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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빚투’ 광풍이 부른 가계 빚 1000조원

중앙선데이 2021.03.13 00:21 727호 30면 지면보기
백신 기업 SK바이오사이언스 공모주 청약에 이틀간 63조6000억원이 몰려 역대 증거금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카카오게임즈(59조5543억원)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58조4237억원)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240여만 계좌가 청약에 참여해 최다 건수 기록도 깼다. 기업 가치를 고려해 장기 투자에 나선 사람도 있겠지만, 단기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따상(상장 당일 시초가가 공모가 2배로 시작해 상한가 기록하는 것)’을 노려 주식 문외한들까지 청약에 뛰어든 사례가 적지 않다. ‘따상’에 성공하면 단 하루 만에 공모가(6만5000원)보다 훨씬 큰 주당 10만4000원의 차익을 거둘 수 있어서다. 이 정도면 투자라기보다 투기 광풍에 가깝다.
 

SK바이오 청약에 사상 최대 63조원 몰려
저금리에 부동산·주식 ‘빚투’‘영끌’ 지속
선제적 리스크 관리하고 정책방향 바꿔야

10주만 청약해도 최소 1주를 배정받을 수 있는 공모주 균등 배분제(청약이 대거 몰려 균등배분에도 불구하고 결국 32만명은 1주도 못 받게 됐다)가 도입된 데다 여러 증권사에서 동시에 청약할 수 있는 중복 청약이 허용된 것도 흥행을 부추긴 요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동산값 급등 여파로 불붙기 시작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대출로 한 부동산 투자)·빚투(빚내서 투자) 기조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오죽하면 온 나라가 투기판이 됐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6조7000억원 늘어난 1003조1000억원이다.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2월 900조원을 처음 넘어선 지 불과 1년 만에 1000조원을 넘긴 것이다.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정부의 대출 총량 규제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가계 빚 증가 속도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데는 국내외 저금리 기조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시중에 엄청난 돈이 풀리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빚투에 뛰어든 탓이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이 오히려 부동산값 상승을 부추기면서 지난해는 부동산, 올해는 주식 투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가파른 빚 증가 속도는 그 자체로도 우려스럽지만, 더 큰 문제는 금리다. 최근 일부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린 것을 비롯해 시중 금리는 벌써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런 오름세가 지속하면 당장 1000조원의 빚을 짊어진 가계는 이자 부담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국내 가계대출 70%가 변동 금리다.
 
금리 문제는 가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소비 위축과 기업 실적 악화는 물론 자칫 잘못하면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져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빚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부동산값 하락이나 거품이 잔뜩 낀 증시 급락 등 자산가격 하락까지 겹치면 그땐 걷잡을 수 없다.
 
물론 금리 수준이나 연체율 등을 볼 때 당장은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이런 상황에 금융위원회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금융위는 이달 중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기준을 금융사별이 아니라 개인별로 적용하는 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DSR 적용이 엄격해지면 추가 대출받기가 어려워진다. 청년이나 무주택자에게는 DSR 규제를 완화하겠다지만, 가계 돈줄만 조이는 근시안적인 처방만으로는 늘어나는 가계 빚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긴커녕 금리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취약계층에 고통만 안길 가능성이 크다. 이들을 위한 세심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영끌이나 빚투는 전 국민이 투기판에 뛰어들지 않으면 못 배길 정도로 신뢰를 잃은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부동산정책을 비롯해 오만과 고집으로 일관하는 그릇된 정책 방향을 재설정하지 않으면, 빚투 현상을 잡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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