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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돈은 놔두면 썩는다, 40년 비즈니스 경험도 그렇다”

중앙일보 2021.03.12 00:22 종합 26면 지면보기

‘락앤락 신화’ 김준일 회장의 새 도전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6살 청년 때부터 키워온 기업을 팔던 날, 최종 계약서에 서명한 65세 사업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건강 문제와 기업 미래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이었지만, ‘인생의 전부’를 처분한 소회가 어찌 없었으랴. 그러나 감상은 잠깐, 안주(安住)를 거부하는 비즈니스 본능이 곧 다시 작동했다. 손에는 지분 매각 대금 6000여억원이 있었다.
 

베트남서 유통·부동산 등 신사업
사재 출연, 아시아·한류 재단 운영
국내선 유망 스타트업 발굴·경영
“아들에게 회사 물려줄 생각 없어”

주방용품 ‘락앤락’ 신화의 주인공 김준일 하나코비 회장. 2017년 8월 회사의 경영권과 지분을 홍콩계 사모펀드(어피너티 에쿼티 파트너스)에 넘겼다. 잘 나가던 기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매각을 택한 결정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3년여가 지난 지금, 그는 한꺼번에 세 가지 일에 도전하고 있다. 베트남 사업, 스타트업 투자, 사회공헌. 김 회장은 “사업가는 역시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40년 사업 경력을 썩히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쌓인 안목을 살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양재동 사무실은 그가 운영하는 두 개의 사회공헌 재단, ‘아시아발전재단’과 ‘한문화재단’ 사무국을 겸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사무실에서 육성 중인 스타트업 기업의 제품을 배경으로 선 김준일 하나코비 회장. 김 회장은 “락앤락 사업 40년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서울 양재동 사무실에서 육성 중인 스타트업 기업의 제품을 배경으로 선 김준일 하나코비 회장. 김 회장은 “락앤락 사업 40년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베트남 자국 기업 보호책 유의해야”
 
베트남에선 어떤 사업을 하는가.
“모두 1억6천만 달러를 투자해 네 개의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건축인테리어 유통(코비홈), 부동산 개발(코비원), 호텔 및 식당 자재(코비인), 물류 단지(코비로지스)다. 호찌민 인근 냐베 신도시에 짓는 코비홈 매장은 인테리어 자재 및 가구를 B2B-B2C, 온-오프 통합으로 파는 카테고리 킬러형 쇼핑몰이다. 건물은 5월말 완공되지만, 준비 작업을 거쳐 내년 3월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베트남에서 처음 선보이는 업태라 걱정도 크지만 기대도 크다. 호찌민의 신흥 부촌 푸미흥 지구에서는 내년 2~3월 완공 예정으로 오피스 빌딩(코비 타워) 두 동을 짓고 있다. 이달 하순 베트남에 들어가 반년쯤 머물며 사업을 챙길 예정이다.”
 
왜 베트남에 주목했는가.
“락앤락 사업으로 맺은 인연이 작용했다. 베트남에는 2007년 진출했다. 중국에는 다소 늦은 2002년 들어갔지만, 베트남은 비교적 일찍 들어갔다. 역동적인 시장, 성장성 높은 인구 구조가 매력이다. 현재 3000달러 정도인 1인당 GDP는 달러 가치를 따지면 우리의 1980년대 초반 수준이다. 당시 한국처럼 베트남에서도 건설 붐이 일고 있다.”
 
베트남 비즈니스에 유념할 점은 없나.
“앞으로 5~10년 동안 해외 자본이 몰리면 베트남도 중국처럼 자국 기업 보호 정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현지 기업의 마케팅 능력도 나날이 좋아져 외국계 기업을 긴장시키고 있다. 진출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아직은 성장성도 크고 블루오션도 넓지만, 제도적·정치적 변수는 예측하고 사업을 해야 한다.”
 
“가업 승계는 시대에 뒤떨어진 선택”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갑자기 가세가 기울었던 김 회장은 고교 진학도 포기한 채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영업 사원으로 일했다. 1978년 수입 주방용품 유통업체인 ‘국진유통’을 세워 사업을 발을 디뎠다. 정부의 수입자유화 정책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돈을 모은 김 회장은 경기도 성남에 멜라민(열경화성 수지) 주방용품 공장을 세워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환율과 노사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끝내 제조업을 접지 않았다. 결국 1998년 개발한 이중 밀폐 용기 ‘락앤락’으로 ‘대박’을 쳤다. 해외에서 먼저 호응을 얻은 제품은 국내 홈쇼핑에서 ‘분당 1000만원 매출’ 기록을 세우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세계 120여 개국 수출로 연간 매출 4000억원을 올리며 상장(上場)까지 성공했다.
 
잘 나가던 회사를 왜 팔았나. 상속세 부담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전혀 아니다. 중국 사업에 문제가 생겨 수습하던 중 심장 등에 무리가 왔다. 병원에 있는데 매각 제의가 들어왔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회사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경영 능력이 입증된 자본에 넘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아들에게는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 셋 중 둘이 지금 내 옆에서 일을 배우고 있지만, 특별 대우는 하지 않는다. 둘 다 회사에서 아직 과장일 뿐이다.”
 
가업 승계도 중요한 일 아닌가.
“일본은 수 백 년 간 가업 승계 전통을 지켜왔지만, 경제 활력을 잃고 후퇴하고 있다. 아마존·페이스북·애플 등 새로 뜬 세계적 기업들 모두 창업자가 직접 일군 기업들이다. 젊은 세대엔 본인이 성장할 수 있는 백지를 줘야 한다. 그래야 성취하는 보람이 생긴다. 나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봉진 배민 의장이 재산의 반을 내놓는 선택을 했다.
“우리나라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앞으로 김범수·김봉진 같은 기업인들이 더 나올 것이다. 시범을 보여주는 사람이 하나둘 나오다 보면 사회적 흐름이 바뀔 수 있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재산을 내놓는 것 아니냐는 색안경은 일단 벗어 놓고 봤으면 한다.”
 
기업이 만든 사회재단이 기업주의 노후 활용이나 승계 구도에 이용된다는 시선도 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매년 출연금을 내 사업비로 쓰는 방식을 택했다. ADF는 총 500억원 출연이 목표인데, 지금까지 250억원 정도 냈다. 한문화재단은 내가 10년을 운영하면 재단 뜻에 공감하는 독지가가 나오지 않을까. 규제보다는 활성화를 위해 기업주·정부·사회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의구심보다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플라즈마 환경가전 스타트업 육성
 
베트남 사업과 사회공헌 활동 외에 김 회장이 도전하고 있는 분야가 스타트업 육성이다. “뭔가 앞서가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유전체 분석기업인 EDGC(이원다이애그노믹스)와 환경가전 스타트업인 코비플라텍 등에 투자했다. 이 중 코비플라텍은 본인이 직접 대표를 맡아 열정을 쏟고 있다.
 
어떤 가능성을 봤나.
“연구진이 개발한 ‘리얼벌크 플라즈마 기술’에 주목했다. 자외선을 이용한 표면 살균 제품이나 소독제 분무형 제품과는 달리 전기 에너지 등으로 공기 중 세균과 바이러스를 없앤다. 공기살균청정기(에어플라)와 공기살균탈취기(엑스플라)도 이미 출시했다. 조달청 혁신제품 등으로 선정돼 병원과 관공서 등에 납품하고 있는데, 4월부터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연말에는 경기도 평택에 2만㎡ 규모 공장이 완공된다.”
 
주목하는 스타트업 분야가 있나.
“유망한 기업을 찾기 위해 교수와 전문가 그룹과 지속해서 접촉하고 있다. 40년간 쌓은 사업 경험과 안목이 도움될 것이다. 지금은 피부 미용 플라즈마 기술을 눈여겨보고 있다.”
 
한문화재단 설립, 한국어 잘 가르치는 강사에 상금 10만 달러
김준일 회장과 오종남 한문화재단 상임이사(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오른쪽). 두 사람은 방송통신대 후원회에서 만나 친분을 맺었다. 김경록 기자

김준일 회장과 오종남 한문화재단 상임이사(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오른쪽). 두 사람은 방송통신대 후원회에서 만나 친분을 맺었다. 김경록 기자

한국 문화 세계화와 업그레이드 뒷받침
아시아발전재단은 아시아 학생에 장학금 
 
김 회장은 2016년 ‘아시아발전재단(ADF)’을 만들어 아시아 각국에서 장학 및 교류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베트남·미얀마·캄보디아·몽골 등의 고교·대학생 200~3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베트남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자녀를 베트남으로 유학 보내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돈은 물 같아서 놔두면 썩는다. 나에게 돈을 벌게 해준 아시아의 발전을 위해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韓)문화재단’도 새로 만들었다.
“단군 이래 한국 문화가 이렇게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나. 우리 문화의 업그레이드와 세계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정부가 할 수 없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업을 하고 싶었다. 일단 30억원을 출연해 만들었다.”(한문화재단은 11일 공식 출범식을 했다.)
 
어떤 사업을 하나.
“첫 사업으로 ‘K-랭귀지 페스티벌’을 연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국어를 잘 가르치는 강사를 뽑아 1등에게 10만 달러를 지급한다. 언어는 문화를 꿰는 실이라는 생각에서 선정했다. K-랭귀지 다음에는 K-뮤직, K-푸드 페스티벌도 계획하고 있다. 국악을 뮤지컬로 만들고, 한국의 길거리 음식 등을 세계화하고 싶다.”
 
김 회장의 사회공헌 재단은 방송통신대 인연이 한몫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제때 잇지 못한 김 회장은 방통대(행정학과) 출신이다. 방통대 후원회에서 만나 친구가 된 오종남 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과 조남철 전 방송통신대 총장이 각각 한문화재단과 아시아발전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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