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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주민 25%뿐…사람보다 원숭이가 많은 그곳, 후쿠시마

중앙일보 2021.03.11 05:00 종합 8면 지면보기
 
10년 전 쓰나미로 마을의 99.7%가 파괴된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에 지난 5일 '쓰나미 피해 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표지판 뒤로 당시 4층 높이까지 쓰나미가 습격했던 아파트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윤설영 특파원.

10년 전 쓰나미로 마을의 99.7%가 파괴된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에 지난 5일 '쓰나미 피해 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표지판 뒤로 당시 4층 높이까지 쓰나미가 습격했던 아파트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윤설영 특파원.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규모 9.0의 쓰나미가 후쿠시마(福島), 이와테(岩手), 미야기(宮城) 등 일본 도호쿠 지역을 강타했다. 1만8000여명이 사망했고 이 가운데 2500여명은 시신도 찾지 못한 상태다. 10년이 지났지만 동일본 대지진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쓰나미 피해 지역에선 대규모 재건작업이 이뤄졌지만, 젊은이들이 떠나며 심각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원전 폭발 사고가 벌어진 후쿠시마 현은 아직도 방사능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일본대지진 10년 현지 르포]
세슘 먹고 자란 식물, 다시 거름으로
오염토 자루 수백만 개 처리 골치
지반 12m 높이는데 2000억엔 투입
“젊은 사람 떠나” 고령화 문제 심각

 
지난 6일 후쿠시마 현 이다테무라(飯舘村)에 들어서자 시간당 방사선량을 알리는 낯선 안내판이 나타났다. 0.19μSv(마이크로시버트), 원전 사고 전 통상 허용치인 0.05μSv보다 4배 가까이 높은 수치였다.

 

후쿠시마 현 이다테무라, 돌아온 주민 25%뿐

 
이다테무라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북서쪽으로 약 60㎞ 떨어져 있다. 이 정도로 떨어져 있는데도 높은 방사선량이 관측되는 건, 원전 2호기가 폭발한 2011년 3월 15일 오후부터 바람이 북서풍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을 머금은 구름이 밤부터 ‘세슘 눈’으로 바뀌면서 산천과 논밭을 소리 없이 오염시켰다.
 
지역 주민들은 원전 사고 10년이 지나면서 방사성 물질의 ‘자연 순환 사이클’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식물들이 토양 속에 들어있는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을 흡수해 자라고, 낙엽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이 다시 거름이 되는 식으로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수년째 지역의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는 이토 노부히로(伊藤延由)는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새로운 재앙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 주민 이토 노부요시가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 6일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 주민 이토 노부요시가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이토는 “오염 제거를 하지 않은 흙에선 ㎏당 4만2000㏃(베크렐)의 방사선량이 측정된다. 세슘137의 반감기가 30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고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데 최소한 33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가 측정기를 설치한 모니터링 지점을 조금만 벗어나면 방사선 수치는 금세 높아지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방사능 수치에 이상이 없다”는 정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이유다.
 
피난 생활 끝에 2018년 이다테무라로 돌아온 간노 에이코(84)의 집에는 유기농 식재료의 배달용기가 놓여있었다. 간노는 “식재료는 반드시 방사능 기준치 이하인지 확인하고, 체내에 쌓인 방사성 물질을 배출해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찾아 먹고 있다”며 “나이가 많아 피폭으로 죽는 일은 없을지 몰라도, 방사능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염토 자루 수백만개 “받아주겠다는 곳 없어”

지난 6일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에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풀을 담은 검은 자루가 쌓여있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 6일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에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풀을 담은 검은 자루가 쌓여있다. 윤설영 특파원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커다란 검은 자루가 쌓인 거대한 산이 곳곳에 나타났다. 자루엔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풀 등이 담겨, 5단씩 쌓여있었다. 이런 검은 자루가 이다테무라에만 170만개가 있고, 면적 200ha(헥타아르)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토 자루들을 후쿠시마 현 후타바마치(双葉町)에 있는 중간저장시설로 옮긴 뒤, 30년 뒤 최종적으로 현 밖으로 반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주겠다는 지자체는 아직 없다.
 
이다테무라는 원전사고 이전인 2011년 1월 6544명의 주민이 거주했다. 2017년 피난 지시가 해제된 이후 돌아온 사람은 1253명, 2021년 1월 현재 귀환율이 25%에 불과하다. 이토는 “사람보다 원숭이, 멧돼지 수가 더 많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6일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에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풀이 담긴 검은색 자루가 쌓여있다. 오염토 자루는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의 중간저장시설로 옮겨진 뒤, 최종적으로는 현 밖에서 처분될 예정이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 6일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에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풀이 담긴 검은색 자루가 쌓여있다. 오염토 자루는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의 중간저장시설로 옮겨진 뒤, 최종적으로는 현 밖에서 처분될 예정이다. 윤설영 특파원.

 
“오염 제거작업에 6조엔(63조원)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써도 원전 사고 이전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요.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고, 기념관을 지었다고 지역이 부흥하지 않아요. 아직도 3만명 이상이 현 밖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도쿄 올림픽이 과연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와테 현 미나미산리쿠, 2㎞ 인공제방 세웠지만…

 
“쾅쾅…두두두두….”
지난 5일 이와테 현 리쿠젠다카다(陸前高田)시에선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수십여대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쓰나미 이전 시의 중심지였던 지역의 지반을 높이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인근 산을 깎아 총 300ha 면적의 지반을 새로 닦고, 높이도 12m로 높였다. 총 공사비용이 2000억엔(2조1000억원)을 넘는다. 하지만 토지 이용률은 38.7%(2020년 6월 기준)에 그치고 있다. 공사가 지연되는 사이 주민들은 산허리 고지대로 이미 이주해버렸기 때문이다.
 
하타케야마 슈이치(66)는 “얼핏 보면 정비가 잘 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멀었다. 아니, 이 이상 더 돌아올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나 자녀 교육 문제로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고령자만 남았다”면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불안이다. 후손들에게 부의 자산만 남기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 해안에는 2km 길이의 제방이 건설됐다. 지난 5일 리쿠젠다카다시의 모습. 윤설영 특파원.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 해안에는 2km 길이의 제방이 건설됐다. 지난 5일 리쿠젠다카다시의 모습. 윤설영 특파원.

 
대지진 당시 2만4246명이었던 인구는 2020년 11월 현재 1만8668명으로 줄었다. 당시 지진·쓰나미로 가구의 99.5%가 피해를 입었고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1800여명이 사망했다. 시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6.8%(2015년)로 일본 전국 평균 26.6%를 크게 웃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재해 지역의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해안가엔 길이 2㎞에 달하는 인공 방파제가 건설됐다. 10년 전 쓰나미 높이를 고려해 높이 15m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웠다. 주민들은 “안심이 된다”면서도 “바다가 보이지 않아 쓰나미가 오는지 알 수 없게 됐다”며 답답해했다. 무라카미 히로노부(67)는 “지난번 쓰나미 높이만큼 제방을 만들었지만, 자연을 이길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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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젠타카다(이와테)·이다테무라(후쿠시마)=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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