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성과 겸상하지 마” 中 공상은행의 새 행동지침, 왜

중앙일보 2021.03.09 18:00

이성 직원과 ‘거리두기’ 실천할 것

 
지난 3월 2일, 중국공상은행에서 발표한 직원 간 행동지침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이성 간 친밀한 접촉을 자제하고 최대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라는 10가지 지침이 자세히 담겨 있다.
[사진출처=중국공상은행]

[사진출처=중국공상은행]

 
구체적으로는 이런 항목들이 있다. “직장 내 이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말 것”, “개인적으로 카풀하지 말 것”, “애칭이나 별칭으로 부르지 말 것”, “사적인 선물 주고받지 말 것” 등 10가지다. 물론 칼같이 지키라는 ‘강요’가 아닌 '지침' 수준의 가이드라인이지만, 이성 직원 간의 친밀한 접촉을 자제하라는 공상은행의 공식 입장을 밝힌 셈이다.

 

“굳이 이런 가이드라인 내놓은 이유?”

 
다소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이 가이드라인, 어떤 맥락에서 나오게 됐을까. 최근 중국에서 자주 조명되고 있는 사건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성범죄 대한 경각심 고조되는 사회 분위기

 
지난 2월 중국 온라인에서 뜨겁게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 있다. 훠라라(货拉拉)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난 2월 6일 후난성의 한 여성 처(车)모씨(23)는 이삿짐 운송 대행업체 훠라라(货拉拉)의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도중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병원에 실려갔지만 4일 후 그는 결국 사망했다.
 
정확한 정황이 파악되지 않은 채 이 사건은 중국에서 뜨거운 화제가 됐다. 온라인상에서는 “분명 운전하던 직원이 성폭행 시도를 했고, 이를 피하려다 처모씨가 차에서 뛰어내리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올라왔다. 결국 창사(长沙)시 공안이 수사에 착수했고, 당시 운전석에 있던 저우(周)모씨는 지난 23일 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됐다.
 차량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처(车)모씨 [사진출처=펑파이신문]

차량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처(车)모씨 [사진출처=펑파이신문]

 
그리고 3월 2일, 재수사를 마친 창사시 공안은 보다 구체적인 사건 정황을 밝혔다.

 
밝힌 바에 의하면, 남성 직원 저우모씨와 여성 처모씨 간에 몇 번의 말다툼이 있었다. 저우모씨는 의뢰인 처모씨의 아파트에 도착한 후, 여성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내가 짐 싣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처모씨는 이를 거절하고 혼자서 모든 짐을 옮겼다. 그가 혼자 열다섯 차례 왕복 이동하는 동안 약 40분 정도 시간이 지체되자, 저우모씨는 이에 불만을 가졌다.
 당시 정황이 담긴 감시카메라 영상 [사진출처=CCTV]

당시 정황이 담긴 감시카메라 영상 [사진출처=CCTV]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 저우모씨는 “목적지에 도착해 이삿짐을 내려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이용할 것이냐” 물었지만, 처모씨는 또 한 번 거절했다.

 
그러자 업체 직원 저우모씨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앱상에서 다음 의뢰 건을 접수했고, 앱상의 원래 경로를 이탈해 지름길로 운행했다. 인적이 없는 길로 들어서자 여성은 불안을 느꼈고, 두 차례 차를 멈춰 설 것을 요구했지만 저우모씨는 이를 무시했다. 결국 위협을 느낀 처모씨는 창문 위로 몸을 던졌다.
[사진출처=펑파이신문]

[사진출처=펑파이신문]

 
처모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결국 운전자 저우모씨는 체포됐다. 저우모씨는 "성폭행을 하려는 시도 없었다" 밝혔지만, 경찰은 그가 차를 멈추라는 처모씨의 요구에 대답하지 않은 것, 말다툼이 있었을 때 위협적인 말투로 불만을 드러낸 것에서 혐의를 인정해 저우모씨를 체포했다.
 
보다 구체적인 사건 정황이 밝혀지자,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이 여성의 죽음에 직원 저우모씨의 잘못이 있냐는 점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들이 느끼는 성범죄 위협, 점점 증가해···

 
사건 당시 처모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데에는 그 배경이 있다. 최근 중국에서 여성들이 노출되고 있는 성범죄 위협과 관련한 보도가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중국의 우버인 '디디추싱(滴滴出行)을 이용하던 한 여성 승객이 성폭행 및 살인을 당했던 사건이 그 예다. 이 사건은 당시에 큰 화제가 되어, 여성의 승차공유 서비스 이용에 대한 경각심을 고조시켰다.
 
2018년 저장성에서 승차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던 한 여성이 운전자에 의해 강간·살해당한 사건 ©Police
 
 2018년 저장성에서 승차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던 한 여성이 운전자에 의해 강간·살해당한 사건 [사진출처=Police]

2018년 저장성에서 승차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던 한 여성이 운전자에 의해 강간·살해당한 사건 [사진출처=Police]

“중국공상은행의 행동지침, 과한 것 아냐”

 
이번 3월 2일 발표된 중국 공상은행의 “이성간 접촉금지” 가이드라인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다소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서라도 직장 내 성범죄 사건·사고를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이번 공상은행의 가이드라인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나친 처사다"라는 반응도 있지만, "직장 내에서 잠재적으로 발생 가능한 성범죄를 근절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는 의견 역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차이나랩 허재원 에디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