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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우후죽순 생겨났다 슬그머니 사라진 ‘하우스맥주’ 붐

중앙일보 2021.03.11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62)

대한민국 수제맥주 20년사①기억하는가, 하우스맥주 

때는 바야흐로 2002년 2월이었다. 이 땅의 맥주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밝혀졌다.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맥주는 오직 하이트와 오비 두 브랜드뿐이었다.
 
2002년을 떠올리면 한국인의 가슴은 웅장해진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했지만, 그런 사실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그저 우리가 개최한 세계 최고의 축구대회에서 수많은 감동 스토리를 써내려가며, 유수의 축구 강국들을 제치고 4강에 진출한 바로 그 해다. 우리나라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모두가 붉은악마가 돼 90분간 울고 웃다가 신촌 로터리를 가득 메우며 승리를 축하했다. 그 벅차오르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청춘은 붉은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
 
다시 맥주로 돌아오자. 2002년은 월드컵과 함께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린 해였다. 국제적인 대회를 앞두고 정부는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를 신설했다. 그동안 대기업들만 맥주를 제조해 판매할 수 있었다. 연간 생산량 6000㎘ 이상(하루에 3만~4만 캔을 생산할 정도의 양)의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춰야만 맥주 제조 면허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방한할 외국 손님들에게 내놓기에는 한국 맥주의 다양성과 맛이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소규모 맥주 제조자(연간 생산량 60~300㎘)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오킴스브로이 맥주와 안주. [사진 조선호텔]

오킴스브로이 맥주와 안주. [사진 조선호텔]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를 첫 번째로 취득한 곳은 광주광역시의 코리아브루하우스였다. 처음으로 맥주를 선보인 곳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 내 오킴스브로이하우스로 2002년 7월 1일 첫 맥주를 출시했다. 2002년 7월까지 9개 업체가 면허를 신청했고 5개 업체가 승인을 받았다.
 
이후 ‘우후죽순’이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많은 맥주 제조사가 생겨났다. 이때 소규모 맥주 사는 ‘하우스맥주’라는 이름으로 통용됐다. 당시 전국 웬만한 상권에는 하우스맥주 전문점이 없는 곳이 없었다. 새로 생기는 쇼핑몰 등 근린상가에 입주하는 업종에 하우스맥주 전문점이 빠지지 않았다. 하우스맥주 프랜차이즈도 생겼다.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가 3년 만에 112개에 달했을 정도다. 조선호텔, 롯데호텔, 부산 농심호텔 등 호텔은 물론이고 현대종합상사와 같은 대기업도 하우스맥주 시장에 진출했다. 강남역 인근에는 헤르젠, 캐슬, 프라하, 옥토버훼스트 등이 성업 중이었다. 압구정동엔 플래티넘이 있었고, 도이치브로이하우스와 데바수스는 전국 각지에서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하우스맥주 붐이 일었다. 대부분 독일식, 정확히는 독일 남부 뮌헨식 맥주를 만들었다. 영국, 벨기에, 아일랜드 등 전통의 맥주 강호는 많지만, 당시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맥주 강국이었다. 500년 전 맥주를 만들 때 보리, 홉, 효모, 물 4가지 재료만 사용해야 한다는 ‘맥주 순수령’을 반포했다는 독일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너무나 매력적인 마케팅 소재이기도 했다.
 
이들 하우스맥주 전문점은 업장 분위기와 안주도 독일 스타일로 구성했다. 독일의 맥주 광장 비어가르텐을 본 따 최대 300~400평에 달하는 넓은 공간을 꾸미고 안주도 소시지, 슈바인학센, 아이스바인 등을 냈다. 양조 책임자(브루마스터)가 독일인인 곳도 있었다.
 
옥토버훼스트 매장. [사진 마이크로브루어리코리아 홈페이지]

옥토버훼스트 매장. [사진 마이크로브루어리코리아 홈페이지]

 
사람들은 새로운 공간에 열광했다. 하우스맥주 전문점은 맥주 생산 장비를 보이게 배치해 신선한 맥주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이는 지금까지의 ‘호프집’과 다른 분위기를 선사했다. 어두컴컴한 호프집과 달리 탁 트인 공간에서 이름마저 세련돼 보이는 독일식 안주를 먹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동안 획일적인 맛의 두 가지 맥주 브랜드에 지친 사람들에게 하우스맥주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하이트, 오비밖에 몰랐던 사람들이 필스너, 바이젠, 둔켈, 헬레스 같은 맥주를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게 됐다. 그 시절 만남과 회식의 핫플레이스는 단연 하우스맥주 전문점이었다.
 
업장이 많아지면서 양조 기술자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브루마스터가 유망 직업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관련 협회도 생겼다. 2003년 6월 사단법인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가 출범해 소규모 맥주 제조사의 이익을 대변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하우스맥주 전문점은 생겨났던 속도만큼 빠르게 사라져갔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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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혜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필진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맥주는 짝으로 쌓아놓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맥주 덕후. 다양한 맥주를 많이 마시겠다는 사심으로 맥주 콘텐츠 기업 비플랫(Beplat)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 스타일, 한국의 수제맥주,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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