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든 게 내 뜻대로 되겠냐, 그게 오페라 지휘자의 자세”

중앙일보 2021.03.11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홍석원 지휘자는 “무대서 지휘해본 오페라는 총 40여편이고, 전곡을 당장 지휘할 수 있는 작품은 20여편”이라고 했다. [사진 서울시오페라단]

홍석원 지휘자는 “무대서 지휘해본 오페라는 총 40여편이고, 전곡을 당장 지휘할 수 있는 작품은 20여편”이라고 했다. [사진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에서 지휘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베를린필)의 상임 지휘자인 키릴 페트렌코(49)의 출발은 1999년 독일 마이닝겐 극장 음악감독이었다. 오페라 지휘로 명성이 높아져 2002년 베를린의 코미쉬 오페라 극장, 2013년엔 뮌헨 바이에른 오페라 극장에 발탁됐다. 2015년 단원들의 투표로 페트렌코를 상임 지휘자로 선정한 베를린필은 홈페이지에서 “세 도시의 오페라 수장이었던 그는 텍스트가 없는 음악에서도 이야기를 엮어내는 스토리텔러”라고 소개하고 있다. 베를린필을 세계 최고에 올린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도  1929년부터 5년 동안 독일 울름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지휘를 하며 프로 활동을 시작했다. 브루노 발터(1876~1962)도 쾰른 오페라단의 지휘자로 데뷔했고,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 또한 19세에 브레슬라우 오페라단의 보조 지휘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지휘 홍석원
성악가·연출가·무대스태프와 협업
상황 맞춰 의견 조정하는 게 중요

완벽한 하모니 이룰 때의 짜릿함
‘오페라병’ 때문에 지휘 못 끊어

한국에도 뛰어난 오페라 지휘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홍석원(39)은 오페라 제작자와 청중이 고루 주목하는 이름이다. 서울대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베를린 국립음대를 거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티롤 오페라 극장에서 5년 동안 무대에 섰다.
 
지난해 귀국한 홍석원을 한국의 오페라 무대들이 줄이어 섭외하고 있다. 2018년 국립오페라단의 ‘동백꽃 아가씨’에 이어 지난해 ‘마농’을 지휘했고, 지난해와 올해 성남아트센터의 ‘오페라의 정원’ 시리즈 무대에도 섰다. 이달 25~28일엔 서울시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지휘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이경재 단장은 “홍석원은 성악가, 연주자, 제작진의 이야기를 잘 관찰해 자신의 음악으로 풀어내는 감각이 뛰어나다”고 했다.
 
홍석원이 가진 ‘오페라의 감각’은 무엇일까. 그에게 오페라 지휘자의 요건에 대해 물었다. 10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홍석원은 “교향곡 지휘자는 완벽주의자일수록 좋지만, 오페라 지휘에는 계획대로 꼭 되지는 않는다는 자세가 유리하다”고 했다. 지휘자뿐 아니라 성악가, 연출가, 무대 스태프 등 여러 분야가 협업하므로 의견을 조정할 줄 아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오페라 무대의 오케스트라는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아래쪽에 자리한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무대의 오케스트라는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아래쪽에 자리한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왜 뛰어난 지휘자 중에 오페라로 시작한 이가 많을까.
“독일의 오페라 극장의 승진 시스템을 보면 알게 된다. 처음에는 피아노로 연습에 참여하는 반주자, 그다음에 음악 코치, 그리고 제2 카펠마이스터, 제1 카펠마이스터, 그다음에 음악 감독의 단계가 있다(홍석원은 인스부르크 티롤 오페라 극장의 제1 카펠마이스터였다. 한국어로 ‘수석 지휘자’ 정도의 개념이다). 이런 훈련 과정에서 다양한 감각의 토대를 쌓는다.”
 
어떤 종류의 토대가 됐나.
“어쨌든 모든 음악은 노래다. 교향곡도 결국 악기가 노래를 대신하는 형태다. 사람의 목소리를 다루는 오페라를 오래 익힌 사람의 음악은 자연스럽다. 또한 오페라는 시각적이다. 눈앞에 장면을 펼쳐내는 음악을 오래 하다 보면 텍스트 없는 교향곡에서도 장면이 그려진다.”
 
오페라 지휘를 하게 된 계기는.
“음악을 늦게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외할아버지(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 고 이강숙 교수)가 ‘한국에 지휘자가 더 많아야 한다. 네가 한번 해봐라’고 하셨다. 꼭 오페라를 하려 했던 건 아닌데, 경력을 오페라 극장에서 시작하게 되면서 ‘오페라 병’에 걸렸다.”
 
오페라 병은 뭔가.
“오페라 하는 사람들의 말인데, 오페라 한 편 끝날 때는 ‘너무 힘들어 앞으로 절대 오페라 안 한다’고 하다가, 첫 공연 끝나면 ‘다음 오페라 뭐할까’ 하는 게 이 병의 증상이다.”
 
오페라 지휘는 어떻게 익혔나.
“독일 유학 시절에 힘들게 공부했다. 두세 시간짜리 오페라 한 편을 골라 끝까지 피아노로 치면서 각 나라 말로 노래도 부르는 수업을 4년 들었다. 지휘 전공 수업보다 더 어렵고 공포스러운 시간이었다.”
 
실제 오페라 극장에 들어가 알게 된 것은.
“한 시즌에 6~7개 작품으로 40여회 무대에 섰다. 무대 아래의 움푹 꺼진 피트(pit)에 들어가 있는 오페라 지휘자는 자신이 돋보일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작업과 내 일이 딱 들어맞았을 때 멋있는 작품을 얻을 뿐이다. 교향곡은 첫 연습 전에 계획을 90% 이상 완성해 놓는다. 하지만 오페라 연습 전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 성악가들, 연출자와 뜻이 안 맞을 수도 있다. 성악가가 내가 원하는 만큼  고음을 처리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다. 상황에 맞춰 내 계획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내 계획과 생각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프랑스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지휘한다. 지휘자의 관건은 무엇인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2중창이 네 번 나오는데 잘못하면 다 똑같이 들린다.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4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다. 앞으로 오페라 지휘는 얼마나 하게 될까.
“이미 오페라 병이 걸렸기 때문에…. 무대·성악·기악·의상·연출이 한번에 짝 맞아 떨어졌을 때의 짜릿함을 끊을 수가 없다. 기회가 있으면 얼마든지 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