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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시각각] 이러니까 도둑이 축배를 든다

중앙일보 2021.03.09 00:27 종합 30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대통령은 발본색원을 지시했고, 부총리는 무관용을 반복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투기 사건에 대한 발언의 수위만 보면 비장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선거는 코앞인데, 하필이면 표심을 가장 크게 좌지우지하는 부동산과 연루된 공직 비리가 터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도 돌아가는 모양새가 국민의 눈에는 영 마뜩잖다.
 

검찰이 나서지 못한다는 LH 사건
수사권 조정·검찰 개혁의 결과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총리실에 꾸려진 정부합동조사단의 주축은 국토교통부라고 한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LH 직원들이 땅 쇼핑에 나섰을 때의 사장이다. 그들의 투기 전모를 파헤칠수록 장관의 책임이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는 “직원들이 개발정보를 미리 안 것도 아니고, 이익 볼 것도 없다”며 제 식구를 감쌌다. 독재정권 시절 많이 듣던 ‘축소·은폐’의 범의(犯意)가 읽히는 발언 아닌가. 비유하자면 이렇다. 고양이 일가에게 어물전을 맡겼더니 맛있게 살 오른 생선 몇 마리가 어느 날 사라졌다. 알고 보니 새끼 고양이 몇몇의 배 속에 들어간 뒤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어물전의 공동 소유주인 마을 주민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그러자 어물전 점장은 어미 고양이에게 발본색원과 무관용을 명한다. 과연 그 어미 고양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국민의 눈길이 검찰을 향하고 있다. 국민뿐 아니라 문재인 정권의 인재 공급처이자 둘도 없는 친(親)정부 세력인 참여연대와 민변까지 “감사원과 검찰이 나서야 할 사안”이라고 한다. 검찰의 직접수사를 최대한 줄이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쪽에 섰던 두 단체조차 그렇다. 왜 그럴까. 부동산 투기 수사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을 가진 검찰의 수사력이 경찰보다는 믿을 만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 LH 사건을 수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검찰의 직접수사를 6대 중대범죄로 제한하고 시행령에서 이를 구체화했는데, LH 사건은 이 범위 밖에 있다는 것이다. 굳이 찾자면 검찰에 맡길 방법이 없지야 않겠지만, 정부로선 내키는 일이 아니다. “믿을 건 검찰밖에 없다”는 여론에 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국토부가 자체 조사를 하고, 경찰(국가수사본부)이 그 결과를 통보받아 수사하는 방식이  뼈대가 될 것이다. 검찰의 수사 역량은 본의든 아니든 묵혀둘 가능성이 높다. 누가 득을 보게 될 것인지는 뻔하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출국금지 과정의 불법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검찰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됐다. 아직 손발도 없는 공수처가 인력을 뽑고 진용을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 수사할지, 검찰로 되돌려 보낼지, 이도 저도 아니면 경찰로 보낼지가 미정이다. 그 사이 검찰이 하던 수사는 올스톱이다. 일시적 공백이 빚은 과도기 현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뒤 생겨날 중대범죄수사청이건, 혹은 비(非)중대범죄를 맡을 경찰이건 수사를 하다 보면 고위 공직자가 연루돼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럴 땐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원 수사기관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공수처가 다시 시작하는 혼선이 불가피하다. 시간 낭비는 물론이고 수사 방향이 틀어질 가능성이 상존하게 된다. 더구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김학의 출금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 지검장은 이 사건의 피의자다. 피의자가 내 사건은 검찰이 해서는 안 되고 공수처가 맡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코미디 같은 일들이 3∼4년의 난리통 속에 진행된 검찰 개혁의 결과물이다. 새로이 마련된 형사사법 체계의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불협화음을 들으며 범법자들은 축배를 든다. 정의감으로 무장한 검사나 형사가 관할 지역을 떠나면 조직폭력배들이 축배를 드는,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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