 92%)→2010년 145건(약 78%)→2020년 65건(약 44%)으로 전체적으로 감소세다. 하지만 증여·상속 비중은 같은 기간 30건(약 6%)→33건(18%)→81건(55%)으로 늘었다. 특히 2018~2020년에 증여·상속 비중이 큰 폭으로 급증했다.
 
이촌한가람도 비슷하다. 2000년대 초 해마다 220건 이상(95% 전후)을 유지하던 매매는 2001년 255건(약 96%)→2010년 84건(83%)→2020년 38건(72%)으로 감소했다. 반면, 증여·상속은 같은 기간 9건(약 3%)→14건(14%)→15건(28%)으로 늘었다. 특히 역대 20년 중 지난해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두 단지 모두 2020년 수치가 8월까지만 집계한 점을 감안하면 증여·상속 비중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부촌 아파트일수록 매매보다 증여·상속에 관심이 더 커졌다는 근거다. “소유자들이 지금 매매를 통한 이득보단 보유를 통한 실익이 훗날 더 크다고 판단하는 거 같다”는 게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경향은 자녀세대에 물려주는 20·30대 소유자의 소유권 변동사항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최근 5년간 변화를 보면 대치은마는 매매 비중이 2015년 약 95%에서 2020년 26%로 감소세지만, 증여·상속 비중은 같은 기간 3.4%에서 75.4%로 증가세다. 이촌한가람도 같은 기간 매매는 98%→48%로 줄었지만, 증여·상속은 0%→52%로 늘었다. 특히 대치은마와 이촌한가람의 증여·상속은 지난해 매매를 추월했을 정도다. 이런 역전 현상은 지난 20여 년 중 처음이다. 2014년 9월에 준공해 지은 지 6년 된 아현래미안도 같은 기간 매매는 90%→74%로 줄고, 증여·상속은 10%→26%로 늘어나 대조를 이뤘다.
 
증여·상속을 부추기는 주 원인으로 중개업소들은 정부 규제와 집값 폭등을 꼽았다. A 중개업소는 “정부가 대출·거래·투기, 시세·개발 차익 등에 대한 규제와 과세 수위를 계속 높이자 소유자들은 타인에게 넘기느니 가족에게 물려주는 쪽을 택했다”며 “현 상황에서 매도 시 징벌적 과세와 자산 노출 등에 따른 불이익보다는 전수를 통한 중장기적 보유가 낫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봤다.
 
이런 판단은 입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치동과 이촌동은 강남과 가까워 이동성과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위치다. 경기 변동에 무관할 정도로 개발호재·주택수요·유동인구·부촌명성 등이 집중돼 집값을 떠받치는 지역이라는 게 중개업소들의 관점이다.
 
B 중개업소는 “선거철이나 정권 교체 때마다 대형 호재들이 늘 거론되고 도시개발계획에서 권역별 특화 개발의 중심에 늘 꼽히는 점이 시세를 끌어올린다. 앉아서 자산 불리기엔 더 없는 효자”라며 “이런 점들이 규제 강화와 맞물려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려는 심리를 더 부추기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과세증액·돈줄차단으로 옥죄던 2007년 데자뷰

서울 용산구 이촌동 전경 / 사진:네이버지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전경 / 사진:네이버지도

이들의 증여·상속 증가에 대해 일부 중개업소는 “2007년 상황을 보는 듯한 데자뷰 같다”고도 했다. 당시 국내외 주택시장에선 미국발 모기지론 사태(주택담보대출 업체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와 국제 금융위기가 벌어진 가운데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종부세·양도세 중과, 과세기준 확대, 분양가상한제 강화 등으로 고가주택자·다주택자 같은 부동산부자들을 옥좼다.
 
그 여파로 당시에도 증여·상속이 증가했었다. 대치은마의 경우 매매 비중이 2000년대 초반 90%대에서 2007년 약 78%로 급감하고, 증여·상속 비중은 같은 기간 6~7%대에서 약 21%로 급증했다. 이후에도 매매는 80%대에 머물고, 증여·상속은 한동안 10%대를 유지했다. 이촌한가람도 매매는 2000년대 초 90%대에서 2007년 83%, 2008년 81% 정도로 줄고, 증여·상속은 같은 기간 5~6%에서 각각 14%, 18% 정도로 늘었다. 상계주공5 역시 매매는 90%대에서 2007년 86%로 감소하고 증여·상속은 4~7%대에서 약 14%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30대 소유자의 증여·상속 비중도 급증해 2007년 기준 대치은마는 약 24%, 이촌한가람은 16%, 상계주공5는 18%를 기록했다. 평소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당시 배경을 살펴보면 대치동은 아파트 단지 수가 강남구 안에서 압구정동 다음으로 많은데다 건축한 지 30여년 돼 재건축 호재가 상시 언급되는 지역이었다. 또한 10여년 전엔 외국어고·과학고·자사고 등 특목고 입시 열풍으로 지방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오는 등 대치동 학원가 덕에 주택수요도 몰렸다. 이촌동은 용산구에서 고가 아파트들이 밀집한 부촌으로 한남동과 쌍벽을 이룬다. 2007년 용산지역 통합개발 계획에 포함되면서 집값이 급등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2007년 용산공원조성특별법 제정으로 미군 용산기지 반환 작업이 본격화되던 때였다.
 
이에 대해 C 중개업소는 “당시 시장 상황이 불안정하고 정부 압박이 거센데도 대형 호재들이 떠받치고 있어 소유자들이 자산을 물려주는 쪽으로 무게를 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또한 최근 증가하는 증여·상속에 대해선 “부동산은 중장년층의 핵심 자산인데다 아파트가 연식이 오래됐지만 계속 보유하려는 마음이 크고 소유자 연령대가 높아진 점도 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재건축 기대와 집값 급등에 10년 이상 장기 보유 늘어

 
 
이 때문에 대치동과 이촌동의 아파트 소유자들은 장기간 보유하려는 심리가 강한 편이다. 소유주가 평균 10년 이상 보유하는 비율이 대치은마는 52%, 이촌한가람은 44%에 달했다. 보유기간이 길고 아파트는 낡다 보니 이곳에 실제 거주하는 소유자들은 많지 않다. 소유자의 실거주 비율이 대치은마 32%, 이촌한가람 29% 정도다. 세 집 걸러 하나씩 살고 있는 셈이다.
 
집값 폭등도 증여·상속과 장기 보유에 한 몫 한다. 평균 매매가격이 대치은마 전용 84㎡는 2015년 10억원을 넘어 2017년 약 14억1300만원, 2019년 약 19억6200만원, 2020년 약 21억원으로 올랐다. 5년 동안 증가폭만 10억원에 이른다. 이촌한가람 전용 85㎡도 2017년 10억원을 돌파, 2019년 약 15억6500만원, 2020년 약 16억1200만원에 달한다. 아현래미안 전용 85㎡도 2018년 약 12억8800만원으로 10억원을 뛰어넘더니 2020년 약 15억7500만원까지 치솟았다.
 
아현래미안은 지은 지 6년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소유자의 실거주가 42% 정도다. 즉, 투자 수단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게 주변 중개업소들의 얘기다.
 
상계주공5도 대치은마·이촌한가람과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상계주공5 역시 소유권 변동 유형에서 매매 비중이 2000년 114건(약 88%)→2010년 34건(92%)→2020년 44건(73%)으로 줄었다. 하지만 증여·상속 비중은 같은 기간 9건(6.9%)→3건(8%)→16건(27%)으로 소폭 늘었다. 20·30대 소유자의 소유권 이전 유형 중 증여·상속 비중도 최근 3년 동안 증가세다. 2015~2017년 한자릿 수에 머물렀으나 2018년 약 38%→2019년 13%→2020년 29%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매를 통한 20·30대 소유자의 소유권 이전 비중은 60~80%대로 감소했다. 이와 같은 증여·상속의 두드러진 증가세는 2007년(약 18%)에도 나타났었다.
 
상계주공5 소유자들의 보유기간은 10년 이상 보유 비율이 약 38%로 대치은마와 이촌한가람보다 적다. 실거주 비율은 약 13%로 대치은마·이촌한가람의 절반도 안 된다.
 
증여·상속의 증가에 대해 D 중개업소는 “오랜 숙원이던 재건축 사업이 올해 1월 가결됐다. 코 앞으로 다가온 재건축 때문에 매매할 시간이 부족하고 싸게 팔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1억원 후반대에 머물던 상계주공5의 평균 매매가는 2015년 2억원대에 들어서더니 2018년 약 3억원대, 2019년 4억원대, 2020년 약 5억원대로 가파르게 급등했다.
 
시세가 저렴해 집을 판 값으로 서울 도심에 진입하기 어려운 점도 한 이유다. E 중개업소는 “주거면적이 전용 32㎡(약 11평) 단일 평형 원룸형이며 지은 지 35년이나 됐고, 인근에 다산·별내·구리갈매 신도시들이 들어선 탓에 소유자 실거주가 감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거주하지 않는 소유자들이 대부분 단지와 가까운 도심 인접 동네에 사는 대치은마·이촌한가람과 다른 모습이다. “상계주공5는 도시철도 4·7호선으로 도심까지 한번에 오갈 수 있어 대부분 1인 가구나 젊은 부부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최근엔 서울 집값 폭등에 30대가 패닉바잉(공포로 인한 사재기)으로 많이 구매한 곳”이라는 게 주변 중개업소들의 얘기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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