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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지 재건한 목수 니시오카, 한·중 전래기술 존중

중앙선데이 2021.03.13 00:20 727호 27면 지면보기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 나라(奈良)에 있는 야쿠시지(藥師寺). 7세기에 건립된 이 절은 화재와 지진으로 소실됐다가 최근 복원됐다. 목수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복원작업 때 1300년 전 사용됐던 한국과 중국의 기술을 최대한 살렸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 나라(奈良)에 있는 야쿠시지(藥師寺). 7세기에 건립된 이 절은 화재와 지진으로 소실됐다가 최근 복원됐다. 목수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복원작업 때 1300년 전 사용됐던 한국과 중국의 기술을 최대한 살렸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드디어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입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비자 받기가 어려워지면서 월세를 내고 있는 집이 한국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못 돌아오고 있었다.
 

1300년 전 세운 사찰 거의 소실
전통 살리려 콘크리트 사용 반대

신도들 기부금, 신앙 힘으로 복원
다큐 ‘오니에게 물어봐’에 담겨

니시오카처럼 다음 세대를 생각
한·일 양국 정부, 관계 개선해야

일본에 있는 동안 엄마가 사시는 오사카에서 지내는 시간이 꽤 길었다. 엄마와 긴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비자가 나와서 기쁜 반면 아쉬운 마음도 들었는데 엄마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엄마가 먼저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당일치기 여행을 가자고 말을 꺼냈다. “올해는 하츠모데(初詣)도 못 갔는데 나라(奈良) 야쿠시지(薬師寺)에 참배하러 가지 않을래?”
 
하츠모데는 원래 새해가 밝으면 신사나 절에 가서 새해 평안을 기도하는 것이지만, 올해는 사람이 몰리는 곳은 피하고 싶어서 가지 않았다. 매년 다녀왔는데 올핸 안 갔으니 마음이 불편하긴 했다. 신사는 신토(神道), 절은 불교 신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 일본인은 종교와 상관없이 습관처럼 하츠모데를 간다.
 
오사카에도 유명한 신사나 절은 있지만 엄마가 나라 야쿠시지에 가자고 한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교토 절은 일본적, 나라의 절은 국제적
 
야쿠시지 안내석. [사진 나리카와 아야]

야쿠시지 안내석. [사진 나리카와 아야]

우선 야쿠시지는 그 이름에 ‘약(薬)’자가 들어간 것처럼 병 치유를 기원하는 절이다. 680년 덴무(天武) 천황이 황후의 병 치유를 기원해서 건립을 명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속에서 가족의 건강 그리고 세계 코로나19 진정화를 기원하기에 딱 맞는 절이다.
 
또 하나는 내가 아사히신문 기자로 처음 근무한 곳이 나라였고 야쿠시지는 익숙한 곳이다. 2010년 천도 1300년제(遷都1300年祭) 때 나라에서 문화 담당 기자로 야쿠시지도 취재로 자주 다녔었다. 그 당시 동탑(東塔)을 해체 수리한다고 해서 취재했었는데 그 수리가 10년 만에 끝났다는 보도를 봤다.
 
그리고 얼마 전에 엄마와 같이 본 영화에 야쿠시지가 나왔다. 내가 다니는 동국대에서 올해 불교영화제를 개최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고 일본 불교영화를 찾다가 영화 ‘오니에게 물어봐(鬼に訊け)’를 보게 됐다. 야쿠시지 재건을 맡은 목수 니시오카 쓰네카즈(西岡常一, 1908~1995)의 다큐멘터리였다. 엄마도 나도 그의 장대하면서 섬세한 목수의 일에 매료돼서 오랜만에 야쿠시지에 가고 싶어진 것이다.
 
나라에는 오래된 절이나 신사가 많지만 야쿠시지가 특별한 건 화재나 지진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됐었는데 이를 재건했다는 점이다. 창건 당시부터 남은 건물은 동탑뿐이었다. 그런데 1968년부터 사경(寫經)을 통해 기부를 모아 여러 건물을 잇달아 재건한 것이다. 사경이란 경전을 베껴 쓰는 것이며 신앙적 의미가 있는 행위다. 사경을 할 때마다 기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신도들의 신앙으로 절을 재건한 것이다.
 
야쿠시녀라이. [사진 나리카와 아야]

야쿠시녀라이. [사진 나리카와 아야]

재건 자금은 신도들이 지원하고 실질적으로 재건을 맡은 건 니시오카 쓰네카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감명받은 대목이 있다. 니시오카가 생각하는 시간은 니시오카의 인생보다 훨씬 길다는 것이다. 목조 건물인 동탑이 1300년 동안 남아 있다는 것은 당시 그럴 만한 기술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니시오카는 “이 기술은 한반도에서 전해 왔고 이 기술은 중국에서 들어왔다”며 그 당시의 기술을 따르면서 재건에 임했다. 정부에서 내진설계를 위해 콘크리트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콘크리트는 100년밖에 안 간다”며 반대했다. 100년 후에 니시오카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는데 1300년의 전통을 자신이 이어 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니시오카는 3대째 미야다이쿠(宮大工)다. 미야다이쿠란 절이나 신사의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다. 어렸을 때부터 니시오카의 길은 정해져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나무를 알려면 흙을 알아야 한다”고 그를 농업학교로 보냈다. 모든 인생을 미야다이쿠의 일을 하기 위해 바친 사람이다.
 
복원된 야쿠시지 서탑. [사진 나리카와 아야]

복원된 야쿠시지 서탑. [사진 나리카와 아야]

다큐멘터리를 보면 나무 하나하나가 다르고 그 나무에 맞는 가공을 한다. 나무를 알아야 한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매뉴얼을 만들 수 없는 세계다. 오로지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다. 정말 장인이란 이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영화 제목은 ‘오니에게 물어봐’였지만 보통 오니라고 하면 무서운 사람을 가리키는데 니시오카는 무서워 보이진 않았다. 자기가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제자들에게 전하려는 열정적인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그 제자들이 이번에 동탑을 해체, 수리한 것이다.
 
야쿠시지에 가면 활기찬 기운을 느끼는 건 신앙의 힘으로 재건된 절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야쿠시지의 스님이 들려주는 법화가 재미있는 것도 유명하다. 야쿠시지에 그럴 만한 매력이 없었다면 신도들이 사경을 통해 기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쿠시지가 매력적인 건 건물이나 법화 때문만은 아니다. 국보 야쿠시삼존상(薬師三尊像)을 비롯한 불상도 뛰어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야쿠시녀라이(薬師如来)가 앉아 있는 대좌다. 대좌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문양, 인도의 신, 중국의 사신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조각이 있다. 실크로드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들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교토의 절은 일본적이지만 나라의 절은 국제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나라의 절을 좋아한다.
 
지금 세계는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때문에 배타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돌아오기 힘들었던 건 정말 코로나19 때문이었을까? 입국자 수를 제한하려고 비자를 늦게 발급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엔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일들이 많았다.
 
비자 발급 거부, 일본이 한국보다 심해
 
복원된 야쿠시지 동탑. [사진 나리카와 아야]

복원된 야쿠시지 동탑. [사진 나리카와 아야]

한국에 있을 때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이번에 일본에서 한국영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을 때도 미리 들었던 것과 다른 서류 제출을 요구받았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여러 번이다. 갈 때마다 다른 서류를 요구받았다. 이번엔 은행 잔고 증명을 처음부터 제출했었는데 신청 접수 후 2주가 지나서 최근 6개월의 출입금 기록도 가져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가져갔더니 또 다른 은행 잔고 증명을 갖고 오라고 했다. 처음 제출한 잔고 증명도 충분히 유학 비용에 해당하는 금액이 들어 있었는데 말이다. 왜 유학하는데 일본의 재산을 자세한 출입금까지 모두 영사관에 제출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유를 물어봤지만 창구 직원은 “나한테 물어봐도 모른다”며 설명해 주지 않았다. 코로나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데 몇 번이나 영사관과 은행, 시청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주변에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일본 지인들이 여러 명 있는데 영사관에서 제대로 설명을 들을 수 없었거나 불친절한 대응 때문에 포기한 경우도 있다. 한국에 배우자가 있는데 1년 이상 못 보고 있는 친구도 있다. 비자를 안 주거나 입국을 막는 거로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심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처럼 한·일 문화 교류에 관한 일을 하고 있으면 정부 관련 기관에서 한·일 관계 개선에 관한 의견을 내달라는 연락을 받을 때도 있다. 시간만 되면 협조하지만 사실 한·일 관계 개선이 안 되는 원인은 주로 양국 정부에 있는 것 같다.
 
1300년 전에 한반도나 중국에서 전해 온 기술을 다음 세대에 이어 간 니시오카처럼, 눈앞의 다음 선거가 아니라 길게 보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양국 정치인이 늘어나면 한·일 관계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한국영화에 빠졌다.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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