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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벼락거지들의 부동산 블루

중앙선데이 2021.03.13 00:30 727호 31면 지면보기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최근 결혼한 젊은 부부가 “영끌로 집부터 샀다”고 했다. 그들이 들려준 집 장만 스토리는 마치 어드벤처 같았다. 10만대 1에 달했다는 신혼부부 주택 청약, 놀라운 경쟁력을 뚫고 당첨된 사람 중 돈이 부족해 포기를 한 사연 등 젊은 층의 집 장만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이들도 결국 나라가 반값으로 준다는 꿈 같은 신혼부부 주택 청약은 ‘전생에 나라를 세 번쯤 구해야 하는 일’이라며 나라를 못 구한 전생 탓으로 돌리고 포기했단다. 그리고 오직 ‘인서울’ 하나의 목표만으로 달려 마침내 서울 경계 안에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장만하는 데 성공했다.
 

집부자 고통스럽게 하겠다던 정책
내집 빈곤층 벼락거지만 양산하고
평범한 공기업 직원 투기꾼 내몰아
수사·엄벌로 국민 좌절 해결 못 해

싼 아파트 찾아 삼만리의 발품을 팔고, 가능한 모든 융자를 다 받고, 부모님 노후자금까지 일부 털어 넣었단다. 그러면서 원앙금침이나 소위 ‘깔맞춤’ 신접 세간살이 같은 것은 다 포기했다. 앞으로 버는 돈은 모두 은행돈. 그야말로 최저 생계비로 살아야 하므로 각자 자기가 쓰던 물건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내 딴엔 아주 조심스럽게 “나한테 남는 살림살이가 있는데 …”라고 운을 떼자마자, 아주 흔쾌히 우리 집에 와서 뒤져서 가져갔다.
 
이를 보는 마음은 짠했다. 사람 인생에서 필요 없는 사치품과 약간은 분에 넘치는 맞춤 살림살이를 사보는 건 대부분 평생에 결혼할 때 한 번쯤 해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에겐 그런 작은 사치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이 신혼집에서 중고물품을 쓰며 이렇게 악착같이 집을 마련한 건 집값 상승 같은 걸 노린 게 아니라 ‘벼락거지’를 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고 했다. 벼락거지? 이 말은 정부의 주택 정책을 믿었다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내 집 빈곤층’을 말하는 거란다.
 
벼락거지로 몰리면 ‘부동산 블루’로 정신마저 피폐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신종 우울증인 부동산 블루는 요즘 집이 있으나 없으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겪고 있다. 왜 그때 집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뛰는 전세 보증금에 대한 공포, 가족 간의 원망. 여기에 집 사기를 미뤘던 가장들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자책까지 겹치면서 우울증을 넘어 감정의 파탄까지 경험한다는 것이다.
 
선데이칼럼 3/13

선데이칼럼 3/13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젊은이들의 문화도 바꿨다. 요즘 젊은이들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열광했던 욜로(YOLO)나 힐링을 말하지 않는다. 주식·비트코인·부동산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핵심은 부동산이다. 주식과 비트코인에서 벌어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 그것도 가격이 확확 오르는 ‘상급지 아파트’를 사기 위해 수익을 끌어올리는 투자와 수익 계산에 머리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이번 정부는 ‘부동산 올인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거두절미하고 ‘비싼 집을 가진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집 있는 사람들은 ‘적폐’로 몰았다. 그런데 세상인심은 거꾸로 돈다. 이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부터 집을 끌어안고 내놓지 않으려고 버텼다. 사람들은 아파트의 위치에 따라 ‘상급지’ ‘하급지’로 나누고, 어떻게 하면 상급지로 입성하느냐를 끌로 파듯 연구한다.
 
이번 LH 직원들의 땅투기 정황에 거국적 분노가 일어나고, 반정권 정서로까지 번지는 것도 이제는 중증 질환이 된 ‘부동산 블루’의 증상은 아닐까.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연이어 투기 직원을 비난하고 엄벌을 약속했지만, 과연 이 증상에 이 처방이 맞을까. 이게 공기업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에 대한 분노라면 이 처방도 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분노의 핵심은 투기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불공평에 대한 좌절감으로 보인다. “왜 너희들만…”의 분노인 거다.
 
이 정권이 원했던 대로 집 가진 사람만 고통스러워졌다면 이런 투기가 일어났을까. 고등학생부터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주택청약에서 10만 명과 겨루고, 집 없는 걸 나라를 못 구한 전생 탓으로 돌리는 젊은이들이 넘쳐났을까. 왜 고통스러워질 거라는 집 가진 사람의 대열에 끼지 못해서 이렇게 온 나라가 야단법석인 것일까.
 
“이걸로 해고돼도 땅 수익이 평생 월급보다 많다.” LH 직원이 올렸다는 이 멘트에서 평범한 공기업 직원들이 투기꾼이 된 이유를 읽게 된다. 근로소득이 삶의 안전핀이 못 되는 시대. 노동의 가치가 싸구려가 돼버린 이 시대에 정부가 정책 한 번 내놓을 때마다 집값은 장마철 오이 자라듯 하니 사람마다 자신이 아닌 부동산을 더 믿게 된 건 아닐까. 예로부터 “사람은 의식(衣食)이 풍족해야 예의를 안다”고 했다. 하물며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판국에 모럴을 따진다고 통하겠는가. 지금 LH 직원들의 반성 없는 메시지가 떠도는 블라인드앱을 놓고 시끄럽다. 한데 이야말로 이미 예의도 모럴도 통하지 않게 된 불안정한 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징표 같다.
 
나는 이걸 ‘응징과 낙인’ 정치의 부메랑으로 본다. ‘집부자’를 적폐로 낙인찍어 괴롭히려는 증오정치는 잠시 대중에게 통쾌함을 선사했지만 국민 대다수를 ‘벼락거지’로 만들었다. 정치란 욕망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가진 자를 미워하도록 부추기고, 욕망의 발현을 막는 것이어선 안 된다. 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강물과 같은 것이다. 흐르는 강물을 호미와 가래로 막으며 용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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